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검사가 검찰 내부망에 관련 사실을 전하면서, 이번 기회에 조직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동료 검사들의 지지 댓글도 '이례적으로' 수십 개가 달리고 있다.
◇ 잘나가던 법무부 고위관계자, 공개적인 자리서 후배 '성추행'
A 검사는 지난 26일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헤아릴 수 없는 밤을 잠 못 이루고 보냈다"며 "글을 올릴 시기를 고민하다 너무 늦어 버렸다"고 어렵게 글을 올렸다.
그는 2010년 10월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 B 전 검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 한 검사에 따르면 "수십 명이 당시 상황을 봤을 정도"였다고 한다.
A 검사는 "당시만 해도 성추행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검찰 분위기, 성추행 사실이 언론에 보도될 경우 검찰의 이미지 실추, 피해자에게 가해질 2차 피해로 고민하던 중 당시 소속청 간부들을 통해 사과를 받기로 하는 선에서 정리가 됐다"고 썼다.
더 큰 문제는 이후 A 검사가 사과나 연락이 없었던 것은 물론, 사무감사에서 지적을 받고 검찰총장의 경고에 이어 전결권까지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그는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 발령도 받았다고 주장했다.
◇ 침묵한 소속 검찰청, 되레 보복 나선 인사와 감찰
"성실히 근무하고 열심히 맡은 사건을 처리하면 나의 진실성을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했던 것이라고 A 검사는 담담히 적으면서, 조직의 변화를 위해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실제로 A 검사의 표현대로 "힘 없고 빽 없는 일개 검사"와는 대조적으로 가해자인 B 전 검사는 야권으로부터 '우병우 사단'으로 지목될 정도로 박근혜 정부에서 잘 나갔던 인물이다. 검찰 인사를 주무르는 법무부 고위직에까지 올랐다.
이에 대해 B 전 검사는 "오래전 일이고 문상 전에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지만, 보도를 통해 당시 상황을 접했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다만, 그 일이 검사인사나 사무감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언론에 전했다.
◇내부 문제제기 조용하던 검찰 내부, "용기 고맙다" 지지 댓글 수십여 개
그러나 검찰 안에서부터 해당 사건을 개인의 일탈 수준에서 끝낼 분위기는 아니다. 검찰 내부의 문제를 제기하는 글에 용기를 낸 소수만이 댓글을 다는 게 기존의 분위기였다면, 이번 A 검사의 글에는 이날 오후 3시까지만 수십 개의 지지 댓글이 달렸다.
"아주 어려운 결단을 했다"며 응원한다는 내용부터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이, 느리지만 조금씩 현실이 될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하겠다"며 조직 문화 개선의 의지를 가진 글까지 다양하다.
한 검사는 특히 "이런 저런 이유로 게시판에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도 "이번 글에는 댓글을 달지 않을 수가 없다"고 적어 이번 사건을 대하는 검찰 내부의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개인의 일탈 아니라 검찰 '조직'의 문제…"관련자 공모·체계 밝혀져야"
해당 사건이 친고죄 제한이 살아있던 2010년에 일어난 만큼, A 검사가 당한 부당한 행위 자체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B 전 검사 개인이 아니라 검찰 '조직' 차원의 문제에서 해당 사건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지방 검찰청의 한 검사는 "검사가 강한 자의 개가 되어 약한 자를 물고, 강한 자에 대해서는 공공연한 비위에 대해서도 한 줄 세평 하나 작성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B씨가 검사 인사권을 주무르는 최고위 자리까지 가는 동안 일선의 검사들은 묵묵히 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B 전 검사가 공공연하게 문제적 행동을 했음에도 사건을 무마시켰던 당시 A 검사 소속청 관계자,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사건을 넘겼던 감찰은 물론, B 전 검사가 지난 정부 내내 승승장구하는 동안 관련 사건을 반영하지 않았던 인사 관계자까지 체계적인 공모를 했다는 것이다.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다.
실제로 A 검사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진 이유를 알기 위해 노력하던 중 인사발령의 배후에는 B 검사가 있었다는 것을, B 검사의 성추행 사실을 C모 당시 검찰국장이 앞장서서 덮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C 전 검찰국장은 현직 국회의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주요 '적폐'로 꼽혔던 검찰이 문재인 정부에서 최근 적폐 청산과 관련한 주요 수사에 앞장 서고 있는 만큼, 검찰 수뇌부도 해당 사건을 가볍게 보지는 않을 전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시키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각종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검찰이, 그동안 힘겹게 쌓은 국민의 신뢰를 일순간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검사는 "이럴 때 일수록 원칙적으로 처리를 해야 한다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