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생존자들은 아직도 불타는 망루에 있다

영화 '공동정범'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 서로 원망하며 고통받아"

- 영화 '공동정범', 생존자 5인의 출소 이후의 삶과 상처 조명
- 국과수도 화재 원인 못 밝혔는데…"儉, 경찰관을 죽이려는 의도된 화재"
- 유가족이자 참사 생존자, 아버지 죽음의 가해자가 된 망루 책임자 이충연씨
- 연대 투쟁하러 왔던 4명의 다른 지역 철거민…외부 세력이라는 낙인까지
- 억울함, 분노, 자책… 책임지지 않은 국가에 의해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기도
- 용산 생존자 "1월만 되면 알람 울리듯 몸과 마음이 반응"
- "공동정범 속편? 생존자들이 상처를 치유한 현실에서 만들어지길"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5)
■ 방송일 : 2018년 1월 24일 (수)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일란 감독, 이혁상 감독
 
◇ 정관용>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의 남일당 망루. 5명의 철거민, 1명의 경찰관 목숨을 잃은 사건. 여러분 기억하시죠. 그런데 여기서 살아남은 5명의 철거민들이 공동정범으로 감옥에 갔습니다. 그 5명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 1월 15일(목)에 개봉이 되는데요. 김일란 감독, 이혁상 감독 두 분이 함께 만드셨어요. 그래서 오늘 스튜디오에 직접 초대했습니다. 김일란, 이혁상 감독 어서 오십시오. 
 
◆ 김일란> 안녕하세요. 
 
◆ 이혁상> 안녕하세요. 
 
◇ 정관용> 용산참사 관련해서는 몇 년 전에 두 개의 문이라는 영화가 있었죠. 
 
◆ 김일란> 네. 
 
◇ 정관용> 그 두 개의 문하고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겁니까? 
 
◆ 김일란> 공동연출이 달라졌는데요. 
 
◇ 정관용> 그때는 김일란, 홍지유. 이번에는 김일란, 이혁상. 
 
◆ 이혁상> 제가 치고 들어왔습니다. 
 
◇ 정관용> 그거밖에 차이가 없습니까?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용산참사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공동정범’ 의 김일란(오른쪽), 이혁상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서교동 사무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김일란> 아무래도 두 개의 문 같은 경우에는 당시에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했었던 경찰 특공대들의 증언이라든가 재판 기록, 뉴스라든가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용산참사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재판이라고 하는 것을 관객분들이 간접적으로 체험을 하시면서 이 판결 자체를 다시 한 번 합리적으로 생각해 주시면 어떨까.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면요.
 
이번에 공동정범 같은 경우에는 그때 당시에 망루에 올라가셨던 농성 철거민들이 출소를 한 이후에 어떤 삶을 살고 계시나에 초점을 맞춰서 제작을 했고요. 조금 더 사건에 주목하기보다는 사람에 주목해서.
 
◇ 정관용> 사람. 두 개의 문은 용산참사의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라면.. 사실 이 다섯 분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된 분들이죠.
 
◆ 김일란> 맞습니다.
 
◇ 정관용> 몇 년형을 다 받으셨죠?
 
◆ 이혁상> 대략 한 4년에서 5년형을 받으시고 2013년 1월 31일에 특별사면을 받고 출소하셨습니다.
 
◇ 정관용> 2013년 1월이면 그래도 꼬박 한 3~4년 사신 거네요.
 
◆ 김일란> 4년 정도.
 
◇ 정관용> 그렇죠? 그 다섯 분 중에 한 분은 당시 현장에서 아버님을 잃지 않았나요?
 
◆ 김일란> 맞습니다. 다섯 주인공 중에 이충연 씨 같은 경우에는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이기도 했었고요. 그러니까 전체 망루 농성의 책임자였죠. 그리고 그분의 아버님이신 이상림 씨 같은 경우에도 당시 연세가 71살. 꽤 나이가 많으셨던 노인분이셨는데 같이 망루에 올라가셨다가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을 하셨는데요. 그때 이충연 씨 같은 경우에는 그래서 유가족이기도 하고 망루에서 살아 남은 생존자이기도 한 분이셔서 그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을 하게 됐던 거죠.
 
◇ 정관용> 그런데 법률상은 아버지를 죽게 만든 가해자가 된 거네요.
 
◆ 김일란> 그렇습니다.
 
◇ 정관용> 나머지 네 분은 어떤 분들입니까?
 
◆ 이혁상> 나머지 네 분은 다른 지역의 철거민이셨어요.
 
◇ 정관용> 네. 연대 투쟁하러 오신 분들.
 
◆ 이혁상> 그렇죠. 바로 연대를 위해서 용산으로 모두 모이셨던 건데 사실 그날 망루 농성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도 잘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망루에 오르셨던 상황에서.
 
◇ 정관용> 지원하러 왔다가.
 
◆ 이혁상> 그렇죠. 이런 참사가 일어나게 돼서 정말 그야말로 소용돌이처럼 휘말려 돌아가시게 된 거죠.
 
◇ 정관용> 그 다섯 명이 공동정범이다.
 
◆ 이혁상> 그렇습니다.
 
영화 <공동정범> 스틸컷
◇ 정관용> 공동정범이 뭐예요, 정범.
 
◆ 김일란> 그러니까 어떤 범행을 할 때 공모 관계에서 같이 범행을 했던 사람들인데 좀 더 주체적이었던 주범이 있고 거기에 조금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보조범 같은 그런 약간 이렇게 갈리는 게 아니라.
 
◇ 정관용> 주범과 정범이 아니라.
 
◆ 김일란> 모두 다 주범이라는 정범이라는 의미에서.
 
◇ 정관용> 5명이 똑같이 주도했다는 뜻이군요.
 
◆ 김일란> 그렇죠. 되게 재미있는 건 사실 공동정범이라는 말이 어렵잖아요. 저희도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이지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웠었는데요. 작년 국정농단의 주범이었던 최순실, 박근혜 전 대통령 관계 자체가 공동정범인 거죠.
 
◇ 정관용> 그렇게 이해하니까 금방 이해가 되네요. 그러면 이 다섯 분이 최순실, 박근혜와 같은 관계던가요? 그려보니까 어때요? 
 
◆ 김일란> 그렇게 말하기가 진짜 어려워서 이 부분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 기소 자체가 과잉기소되었다고 저희가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있었는데요. 
 
◇ 정관용> 뭡니까? 
 
◆ 김일란> 화재가 났고 그리고 그 화재로 인해서 철거민 다섯 분과 경찰관 한 분이 돌아가셨잖아요. 그런데 이 화재의 원인이라고 하는 것은 국과수에서도 원인을 알 수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는데 검찰에서는 화재의 원인을 철거민들이 당시에 갖고 있었던 화염병이라고 단정을 지었던 게 하나가 있고요.
 
더불어서 공동정범으로 기소가 되려면 이분들이 경찰관 한 분을 죽이려고 공모를 해서 불을 내서 경찰관 한 분이 돌아가셨다. 이거 자체가 성립이 되어야 하는 건데 공모를 경찰관 한 분을 죽여야겠다고 공모를 할 리도 없을뿐더러 화제 자체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였기 때문에 공동정범으로 기소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기소였다고, 약간 법리적 해석에 문제가 있었다고 당시에도 법조인 분들이 성명을 내거나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 정관용>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왜 이 5명이 공동정범이냐고 묻는 그런 질문들이 나오겠군요. 
 
◆ 김일란> 그렇죠. 
 
◇ 정관용> 그리고 이 다섯 분이 2013년 1월에 출소하면서부터 그분들의 모습을 따라다니며 찍었다면서요? 
 
◆ 이혁상>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랬더니 이 다섯 분들이 또 서로 막 싸우더라면서요? 공동정범인데 왜 싸웁니까?
 
◆ 이혁상> 그게 아마 용산에 계셨던 철거민분들과 사실 정말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연대 오셨던 철거민들 사이에 어떤 말하자면 좀 약간 인지상정의 어떤 문제이지 않을까도 싶어요. 어떻게 보면 정말 선심을 다해서 연대 투쟁의 형태로 도와주시러 갔던 거였는데 그런 사고를 당했고 정말 그 뒤로는 어떻게 보면 용산의 철거민들은 그래도 용산에 사셨기 때문에 좀 주목을 받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연대 오셨던 분들은 저분들은 과연 어떤 배경에서 이렇게 오시게 된 건지 그리고 저분들이 어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지 사실 세간에 관심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 어떤 소외감 이런 것들이 결국 인간관계에서도 어떤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나라는 생각에 저희가 그 점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 정관용> 그 당시 정권적 시각에서 보면 그분들은 외부 불순세력들이었거든요.
 
◆ 이혁상> 맞습니다. 외부 세력이죠, 정말.
 
◇ 정관용> 특히 외부 불순세력. 이런 식으로 보통 지칭이 되고 언론에도 그런 식으로 많이 보도가 됐었고. 그러니까 생생하게 그분들을 따라다녀 보니까 어떤 문제가 있던가요?
 
◆ 김일란> 너무 많은 문제들이 있었는데요. 일단 가장 기본적으로는 이분들이 참사의 트라우마가 너무 심해서 각자의 고통이 너무 심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저희 주인공 중에 한 분인 지석준 씨 같은 경우에는 망루에서 떨어지면서 잘못 떨어지시는 바람에 두 발 모두 다 발목이 분쇄되는 그러니까 부러지고 조각나는 그런 큰 부상을 입으셨고 척추도 다치셨어요. 그래서 1년 동안 전신마취를 하는 큰 수술을 15번 정도 받으실 정도였고 그 이후에 재활 과정도 굉장히 힘드신 상황이셨고요. 
 
또 다른 분들 같은 경우에는 그 트라우마가 너무 심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든가 하는 경우도 있으시고요. 그리고 재개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출소하고 왔는데도 정말 반파된 집에 사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러니까 이분들이 왜 농성을 했느냐도 중요했지만 참사 이후에 겪고 있는 이 일상의 고통을 알리는 것이 저희한테는 되게 중요한 문제가 되더라고요.
 
◇ 정관용> 사람들은 잊고 있는데 일상의 고통 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더라.
 
◆ 김일란> 그렇죠.
 
<공동정범>을 연출한 김일란 감독 (사진=시사자키)
◇ 정관용> 그리고 그분들의 마음 속에서 뭐가 들어 있던가요?
 
◆ 김일란> 그런데 이 한편에서의 억울함이 있잖아요. 재판이 부당했기 때문에 갖고 있었던 그 억울함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공동정범으로 엮이면서 하나의 운명공동체가 된 것에 대해서 서로를 원망하는 감정이 또 폭발하시더라고요.
 
◇ 정관용> 서로를 원망해요?
 
◆ 김일란> 네. 그러니까 사실은 국가에 의해서 부당한 재판에 의해서 범죄자가 되어서 모두 다 감옥에 갔다 오셨는데 그 원인을 서로 막 서로에게 찾는 거예요. 네 탓이다.
 
◇ 정관용> 그래요?
 
◆ 김일란> 네. 아무래도 실질적으로 책임 지는 사람이 없다 보니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원망하는 그런 상황이 되더라고요.
 
◇ 정관용> 그래요. 네 탓이라고 하는 얘기들을 직접 하던가요?
 
◆ 이혁상>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복잡한 감정이신 것 같아요. 이분들이 어쨌든 한때는 동지셨고 그리고 성심성의껏 정말 서로를 돕기 위해서 올라가셨던 거여서 원망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또 걱정도 되는 그런 복잡한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어디다가 탓할 수가 없으니까 이러는 건가요?
 
◆ 이혁상> 그렇죠. 이 문제에 대해서 정말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 현재는 국회의원이죠. 이분들이 어떠한 책임이나 이런 것들도 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국가에 의해서 이것이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거나 책임 소재가 명확히 가려지지 않은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정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원망이 향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많은 이런 참사에서 흔히 목격될 수 있는 그런 상황인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결국은 사회적, 국가적 폭력의 희생자들의 개개인의 삶이 피폐해질 뿐 아니라 그들의 공동체마저 붕괴되더라. 
 
◆ 김일란> 그렇죠. 이 참사를 겪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잖아요. 어디서부터 이 사건이 시작됐을까. 내가 만약에 용산에 연대를 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연대를 가신 분들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요.
 
또 한편에서는 연대를 오라고 하신 분들은 더 미안해지는 상황이 발생을 하잖아요. 내가 연대 오라는 얘기를 해서 저 사람이 저렇게 불행을 겪고 있구나 자책하게 되기도 하고 그런 감정들이 서로를 원망하는 감정으로 점점 더 증폭되면서 이게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을 저희는 옆에서 지켜봤었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러한 과정을 다큐에 담아야 하는 것일까. 어떤 기자분은 집안싸움 같다, 이런 얘기도 하시기도 했었는데 하나의 공동체가 겪고 있는 내밀한 그런 어려움, 고통 이런 것들을 다큐에 담는다는 게 사실 저희한테는 좀 망설여지는 지점이었는데요.
 
그래도 이분들의 이러한 갈등이 그냥 사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정말 억울함과 자책과 참사의 피해와 국가로부터 국가 시스템으로부터 발생한 감정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이거를 다큐에 담아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었던 거죠.
 
◇ 정관용> 이분들이 출소 후에 정기적으로 모이거나 만나거나 그런 게 있었어요? 어때요?
 
◆ 이혁상> 이분들이 출소를 하시고 동지회라는 걸 만드셨어요. 그래서 좀 서로의 아픔이나 이후에 어떤 진상규명 과정에 보탬이 되고자 이렇게 정기적으로 모이는 자리를 만드셨는데 사실 그 자리에 공동정범의 주인공인 이충연 용산 4구역위원장 같은 경우에는 불참을 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 정관용> 안 오셨나요?
 
◆ 이혁상> 그러다 보니까 갈등이 더 커지고 왜 우리가 이렇게 모이는데 용산 사람들은 오지 않느냐 이러면서 또 반목이 심해졌던 것 같아요.
 
◇ 정관용> 왜 안 오신답니까?
 
◆ 이혁상> 일단 이 이충연 위원장 같은 경우는 그런 모임보다는 진상규명을 향한 어떤 대의명분이 굉장히 중요했던 사람이어서 오히려 큰 집회나 이런 곳에서 용산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그런 공적인 활동을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사실 이렇게 내 옆에 있었던 사람들의 감정에 귀 기울이고 그 감정을 풀어주는 그런 관계가 사실 피해자들 그리고 생존자들 사이에서도 필요했던 건데 어떻게 보면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의 차이 때문에 결국 이런 갈등이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나머지 네 분은 또 더 서운하겠군요.
 
◆ 김일란, 이혁상> 그렇죠.
 
◇ 정관용> 그나저나 이분들은 아까 여러 차례 수술을 받고 이런 분들도 있었고 정신적 트라우마도 말씀하셨는데 지금 생계는 어떻게들 꾸려가십니까? 
 
◆ 이혁상> 이후에 그래도 이전에 하던 호프집을 다시 열어서 하시거나 아니면 새로운 정말 일. 그래서 음식을 다시 배우셔서 계속해서 뭔가 이렇게 자그마한 식당 일을 하시기도 하시고 또 직업 훈련을 받기도 하시는데 어떤 분들은 굉장히 적응을 잘하셔서 자신의 삶을 잘 이끌어가시는 분들도 계신 반면에 여전히 또 이렇게 새로운 무언가에 적응하시는 것을 힘들어하시는, 그리고 또 계속해서 뭔가 이렇게 반복적으로 트라우마와 기억들, 이런 것들이 계속 돌아오시나 봐요.
 
◇ 정관용> 왔다 갔다 이렇게.
 
◆ 이혁상> 특히나 2009년 1월 20일이었으니까 사실 딱 이맘때, 1월에 접어들기만 하면 뭔가 이렇게 마치 자명종이 알람처럼 울리는 것처럼 이 몸과 마음이 반응을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 정관용> 더 힘들어지고.
 
◆ 이혁상> 그래서 이맘때가 가장 힘드신 것 같아요. 그런 어떤 트라우마들이 계속해서 일상생활을 잠식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동정범>을 연출한 이혁상감독 (사진=시사자키)
◇ 정관용> 그분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서 우리가 다큐로 만들겠습니다 하니까 다들 흔쾌히 동의하시던가요, 그거는?
 
◆ 이혁상> 사실 처음에는 모든 분들이 일단 이 용산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겠다라는 마음, 그 열망이 강하셨기 때문에 흔쾌히 승낙을 하셨고요. 저희가 전작인 두 개의 문이 그래도 좀 사회적으로 반향을 얻기도 하고 많은 분들에게 용산을 새롭게 환기시켰던 그런 기능을 했던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다면 두 개의 문처럼 용산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에서 승락을 하셨지만 저희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 내부의 갈등과 인간관계에 대해서 주목을 하면서 약간 이걸로 포커스를 이동하겠습니다라고 했을 때는 사실 많은 분들이 약간 주저함이 없지는 않으셨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용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건 어쩌면 좀 남들에게 보이기 싫은 부끄러운 우리들의 관계라는 생각에 그러셨지만 어쨌든 그런 것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용산 문제가 다시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라고 한다면 마음먹을 수 있겠다, 결정할 수 있겠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결국 이렇게 완성이 됐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25일 개봉이죠?
 
◆ 이혁상> 그렇습니다.
 
◇ 정관용> 완성본을 이분들한테 보여드렸나요?
 
◆ 김일란> 네.
 
◇ 정관용> 뭐라고 하시던가요?
 
◆ 김일란> 처음에 외부에 공개되기 전에 봤을 때는 저희 감독들 너무 수고했다고 칭찬 말씀 해 주시면서 서로의 상처가 저렇게까지 깊은 줄 몰랐다.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직접 보고 듣고 하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이런 말씀을 다 각자 해 주셨고요. 특히나 이충연 위원장 같은 경우에는 부끄럽고 민망하고 죄스러워서 얼굴을 들기가 힘듭니다.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며칠 전에 용산 9주기 때 20일날 또 다 같이 보셨는데 이번에는 조금 그때보다는 가볍게 보시면서 우리가 살아 있으니까 이런 영화도 또 같이 보고 즐겁다 이런 말씀도 해 주시기도 했어요.
 
◇ 정관용> 이제 두 분 감독님들이 한마디씩.. 영화 만들면서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관객들은 이거를 봐줬으면 좋겠다.
 
◆ 김일란> 저는 꼭 이걸 봐주셨으면 좋겠다까지는 아니고요.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처음에는 개봉을 할 때 그렇게 큰 기대는 없었는데요. 왜냐하면 다들 아시겠지만 저희가 완성됐을 시점에는 박근혜 정권이었었고 사실 좀 암울했고 이 이야기가 과연 세상에 가닿을 수 있을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잘 들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사실 큰 기대는 없었어요.
 
◇ 정관용> 완성된 건 꽤 오래 전이군요.
 
◆ 김일란> 네. 2016년 가을이었거든요. 그런데 지난 촛불을 지나고 촛불에 모였던 사람들의 그 열망으로 정권교체를 이루고 정권교체뿐만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들이 있었고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아마도 이제 희망을 갖고 이 정권을 바라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 그에 어울리게 어쨌든 새로운 바람이 일고 있고요.
 
그리고 얼마 전에도 경찰들의 인권 침해 관련한 사건들을 재조사하겠다, 진상조사하겠다라고 발표도 하셨고 거기에 용산참사도 속해 있다 보니까 희망이라는 게 좀 생기고 관객분들이 끊임없이 지켜봐주시고 또 용산참사 진상규명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면 진짜 가능할 수도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조금은 기대와 설렘을 갖고 있습니다.
 
◆ 이혁상> 시사회나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시고 나서 그러면 공동정범의 다음 편, 3탄은 언제 나오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관객분들이 좀 있으셨어요. 그건 아마도 이 영화를 통해서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해 주신 것 같은데요. 저는 만일 공동정범의 속편이 나온다면 그건 영화관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또 저희 주인공분들, 참사의 피해자, 희생자 분들의 트라우마가 그래도 조금은 사라질 수 있는 그런 변화를 이끌어내서 해피엔딩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피해자면서 가해자가 된 공동정범들. 그분들의 생생한 아픔. 우리가 함께 공감할 수 있다면 뭔가 진상규명의 희망 꽃피울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말씀으로 듣고요. 많은 분들이 이 영화에 관심 갖고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네요. 개봉관은 많이 잡으셨어요?
 
◆ 김일란> 열심히 잡고 있고 점점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공동정범 만드신 김일란, 이혁상 두 감독을 만났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일란, 이혁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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