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는 말도 성폭력일 수 있어요

['#미투' 너머 ①] 권력 관계가 낳은 '외모품평'의 민낯

"나도 당했다." 한국 사회에서 불감증에 가까운 성폭력 인식이 '#미투'(Me too) 운동으로 크게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개인이 희생을 감내하는 폭로 방식에 기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목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다 평등하게 살아갈 세상, '#미투' 너머를 짚어봤습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예쁘다"는 말도 성폭력일 수 있어요
② 女문인에게 "00선생님이랑 술 먹는데 올래?"
③ 방송작가 '미투'…"동료 아닌 기쁨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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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그간 일상에서 인사치레처럼 써 온 "예쁘다"는 말이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을 안겨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이른바 '외모품평'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내 '호의' 또는 '친근감의 표현'이라는 근거를 든다"며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신입사원은 상사에게 '오늘 예쁘다'라는 말을 못하잖나"라고 꼬집었다.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 칭찬처럼 '예쁘다'는 표현을 쓰더라도 듣는 사람은 그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권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젠더 문제를 깊이 연구해 온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에게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외모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예의"라고 선을 그었다.

"성폭력은 단둘이 있을 때에만 일어나지 않는다. (최근 성폭력 피해를 폭로한) 서지현 검사와 최영미 시인이 지적한 지점 역시 여러 사람이 있는 가운데서 벌어지는 신체 접촉뿐 아니라 '예쁘다' '치마가 어떻다' '몸매가 어떻다'는 식의 언어적 성폭력을 포함한다. 결국 외모품평은 맥락을 봤을 때 권력을 지닌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가하는 신체적, 언어적 표현이다."


신 교수는 "예를 들어 남성이 여성의 신체 조건을 언급하는 것은 순수하게 신체 조건을 언급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성적 대상화하는 코드로 작용한다"며 지적을 이어갔다.

"문화인류학·사회학에서는 '중층적 기술'(thick description)이라는 개념을 쓰는데, 쉽게 말해 특정한 언어나 몸짓이 전하는 메시지는 맥락에 따라 수없이 많은 의미를 지닌다는 의미다. 흔히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표현을 쓰잖나. 권력을 지닌 사람이 누군가에게 신체적인 언급을 하는 것은 성적인 욕망이나 요구를 드러내거나 자기 권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알게 된 검찰이나 문단의 회식 자리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의 맥락을 보면 '나는 너에게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자기 권력 과시를 담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 폭력을 폭력으로 여기지 않는 세상…성평등 제자리걸음

더불어민주당 여성의원들이 지난달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서지현 검사의 용기있는 성폭력 피해 드러내기를 응원한다며 법조계 내 미투 운동 지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한국 사회가 이른바 '성폭력 불감증'을 겪고 있다는 진단에 신경아 교수는 "동의한다.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폭력 자체에 대한 감수성이 낮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신체적으로든 언어적으로든 전반적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타인에게 상처 주는 언행이 일상화 됐다. 더욱 큰 문제는 그것을 폭력으로 여기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는 "특히나 성폭력 문제는 가부장제 등 역사적인 기원을 지닌, 과거 권위적인 남성중심 문화로부터 벗어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측면이 있다"며 "노동 현장과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 여성들의 진출이 상대적으로 더디다는 점 역시 남성중심 사회의 폐해를 지적하기 어렵게 만들어 이를 지속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활동가 입장에서 "지금의 '미투' 운동은 갑자기 불쑥 나타난 것이 아니"라며 "지난 30년여 년간 관련 단체들은 현장에서 수없이 많은 피해자들의 폭로를 봐 왔다"고 전했다.

이어 "결국 우리 사회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있던 것인데, 이제서야 조금 귀를 연 것 같다"며 "그 흐름의 파급효과가 굉장히 커서 기대도 된다"고 덧붙였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답을 할 차례다. '미투' 운동으로 사회 각계각층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다들 그랬구나'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젠 우리 사회가 답을 내놓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지금 나오는 사안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분열을 조장한다"는 식으로 '미투' 캠페인을 비판하는 일각의 목소리를 두고 이 소장은 "그러한 반발은 항상 있어 왔기에 충격적이지도 않다. 그들 스스로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을 벌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며 "그러한 반발 속에서도 '미투' 운동에 동참한 이들은 더욱 용감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관심 잦아들면 '무고' '명예훼손' 고소·고발 난무…"'미투'로만 끝나선 안 돼"

권인숙 성범죄대책위원장이 지난 2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성범죄대책위원회' 발족 및 법무부 장관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지난 1년여 간 문단 등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에 매달려 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이선경 변호사는 성폭력 인식 개선을 저해하는 법의 맹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 '미투' 캠페인과 같은 움직임은 계속 있어 왔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언론의 주목을 받느냐의 문제"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우려되는 지점은 확 끓어오른 이것('미투' 캠페인)이 얼마나 이어질지다. 지난 2016년 말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크게 불거졌다.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문인들이 그때는 다들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 관심이 잦아들자, (해당 문인들은) 피해 당사자들을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선경 변호사는 "그 이후로 피해 당사자들은 개별적으로 싸워 왔다. 조심스럽지만 지금 '미투' 운동 역시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염려된다"며 "대한민국은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할 수 있는 나라여서 고소·고발이 난무한다. 이 지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미국 등지에서 '미투'를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과 다른 법·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당장 최영미 시인만 해도 명예훼손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렇다고 '미투' 운동을 안할 수도 없다. 일단 '미투'가 나와야 해결책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 더 '미투'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이 변호사는 "'미투' 운동을 응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동참자들이 굉장히 큰 피해를 감수하고 나온 것이니까"라며 "그렇기 때문에 서지현 검사의 폭로는 검찰 내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더라도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쪽으로 귀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진상규명에 이은 개선책은 공정한 인사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에서 왜 성폭력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가를 짚어봐야 한다. 결국 회사 등 조직 안에서 피해자가 고충 민원을 넣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상조사를 진행하고 가해자를 적절하게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절차가 없기 때문이라는 점 말이다."

['#미투' 너머 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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