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세 고은 시인 "인생이 뭐냐구? 눈 감아도 몰라요"

- 시집 <어느날> 펴낸 고은 시인
- 짤막한 시, 수많은 '어느날'들
- 한반도 상황에 대한 고민도 담아
- 평화·통일은 우리민족 최대 과업
- 인생이 뭘까? "삶은 모를수록 삶"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고은 (시인)

1958년에 등단해서 이제는 존재 자체로 하나의 문학사가 된 분이죠. 바로 고은 시인. 고은 시인이 연세가 만으로 여든다섯 되셨습니다. 만 여든다섯 해에 시집을 내셨어요. 시집 제목이 <어느 날>인데요. 놀랍게도 217편의 시 전부가 제목이 <어느 날>입니다. 오늘 화제의 인터뷰, 217편의 어느 날로 돌아온 분. 고은 선생님 직접 만나보죠. 선생님, 안녕하세요?

◆ 고은> 네, 안녕하십니까?

◇ 김현정> 건강은 좀 어떠세요? 독감을 크게 앓으셨다고 제가 들어서요.

◆ 고은> 제 몸에 손님이 들어왔다가 나갔습니다.

◇ 김현정> 손님 잘 보내셨어요, 대접해서?

◆ 고은> 폐를 끼치고 간다고 갔습니다. (웃음)

◇ 김현정> (웃음) 고은 선생님 여전하세요. 위트 있는 삶의 여유. 이런 게 느껴집니다. 일단 저는 선생님, 놀란 게요. 어느 시에도 제목이 없어요. ‘어느 날1’, ‘어느 날2’, ‘어느 날3’ 해서 ‘어느 날217’까지. 왜 제목을 안 붙이셨어요?

◆ 고은> 시는 제목이 무효화되기를 바랄지도 모르죠.

◇ 김현정> 시는?

◆ 고은> 또 어느 때는 제목이 시 전체를 더 운율적으로 표상해 주기도 하고 어느 때는 시 제목이 그 시 내용에 대해서 군더더기 노릇을 할 때도 있고 그렇죠. 이 짧은 시의 경우는 짧은 시 자체가 제목이자 내용이기도 하니까 그럴 때는 제목이 좀 무거울 수도 있고 해서 그런데 이번에는 어느 날이라고 하는 일종의 시간을 초월한 수많은 날들을 그냥 다 범칭할 수 있는 그런 제목으로 어느 날 하나, 어느 날 둘 이런 식으로 펴나갔습니다.

◇ 김현정> 시가 짧아요, 여러분. 이번에는 다 짤막짤막한 시들입니다. 그러니까 그 시 자체가 제목이 될 수 있는데 굳이 군더더기같이 또 제목을 입힐 필요가 없었다 이런 말씀이세요.

◆ 고은> 네.

◇ 김현정> 그런데 저는 사실은 시가 워낙 축약적으로 표현이 돼다 보니까 저 같은 잘 모르는 문외한들은 시 제목 보면서 많이 유추를 하면서 읽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처음에는 좀 어리둥절 했어요. 예를 들어서 이런 시 말입니다. ‘어느 날 14’,

어느날 14

팔이
안으로 굽는다

천만다행이다

다리는
밖으로 굽는다

끝. 어떤 뜻이예요. 선생님?

◆ 고은> 사실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 김현정> 선생님도 모르시면 누가 알아요.

◆ 고은> 이 세상이 알죠.

◇ 김현정> 저는 그래서 수수께끼 같아서 이거 선생님 인터뷰 하면 꼭 여쭤봐야겠다, 고은 선생님한테, 이러고서는 지금 들어왔거든요.

◆ 고은> 이렇습니다. 이제 가령 우리가 팔이 안으로 굽지 않습니까?

◇ 김현정> 그렇죠.

◆ 고은> 그래서 사람들은 가까운 인연, 이웃 이런 것에 편들고 내 새끼, 내 혈육처럼 팔을 안으로 굽는다 해서 사랑하고 또 남의 자손들을 나 몰라라 하고 하는 이런 것을 옛날부터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이야기 했죠.

◇ 김현정> 그렇죠, 팔이 안으로 굽는다. 속담이 있죠.

◆ 고은> 그런데요. 사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팔은 그걸 의식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또 균형이 있게 다리는 밖으로 굽죠. 그러니까 우리는 다리가 밖으로 굽는 것을 표상해서 외부를 더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삶의 미덕도 갖출 수 있다. 굳이 이런 것까지 설명해서는 시가 아니지만요. 말이 나왔으니.

◇ 김현정> 이제는 단번에 이해가 되네요.

◆ 고은> 인체에도 팔은 또 안으로 굽어지고 반대로 다리는 밖으로 굽어지는 그런 대칭의 조화를 내 몸 안에 갖고 있습니다. 그런 오묘한 몸의 구조를 한번 얘기한 것이죠, 단적으로.

◇ 김현정> 몸의 구조이기도 하면서 세상의 구조이기도 하면서 그래서 균형 있게 세상은 굴러가는구나, 이런. 이런 깨달음이 있네요. 여러분, 이런 겁니다. 이런 짧은 시 안에 많은 해석을 담고 있는 시가 바로 고은 시인의 이번 시집인데. 선생님, 제가 여기서 다 소개할 수는 없고 몇 편만 나눠보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먼저 사회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시들, 역시 고은이다 싶은 시들 이런 거 있습니다.

어느 날 96

네놈은 나쁘다

네놈이야 말로 나쁘다

큰 놈 미합중국 트럼프와
작은 놈 북한 정은이가 서로 주고받는다

수소탄 이쪽저쪽
다른 놈들 팔짱 끼고 처마 밑 섰다

요즘 한반도 보면 답답하신 거죠?

◆ 고은> 네. 이 한반도는 가장 중요한 역사의 회기가 통일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사실상 준전시 상태의 휴전입니다.

◇ 김현정> 그렇죠.

◆ 고은> 이거를 살아오면서 그동안 우리는 여러 곡절을 겪고 민주화도 옛날보다 좀 나아진 편이고 이런 역사를 가져왔지만 이것이 온전한 한국 민족사는 아니고 북한과 하나가 될 때만이 우리는 완전한 역사를 우리가 이뤄나갈 수 있는데 이렇게 세계에는 진단을 통합으로 하는 역사가 고대에 있어 왔습니다. 이것을 이제는 우리가 세계와 우리 민족이 함께 어울려서 통일로 만들어야 되는 과업이 있죠.

◇ 김현정> 과업이 있죠.

◆ 고은> 이런 중요한 과제를 앞두고 우리는 분단이 악화되고 악화되고 악화될 대로 돼가지고 지금 핵문제까지 와 있습니다.

◇ 김현정> 맞습니다.

◆ 고은> 고민을 담은 시가 아까 그 짧은 시죠. 다만 당면한 사업을 해야 앞으로 우리가 한 30년 이렇게 꾸준히 노력해야 남북이 서로 조금씩 조금씩 적의 감정을, 적의 의식을, 적의 체제를 조금씩 부숴가면서 하나가 돼야 하죠.

◇ 김현정> 지금부터 부지런히 시작해도 30년 걸릴 텐데 지금 이렇게 해서 어떡하나.

◆ 고은>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통일은 극적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듯이 그렇게 되지 않고 우리는 아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몇 번 이어가면서 계절이 오듯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통일의 날이 올 겁니다. 그게 우리 민족이 앞으로 만나야 할 미래의 축복이죠.

◇ 김현정> 선생님 말씀이 저는 절규처럼 들립니다. 절규처럼 마음이 아프게 들립니다. 그런 시가 바로 ‘어느 날 96’ 아흔여섯. 고은 선생님, 여러분 지금 만나고 계십니다. 저는 선생님, 이번에 217편 시를 쭉 읽으면서 이제 고은 시인은 어떤 경지에 이른 듯하다. 글을 잘 쓴다, 못 쓴다, 그런 차원이 아니고 그냥 도인 같은 느낌 있잖아요. 시에다가 굳이 제목을 달 필요도 없다고 느껴버린 어떤 도인의 느낌? 저 이런 거 받았어요, 선생님.

◆ 고은> 과찬이십니다.

고은 시인 (사진= 창비)
◇ 김현정> 정말로. 삶에 관한 시들도 몇 편 있는데 제가 그중에 두어 편 읽어 보면 이렇습니다.

어느 날161

달이 구름 속에 들어갔다

뻐기지 마
내 생애는 가르치기가 아니라 배우기야
배우다
배우다
죽어

어느 날168


어차피
다 마시지 못 하고 간다
다 미워하지 못하고 간다 다 살지 못하고 간다
누구에게나
한 생애는 반 생애

고은 선생님, 삶이 인생이 뭡니까?

◆ 고은> 참으로 이 세상에서는 대답할 사람이 없겠습니다.

◇ 김현정> 선생님도 아직 못 찼으셨어요, 그 정답?

◆ 고은> 찾아서는 안 되는 겁니다. 삶의 의미를 그렇게 노출시킬 수가 없죠. 삶은 모를수록 삶이겠죠.

◇ 김현정> 모를수록 삶이다. 그러면 우리 눈 감는 그 순간까지 모르는 거예요 아니면 눈 감을 때 아는 거예요?

◆ 고은> 그 눈을 감아봅시다.

◇ 김현정> 눈을 감아봐야, 눈을 감아봐야 그때 알겠네요. 만으로 여든다섯 되셨어요. 하지만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살아 있는 전설, 고은 선생님 지금 만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시상이 떠오르세요. 매일매일?

◆ 고은> 시상도 떠오르고 또 새로 공부도 하고 또 이 세상도 바라봐야 되고 그래서 늘 나는 학생이죠.

◇ 김현정> 여러분, 고은 시인 지금 여든다섯 되셨는데 한 달에 책을 50권씩 구입하신답니다. 정말 저는 반성하게 되는데요. 선생님, 아직 1월입니다. 새해 시작입니다. 우리 방송 듣고 계시는 청취자들께 선생님의 덕담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될 것 같아요.

◆ 고은> 아니요. 덕담 같은 거 할 줄 모릅니다. 덕담이야 이 세상에 많지 않습니까? 우선 서로 인사할 때 ‘건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하는 인사 자체가 다 덕담으로 차 있죠.

◇ 김현정> 그렇죠.

◆ 고은> 글쎄 우리는 이 어려운 세상을 함께 걸어갑시다라는 이 간절한 공동체의 말씀 한마디밖에는 내가 할 게 없습니다.

◇ 김현정> ‘우리 이 어려운 세상, 함께 걸어갑시다. 함께 걸어갑시다.’ 좋네요. 우리 민주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말씀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통일을 말씀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가정에서 함께하자라는 말씀 같기도 하고 모두에게 통하는 이야기네요. 함께 가자.

◆ 고은> 네. 참 꿈보다 해석이 참으로 황홀합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웃음) 저도 새해에 이렇게 고은 선생님한테 칭찬도 받고 힘이 나네요, 선생님. 건강하시고요. 지치지 마시고 매일매일 이 좋은 시 쏟아내주셔야 됩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건강하세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 고은> 고맙습니다.

◇ 김현정> 어느 날이라는 시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고은 시인 만났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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