스물셋 대학생인 권모씨. 그는 얼마전 병무청으로부터 "대학생은 장기 대기로 인한 면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듣고는 분노했다. 그동안 기다려온 2년이 넘는 시간이 말그대로 '허송세월'이 됐기 때문이다.
권씨로서는 군대를 일찍 다녀온 뒤 진로계획을 세워야겠다고 판단이 '독'이 됐다. 1학년이던 2015년 사회복무요원(전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은 뒤 그해 곧바로 입대를 신청했지만 가지 못했다.
그 뒤로 2016년, 2017년까지 연이어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결국 올해도 입대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권씨는 "작년에는 휴학까지 하고 계속 지원해봤지만 갈 수 없었다"며 "군대 때문에 20대, 가장 중요한 시기에 아무것도 주도적으로 할 수 없었다. 시간을 허무하게 날린 것 같다"고 허탈해 했다.
◇ 사회복무요원 대기자 5만명, "정부 책임이 크다"
4일 병무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소집 신청자 5만2,510명 중 실제 소집자는 1만9,077명에 그쳤다. 나머지 3만3,433명은 대기 판정을 받았다.
올해 보충역 적체 인원은 5만8천여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되지만, 소집 계획 인원은 2만9,977명에 불과하다. 절반에 가까운 2만8천여명이 대기자로 남으로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사회복무요원 적체는 정부 정책의 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무엇보다 정부의 책임이 크다. 2015년 현역병 입영 대기자 수가 늘어나며 문제가 되자, 당시 국방부는 징병 신체검사와 학력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풍선효과 때문에 보충역이 소집 정원에 비해 대폭 늘어난 것이다.
◇ 대학생은 장기 대기자 제외…형평성 논란
이런 가운데 정부는 장기 대기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소집대기 기간을 올해 1월부터 1년 단축하는 대책을 내놨다. 사회복무요원 소집 대기자를 병역면제(전시근로역 처분)하도록 하는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줄인 것이다.
문제는 대학생은 몇 년을 기다려도 장기 대기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학생은 병역법에따라 재학생이든 휴학생이든 자동으로 재학연기 되기 때문에 장기 대기자에서 제외된다.
권씨처럼 아무리 입대를 위해 휴학을 하고, 지속적으로 신청을 해도 '대학생'이기 때문에 대기기간은 '제로'가 되는 것이다. 자리가 나서 입대를 할 수 없다면, 권씨가 면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졸업 후 3년을 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사회복무요원 수급이 원활해 장기 대기로 인한 면제자가 거의 없었을 때는 문제가 안 됐지만, 적체가 심해져 면제자가 급증하면서 대학생과 비대학생간의 형평성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권씨는 "대학생은 (장기 대기에 따른) 면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냐"며 "이렇게 대기 기간이 길고, 장기 대기자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휴학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사회복무요원 판정 이후 3년 동안 입대를 하지 못한 장기 대기자라고 자기소개를 한 청원자는 "20대, 청춘의 나이에 하고 싶은 게 생겨 도전을 하려 해도 모든 것이 남자의 경우 '군필 또는 면제자' 라는 전제 조건이 있어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며 "입대를 위해 휴학을 한 친구들 또한 휴'학생'이란 이유로 장기 대기자로 카운팅되지 않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병무청은 대학생과 비대학생들과의 형평성 문제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휴학 사유가 군 입대 때문인지 개별 사정을 일일이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아 휴학생을 대기자로 포함시키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병무청 관계자는 "휴학 사유가 워낙 다양하기도 하고, 대학측에서 통보도 안해주고 있어 대학생은 대기자로 카운트하고 있진 않다"며 "사회복무요원 적체가 심해져서 발생하는 문제로, 전체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검토중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피해 당사자들 입장에서 병무청의 이같은 해명은 행정 편의적인 발상일 뿐이다.
또다른 대학생 장기 대기자 A씨는 "입대 신청을 한다는 것은 입대에 대한 적극적 의지의 표명으로 봐야 한다"며 "적체를 야기한 국가가 져야할 책임을 대학생들이 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