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성 전 회장은 2013년 3월 우리금융지주의 모든 임직원들에게 인사청탁을 강력하게 경고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 전 회장은 당시 메일에서 "일부 직원들이 인사청탁과 줄대기에 여념이 없다는 소문이 은행 안팎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사청탁을 하는 직원에 대해서는 인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물론 불이익을 받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의 이같은 경고는 내용 뿐 아니라 시기로 봐도 매우 이례적이었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직후 국정철학을 함께 하는 인사를 공공기관장의 인선기준으로 제시하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이 전 회장에게는 퇴진 압력이 가시화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앞서 이 전 회장은 2009년 11월에도 "연말 정기인사를 앞두고 계열사 일부 임직원들이 본연이 업무를 소홀히 한 채 인사청탁과 줄대기에 여념이 없다는 사실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는 내용의 메일을 임직원들에게 보냈다. 특히 이 전 회장은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일부 임직원들의 이런 행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뿌리 깊은 폐단으로 조직 내 고착화돼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검찰 수사를 종합하면 인사청탁과 줄대기에 여념이 없는 조직의 뿌리 깊은 폐단에는 이 전 회장 자신도 포함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맏사위인 이상주 삼성전자 전무에게 20억여원을 건넸다. 이 전무는 부인하고 있으나 검찰은 이 중 14억여원은 이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3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여러 차례 나뉘어 전달된 것으로 보고있다. 이 전 회장은 이렇게 돈을 제공한 뒤 2008년 6월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선임됐으며 2011년 2월에는 연임에 성공한 것으로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 14억여원이 인사청탁을 하기 위한 돈으로 보고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된 구체적인 경위를 쫓고 있다.
이 전 회장이 회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막대한 액수의 뇌물 뿐 아니라 당시 우리금융지주의 취약한 구조도 자리 잡고 있다. 정부가 최대 주주이기 때문에 정부의 의중에 따라 회장 인선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당시 우리금융지주 임직원들은 이른바 외부 출신의 '낙하산 회장'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오히려 옛 한일은행 출신에 우리투자증권 사장을 지낸 이 전 회장의 선임을 의아하게 여길 정도로 우리금융지주는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금융권 인사는 "우리금융지주는 정부가 사실상 주인이었기 때문에 이를테면 청와대에서 신호를 보내면 알아서 눈치껏 회장 후보를 뽑아주는 식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이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 측에 막대한 돈을 안겨주고 우리금융지주의 취약한 구조를 이용해 우리투자증권 사장을 떠난 지 4년 만에 친정으로 금의환향한 셈이다.
이 전 대통령의 고려대학교 2년 후배인 이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를 지냈고 2007년 대선 때는 외곽단체를 이끌며 측면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 당선 뒤인 2008년 6월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선임된데 이어 2011년 2월 연임에 성공했으나 박근혜정부가 들어서자 2013년 6월 사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