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다빈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자리한 보조 링크 관중석에는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였습니다. 다름아닌 전 국가대표 김해진(21 · 이화여대)이었습니다. 김해진은 지난달 평창올림픽 국가대표 3차 선발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바 있습니다.
다만 이번 대회는 방송 해설위원으로 참여합니다. 최다빈뿐 아니라 케이틀린 오스먼드(캐나다) 등 다른 선수들의 연기도 세심하게 지켜보며 노트에 꼼꼼하게 적는 김해진은 이제 선수가 아닌 어느덧 해설위원다운 모습이더군요.
이날 훈련을 마친 최다빈은 언니들의 조언을 언급했습니다. 최다빈은 "해진, (박)소연 언니가 올림픽을 경험해봐서 물어봤다"면서 "둘 다 올림픽 출전 자체가 너무 큰 행복이었는데 즐기지 못하고 긴장을 너무 한 게 아쉬워서 즐기고 오라고 하셨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김해진은 동갑내기 박소연(단국대)과 함께 4년 전 소치올림픽에 나섰습니다. 김해진은 합계 149.48점으로 30명 출전 선수 중 16위에 올랐고, 박소연은 142.97점으로 21위에 자리했습니다.
김해진은 "사실 나는 너무 큰 무대라 긴장을 해서 내 실력을 모두 보이지 못했다"면서 "거기에 넘어지는 실수까지 했다"며 4년 전을 떠올렸습니다. 김해진은 소치 대회 프리스케이팅 연기 도중 펜스에 부딪혀 넘어졌습니다.
그 바람에 트리플 러츠 점프를 수행하지 못해 감점까지 따랐고, 결국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공인 개인 최고점(166.84점)보다 15점 이상 낮은 점수로 대회를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기 후 김해진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아쉬움을 곱씹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웃으며 당시를 추억할 수 있는 김해진입니다. "다빈이는 자력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면서 김해진은 "그것만으로도 다빈이는 자신의 역할을 다 해낸 것"이라고 힘을 실어줬습니다.
그렇다면 김해진은 최다빈이 평창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길 바랄까요? 김해진은 "남은 기간 훈련을 잘 마무리해서 본인의 실력만 보이면 좋겠다"고 격려했습니다.
이어 "다빈이가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워낙 좋았기 때문에 잘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최다빈은 지난달 대만에서 열린 4대륙선수권에서 총점 190.23점으로 종합 4위에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최다빈이 4년 전 본인의 성적을 넘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김해진은 환하게 웃으면서 "그러면 좋겠다"고 밝게 말했습니다. 최다빈이 4년 전 언니의 값진 경험과 조언을 발판으로 평창에서 멋진 연기를 펼칠 수 있을지 자못 기대가 됩니다. 기왕이면 청출어람, 언니를 뛰어넘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ps-4년 전 소치올림픽 당시 김해진은 경기를 마치고 흘린 눈물에 대해 "(실수에 대해) 너무 당황했다"면서 "기회를 만들어준 언니에게 미안했다"고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언니는 다름아닌 '피겨 여왕' 김연아(28)입니다.
김연아는 2013년 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에 올림픽 출전권 3장을 안겼습니다. 그러면서 김해진과 박소연이 함께 김연아와 소치 무대를 밟을 수 있었습니다. 김연아 언니가 올림픽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줬는데 부응하지 못하고 실수를 해서 김해진은 더욱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던 겁니다.
김해진은 소치올림픽 당시 "경기 후 함께 마사지를 받는데 연아 언니가 '수고했다'고 말해줘서 우리 역시 '언니도 잘 했고 감동적이었다'고 답했다"고 들려줬습니다. 이번 평창 무대에서 4년 전 김연아처럼 김해진이 후배와 함께 실전에 나서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든든한 조력자로서, 또 해설자로서 경기장에서 같이 호흡하며 후배에게 힘을 실어줄 겁니다. 4년 전 소치에서 흘린 김해진의 눈물이 4년 뒤 평창에서 최다빈의 웃음으로 이어지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