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난 김규면 선생은 20세기 초 대한제국이 운영하는 육군무관학교 속성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1904년 일본이 강제로 체결한 한일의정서에 근거해 육군무관학교를 통제하자 중국으로 망명했다.
1914년 독립운동가 이동휘 선생과 함께 중국에 동림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투사를 양성하던 선생은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신민단을 창설했다.
대한신민단은 독립군에 합류해 봉오동·청산리 전투 승리에 기여했다.
1924년 윤자영과 함께 상해에서 조직한 상해청년동맹을 통해서 중국 학생계와 연대를 구축하고자 했지만 이 과정에서 피습을 당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독립운동 활동 전개에 한계를 절감한 선생은 연해주로 갔다. 1933년 빨찌산위원회에서 항일운동을 했지만 소비에트 연해주위원회의 탄압대상이 되었다.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선생은 활동에 어려움을 겪자 러시아 모스크바로 옮겼으나 광복 이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1969년 이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2002년 김규면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