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 교수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최영미 시인의 TV 인터뷰 여파가 작지 않다"며 "그의 문제의 시 '괴물'을 게재한 잡지의 주간으로서 이런저런 소회가 적지 않으나 지독한 몸살 여파로 미묘한 주제에 생각을 벼리기가 아직 버겁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최영미 시인의) 이 '폭로'를 두고 옛날 일을 들춘다거나 침소봉대(작은 일을 크게 부풀려서 말함)라거나 전체 문단을 매도 말라거나 하는 말들이 있어서 우선 작년에 '시작'에 발표한 졸고 '죽은 시인의 사회-작가의 윤리와 도덕'의 일부를 실어 내 생각의 일단을 밝히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발췌 글에서 김 교수는 먼저 "식민지시대 이래 한국문학은 여러 겹의 굴곡을 거치면서 나름의 역사적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식민지 근대를 거치고, 냉전질서와 분단체제, 군사독재와 야만적 시장주의 체제 등 곤핍하고 적대적인 환경을 통과해 온 것을 고려할 때 그래도 비인간적인 세계질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잃지 않고 한국사회의 성찰을 수행하는 주요한 문화적 거점의 노릇을 해 왔음은 인정받을 만하다."
이어 "문단사적 측면에서 보아도 1980년대를 거치면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던 문인협회 체제를 극복하고 자유실천문인협회-민족문학작가회의-한국작가회의로 이어지는, 점차 온건 보수화해 오기는 했지만 적어도 보수적 정치권력과의 긴장관계를 잃지는 않는 흐름이 주류를 이루게 된 것 역시 마땅히 긍정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하지만 그렇게 긍정적 전통을 수립해 왔다고 할 수 있는 지난 30여 년의 시간 동안, 초기의 긴장감은 완연히 이완되고 민족과 민중을 내세우던 진보적 전통은 시나브로 하나의 낡은 훈장처럼 빛바래 갔으며, 그 대신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포섭된 상업주의 문단질서가 어느새 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동시대에 대한 어떠한 빛나는 통찰과 대안도 시원하게 내놓지 못하고 있는 한국문학은 한편으로는 여전히 민족·민중·민주 같은 낡아빠진 표상을 반추하는 공허한 대문자주의와, 소인주의와 쾌락주의의 미시세계에 자족하는 자폐적 소문자주의로 나뉘어 오래도록 정체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전체 사회와 문화지형 속에서 점점 왜소화되고 주변화되며 스스로 그늘진 존재로 머물러왔던 것이다."
◇ "문단 회식자리 여성들, 각종 성적 희롱·추행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됐다"
"생각해 보면 누구 탓을 할 일이 아니다. 70년대까지의 '문협'(문인협회) 시대에 여성 문인들의 등단과 관련하여 각종의 성추문들이 전설처럼 회자되고 전승되었지만, '자유 실천'을 외치고 '민족 민주'를 부르짖으며 정의의 투쟁을 펼쳤던 80년대 이후에도 문단 내에서의 여성들에 대한 성적 대상화, 성희롱, 성추행 등이 특별히 줄어들었다는 정황은 접하지 못했다."
그는 "아니 웬만한 성희롱이나 성추행 정도는 사건 축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당시의 젠더의식 수준은 저열하기 짝이 없었고, 또 그 수준은 최근까지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라며 "어용문학 진영이든, 민족문학 진영이든, 자유주의 문학 진영이든 이 문제에 관한 한 별 차이가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각종 문단 행사의 뒤풀이 때나, 아니면 이런저런 회식 자리에서나 시간이 지나 취기들이 오르고 분위기가 질펀해지기 시작하면 거의 예외 없이 작가건 기자건 출판사 관련자건 여성들은 언어에 의한 것이건 언어 이상의 행동에 의한 것이건 각종의 성적 희롱과 추행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들의 방어수단이라야 일찍 자리를 피하는 것 외엔 없었다."
김 교수는 "고백하거니와 나도 그런 자리가 내심 매우 불편하면서도 그 자리의 '가해자들'을 한번도 제대로 제재하지 못했고, 소극적인 문제제기조차 손에 꼽을 정도였다"며 "결국 나도 공범이거나 최소한 방조자였던 것"이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아마도 이른바 문단밥을 먹고 살아온 모든 남성 작가들은 이 문제에 관한한 전부 '잠재적 용의자'이거나 최소한 '방조자'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명백히 범죄인 언행들이 일종의 문화이자 관행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그렇게 용인되어 왔고, '문단'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그 자율성을 보호받았기 때문에, 또는 주변화되었기 때문에, 다른 집단이나 사회 같으면 벌써 문제되었을 일들이 뒤늦게까지 음지식물처럼 살아남아 왔다가 근래에 들어서야 '내부고발'의 형식으로 터져나오게 된 것이다."
◇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 골라낸다고 쉽게 사라질 일 아니다"
그는 "많은 문인들에게 그간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던 '문단'이라는 존재가 이처럼 낯설고 부끄러운 적이 별로 없었을 것"이라며 비판을 이어갔다.
"어두운 그늘에 있던 것들은 백일하에 꺼내놓으면 그만큼 추하고 낯설게 보이기 마련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그러한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을 골라내고 '자정선언'도 해서 '정화'를 하면 할 일을 다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낯설음과 부끄러움과 추함은 그렇게 쉽게 사라질 일이 아니다."
특히 "앞서 말한 것처럼 하나의 기득권제도이자 비즈니스의 세계가 되어 각종의 미시권력 관계가 가로세로 얽혀 있는 현재의 한국문단의 기본 구조 속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은 언제든지 재발하게 되어 있다"며 "좀 더 발본적인 사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요청했다.
"과연 '문단'이라는 것이 자유와 평등과 해방을 그 존재의 사명으로 하는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잘 어울리는 공간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각종의 인맥과 서열 관계, 그로부터 발생하는 크고 작은 미시권력들이 다른 사회집단과 다를 바 없이 촘촘하게 존재하면서, 동시에 '자율성'의 이름으로 은폐되거나 보호받는 이 '문단'이라는 '죽은 시인의 사회'는 이제 해체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김 교수는 "그 대신 어떤 위계도 차별도 발 들여놓을 수 없는 진정으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문인 작가들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상상할 때가 되었다"며 "그것이 문제 해결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