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명백한 의도 갖고 조선인 위안부 학살"

"日, 위안부들에게 '공생공사' 강요…심각한 전쟁범죄"

- 1944. 9.15. 텅충성(城) 미중 연합군 164통신대 소속 볼드윈 병장 촬영
-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 30명을 총살했다' 연합군 기록도 공개
- 미군, 1941년 12월부터 조선인 위안부 관련 기록 남겨
- 고 김학순 할머니 증언 이후 26년, 이제야 관련 문서기록들 발견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5)
■ 방송일 : 2018년 3월 1일 (목)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 정관용> 일본군에게 살해당한 조선인 위안부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최초로 공개돼서 충격을 주었죠. 이 영상을 발굴해서 공개한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강성현 교수 연결합니다. 강 교수님 안녕하세요?

◆ 강성현>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이게 언제 어디에서 누가 촬영한 거죠?

◆ 강성현> 이 영상은 1944년에 9월 15일 미군 164 통신사진중대 사진병이었던 골드윈이 촬영했습니다. '등충의 전투'라는 제목의 롤 안에 있던 영상이고요. 저희가 공개한 것은 19초짜리 영상입니다.

◇ 정관용> 그 영상에 담긴 주요 내용이 어떤 거였죠?

◆ 강성현> 이 영상이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두 번째 프레임이 7초 분량인데 보시면 성 안의 벽 코너에 어지럽게 시신들이 널부러져 있습니다. 벽에 총탄 자국으로 보아서 총살된 것으로 보이고요. 시신 근처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있고 그리고 시신의 옷들이 불에 타서 말아 올려진 것으로 보아서 불이 났던 것 같고요. 앞뒤 프레임을 보면 각각 6초 분량인데요. 중국군 시체 매장주 병사가 여자 시체들 사이를 오가면서 양말을 벗기고 시체 상태를 살피고 있습니다.


중국 윈난성의 텅충에서 집단 총살된 조선인 위안부들을 보여주는 영상 캡쳐 (사진=서울시·서울대인권센터 제공)
◇ 정관용> 그러니까 이게 일본군들이 조선인 위안부들을 학살하고 심지어 불까지 지른 그런 겁니까?

◆ 강성현> 총살을 한 것은 맞고요. 불을 지른 것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어쨌든 전장이었고 불이 있었을 거라고 보고 어쨌든 시신이 불에 일부는 훼손이 돼서 옷도 불 타 있는 모습들이 성 안에서 있었던 것이죠.

◇ 정관용> 일본인들은 왜 그랬을까요? 왜 그렇게 총살을 했을까요?

◆ 강성현> 그게 참 전투가 치열한 일부 전장들이 있었어요. 당연히 일본군과 함께 있는 위안부들 그리고 민간인들이 있었고 일본군은 공생공사를 강요했습니다. 그러니까 함께 살고 함께 죽을 것을 강요했고요. 이른바 그들이 말하는 옥쇄였고요. 저는 이것은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생각했을 때 이것은 이른바 천왕폐하를 위해서 옥처럼 산산히 부서지는 문제일 수는 있지만 제가 볼 때 전멸이 예견된 상황에서 전시에 성적 위안의 도구로 동원된 여성들을 죽음으로 동원한 문제이고 이건 전쟁범죄라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공생공사. 그러니까 자기들이 이제 패퇴해서 다 죽게되니까 위안부들도 같이 죽어야 한다?

◆ 강성현> 네, 심지어는 부상당한 일본군 병사들도 사살하기도 하고요. 위안부뿐만 아니라 같이 있던 민간인들도 결국 죽음으로 동원시켰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이게 미군이 그런 걸 촬영하고 이거는 일본군이 조선인 위안부들을 이렇게 이렇게 한 것이다 라는 내용을 다 파악하고 있었던 거죠, 미군이?

◆ 강성현> 미군이 일본군 위안부라는 존재를 깨닫기 시작한 것은 그러니까 마주대하기 시작했던 건 41년 12월부터 관련한 기록들을 남기고요. 본격적인 위안부 제도를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은 83년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전장 그러니까 지금 송상과 등충이라는 곳에서 위안부를 마주대했는데 일부는 처음에 위안부임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냥 적군의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살아 있는 분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이게 그냥 적부대의 여성이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조선인 여성임을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바로 그런, 즉 군에 동원된 조선인 위안부라는 걸 알고 그걸 문서로도 다 남겼습니까?

◆ 강성현> 네, 그래서 심문 보고서들이 있고요. 이번의 경우의 문서는 학살을 증명하는 그런 문서기록은 미중연합군의 작전일지입니다. 그래서 중국군이 미군에게 작전을 지휘하는 미군에게 실시간 일단위로 매일단위로 보고를 하는데요. 13일 밤, 그러니까 등충성이 함락되기 직전인 밤에 시가지전, 성 내 시가지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날 밤에 일본군이 성 안에서 조선인 여성 30명을 총살했다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일본은 계속 부인하고 있습니다마는 미군 측이 작성한 공식적인 기록과 문서에도 조선인들이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었고 심지어 학살당했다는 기록이 다 남아 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 거겠죠?

◆ 강성현> 예, 남아 있고요. 모든 지역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이 다 학살됐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이런 전장에서 일본군에 의해서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조선인 위안부 여성들을 학살한 것이 없지는 않다. 존재한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정관용> 이런 기록은 앞으로도 더 나오겠죠 ?

◆ 강성현> 사실 이런 기록들이 쉽게 발굴되는 건 아니에요. 저희가 김학순 할머니 증언 26년이 지났는데요. 이제서야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문서 기록들을, 다양한 소스의 문서기록들을 지금 수집하고 있는 것이고 그 안에 내용이 있었던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쉽지는 않지만.

◇ 정관용> 계속해야죠.

◆ 강성현> 네, 맞습니다.

◇ 정관용> 계속 좀 애써주시기 부탁드릴게요. 고맙습니다.

◆ 강성현> 네.

◇ 정관용> 성공회대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강성현 교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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