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B씨 "이현주 감독, 사죄는 어디 있는가"

"입장문 읽으며 다시금 섬뜩함 느껴"… 1심 판결문 일부 공개

이현주 감독 (사진=㈜인디플러그 제공)
영화감독 B 씨의 '미투' 고백으로 '연애담' 이현주 감독의 성폭력 가해 사실이 수면 위로 떠 오른 가운데, B 씨는 대법원에서 나온 '유죄'가 억울하다는 이 감독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이현주 감독이 만취한 상태였던 B 씨를 상대로 유사성행위를 했다고 판단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성폭력 교육 40시간 이수 명령을 내렸다.


이 감독은 지난 2016년 11월에 개봉한, 여성 간의 사랑을 그린 '연애담'의 감독으로 유명하다. '연애담'은 이상희, 류선영의 연기와 이 감독의 연출이 어우러져 금세 마니아층을 만들어 냈고, 이 감독은 이 작품으로 제26회 부일영화상 과 제38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이 감독은 6일 공식입장을 내어 법원 판결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B 씨가 자신의 SNS에 성폭력 사실을 폭로한 지 5일 만에, 가해자인 이 감독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해명에 나선 것이다.

◇ 이현주 감독 "성관계 동의 있었다고 봐… 유죄 억울"

이 감독은 "이 사건에 대해 피해자나 그의 남자친구가 인터뷰를 하며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의 입장을 밝히는 데에 다소 시간이 걸린 이유는, 저 역시도 이 사건으로 인해 수사와 재판을 거치는 동안 상상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살아왔고 그러한 저의 속사정을 말로 꺼내기가 너무나도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면서, 피해자 B 씨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가까운 지인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일행의 부탁으로 모텔에 함께 머무르게 되었고, B 씨가 고민을 털어놓으며 한참을 울었고 그를 위로하던 중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갖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 감독은 △당시 B 씨가 성관계를 원한다고 여길 만한 여러 사정이 있어 동의했다고 봤고 △이후에도 B 씨와 밥 먹고 차 마시고 시나리오 이야기를 나누며 편하게 지냈으며 △동의 없는 범행이었다면 B 씨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아무 일도 없었다며 무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또한 두 사람이 함께 공부했던 한국영화아카데미 교수에게 B 씨와의 합의를 부탁한 사실이 전혀 없고, 피해자에게 사과는 했으나 범행을 인정한다는 뜻의 사과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 감독은 성소수자로서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고 밝혔다. 재판이 길어진 이유를 두고도 "1심 재판부가 인사이동으로 한 차례 변경되었고, 이 사건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는 판사님의 판단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재판부의 판단을 받아들인다면서도 '억울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저에게 내려진 판결과 그에 따른 처벌이 앞으로는 더욱 신중하고 열심히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피해자 입장에서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여겼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하루하루 반성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상황이 매우 참담하다. 제 의도나 당시 가졌던 생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큰 처벌을 받고 살아가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사실과 다른 얘기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세상에 널리 퍼지고 있다"며 "많은 분들에게 큰 심려를 끼쳐드리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글을 맺었다.

◇ 피해자 B 씨 "치졸한 변명 속 나에 대한 사죄는 어디에?"

피해자 B 씨는 이 감독의 공식입장이 나온 6일 밤 자신의 SNS에 '#가해자 이현주의 심경고백 글을 읽고 쓰는 글'이라는 긴 글로 이 감독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B 씨는 "많은 사람들이 성폭행 피해자와 가해자를 떠올릴 때 그리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가해자는 폭력적이고 공격적이며 피해자는 숨고 소극적인 이미지 말이다. 그런데 80% 이상 성범죄의 대부분이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고 그 때문에 성범죄 이후의 상황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전형적이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사건이 있고 난 바로 직후 나는 가해자와 '밥 먹고 차 먹고 대화했다'. 맞다"고 말했다.

B 씨는 일어나 보니 상의 속옷을 제외한 하의 속옷까지 모두 벗겨져 있어 이 감독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고 "우리 잤어!"라며 "내가 널 OO 할 줄이야"라는 말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B 씨는 또한 그날 이 감독이 "술 먹고 일어난 해프닝이니까 절대로 남자친구에게 얘기하지 마", "너 때문에 안 좋은 기억이 생겼다"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부연했다.

B 씨는 남자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남자친구는 이 상황이 범죄일 수 있다고 의심해 가해자와의 모든 통화를 녹음해 두었다고 밝혔다. B 씨는 이 감독에게 "니 남친한테 전화 왔더라? 너 내 눈앞에 띄면 죽여버린다"라는 문자를 받고, 통화 때는 "내가 남자가 아니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라는 말을 들었다고 썼다.

B 씨는 1심 판결문 내용으로 이 감독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기도 했다.

"피해자에게는 위와 같이 결혼을 전제로 교제해 온 남자친구가 있었고, 영화아카데미 동기인 G, F나 교수인 L 모두 피해자가 동성애자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고, 피해자와 동성애적인 성적 접촉을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였다. 피해자가 만든 영화 시나리오 등에 성적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 있으나, 성적 문제는 영화나 소설 등에 자주 등장하는 보편적 주제 중 하나이므로 이를 들어 피해자에게 동성애적 성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피해자가 먼저 자신이 레즈비언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 키스를 하고 가슴을 만지거나 성행위를 요구했다는 것은 경험칙상 납득하기 어려운 반면, 피고인은 피해자가 만취한 나머지 울거나 피고인의 성적 접촉에 대하여 무의식적, 육체적 반응을 나타낸 것을 과장하여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성적 접촉을 요구하였다고 진술하는 데 불과하다고 보아야 한다."

B 씨는 "당신의 그 길고 치졸한 변명 속에 나에 대한 사죄는 어디에 있는가? 순수한 마음으로 당신을 응원한 영화팬들에 대한 사죄의 말은 어디에 있는가?"라며 "내가 몹쓸 짓을 당했던 그 여관이 당신의 영화에 나왔던 그곳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느낀 섬뜩함을, 당신의 입장문을 읽으며 다시금 느꼈다"고 전했다.

B 씨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엄중하게 사건을 다루겠다는 연락을, 이 감독의 영화 배급사에게도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았다며 "더 이상의 화살이 학교와 배급사로 가지 않기를 바라며 빠른 조치와 대처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한편, 영화진흥위원회는 이번 사건에 대해 외부인을 포함한 조사팀을 꾸려 대응에 나섰고,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이 감독의 영구제명 절차를 진행 중이며, (사)여성영화인모임은 지난해 이 감독에게 수여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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