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10살 때 만난 페더러, 맞대결은 상상도 못했다"

호주오픈 4강에 오르며 한국인 최초로 테니스 메이저 대회 준결승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운 정현이 2일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열린 GS 4강 진출 축하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박종민 기자)

2006년 11월 테니스 스타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이 서울에서 친선경기를 펼쳤던 자리에 정현도 있었다. 당시 10살이었던 정현은 볼보이였다. 세계적인 스타들의 현란한 기량을 두 눈으로 지켜본 정현은 언젠가 그들과 같은 코트에 서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12년이 지나 어린 시절의 꿈이 이뤄졌다. 정현은 지난달 한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테니스 메이저 대회인 호주오픈 4강에 진출해 '테니스 황제' 페더러와 맞대결을 펼쳤다.

정현은 2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열린 '라코스테와 함께 하는 4강 진출 축하 기자회견'에서 12년 전을 떠올리며 "그때만 해도 내가 페더러, 나달같은 선수와 한 코트에서 시합할 수 있는 날을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정현은 4강전에서 대회 기간 악화된 발바닥 물집 부상 때문에 기권을 선언하고 말았다.

정현은 "페더러와 만나기 전부터 계속 진통제를 맞았다. 4강 직전에도 진통제를 맞고 최대한 아프다는 생각을 잊고 경기에 임하려고 했는데 더이상 진통제의 효과를 볼 수 없어 힘든 결정을 내렸다"며 아쉬워 했다.

이어 정현은 "페더러와 나닽 같은 선수가 은퇴하기 전에 같은 코트에서 경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페더러는 나이가 있으니까 앞으로 몇년간 더 같이 시합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호주오픈의 공식 SNS 계정이 지난달 26일 공개한 사진. 중앙에 페더러와 나달(노란 유니폼)이 있고 볼보이들과 기념 촬영을 했다. 맨 아래 왼쪽에 앉아있는 소년이 바로 정현이다 (사진=트위터 캡처)


페더러와 나달의 대결을 현장에서 직접 관람하는 것은 모든 테니스 팬들의 바람이다. 하지만 10살의 정현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그 당시 너무 어려서 스폰서 시계 옆에 가만히 서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선수들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생각했는데 어리다 보니까 나중에는 징징대면서 빨리 집에 가자고 했다"며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메이저 4강 진출의 새 역사를 쓴 정현은 한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찬호, 첫 LPGA 메이저 우승을 달성한 박세리 등 '스포츠 레전드'들과 함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물집과 상처로 가득한 발을 끌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맞선 정현의 투혼은 1998년 US 여자오픈에서 양말을 벗고 워터 해저드에 들어가 샷을 날린 박세리의 열정과 비교되기도 했다.

정현은 겸손했다. "그렇게 훌륭한 선수들과 비교해주셔서 감사하다. 그 분들은 높은 위치에서 떨어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셨다. 그게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그 분들과 같은 레벨로 생각되기 위해서는 나 역시 이 자리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나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현은 다음 주부터 훈련을 재개한다. "귀국 후 매일 병원에서 체크했는데 이상이 없다. 어리다 보니까 회복 속도가 빠르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다음 주 훈련을 해보고 어느 대회부터 나갈지 상의해볼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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