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전(32강전)에서 세계 4위 알렉산더 즈베레프(독일)를 3-2로 꺾은 데 이은 낭보다. 즈베레프를 누르고 차세대 선두 주자로 인정 받은 것도 놀라웠지만 조코비치를 넘으면서 전 세계에 이름을 확실하게 알렸다. 전 세계 1위에 거둔 완승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현의 올해 선전은 지난 시즌 뒤 어느 정도 예상이 됐다. 부상으로 한동안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를 쉬었지만 생애 첫 투어 우승을 차지하는 등 자신감을 확실히 얻었다. 정현은 5월 BMW오픈에서 생애 첫 투어 4강, 프랑스오픈에서는 당시 메이저 최고 성적인 32강 에 올랐다. 11월에는 21세 유망주들의 최강전인 ATP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에서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의 상승세가 올해 호주오픈 돌풍의 발판이 된 모양새다. 정현의 자신감은 지난 시즌 결산 인터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 우승 뒤 귀국 인터뷰에서 정현은 자신의 우상이자 한국 테니스의 전설 이형택(42 · 은퇴)을 넘어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한국 남자 선수 역대 최고 랭킹 경신이었다. 정현은 대선배 이형택이 밟았던 36위에 대해 "내년(2018년)에 (그 기록을) 깰 수 있다고 장담을 하진 못한다"면서도 "하지만 언젠가는 깰 수 있지 않을까, 거의 가까이 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평소 신중한 정현이 그 정도로 얘기를 했다는 것은 충분히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24일 오전 11시부터 펼쳐지는 정현의 호주오픈 8강전 상대는 세계 97위 테니스 샌드그렌(27 · 미국)이다. 이번 대회 정현 못지 않은 돌풍의 주역이긴 하지만 약 2주 전 한번 꺾은 적이 있는 상대다. 정현은 지난 9일 ATP 투어 ASB클래식 1회전에서 샌드그렌을 2-1(6-3 5-7 6-3)로 눌렀다.
샌드그렌을 꺾는다면 또 다시 한국 테니스 역사를 새로 쓰게 된다. 꿈과도 같은 한국인 최초 테니스 메이저 대회 4강 진출이다. 한국 테니스의 전설로 남을 수 있다.
지난해 결산 인터뷰에서 정현은 '테니스의 김연아, 박태환'이라는 칭찬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 아직 멀었다는 것. 정현은 "그런 대단한 선수들과 비교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자세를 낮췄다.
그러면서도 자신감은 있었다. 정현은 "몇 년 뒤에는 테니스도 피겨스케이팅이나 수영처럼 인기 종목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모든 선수들이 노력하기 때문에 꿋꿋이 하다 보면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유의 겸손함을 감안하면 확신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물론 정현이 세계 정상에 오르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잖다. 그러나 근접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전 세계 1위를 넘었고, 메이저 4강까지 넘보고 있다.
올해 안에 꿈이 이뤄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현과 동고동락하며 역사 창조를 함께 하고 있는 손승리 코치는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김칫국을 미리 마시지 않겠다"면서도 "매 대회 출전할 때는 우승이라는 목표를 하고 나간다"고 강조했다.
우상 이형택을 넘어 '테니스의 김연아, 박태환'을 꿈꾸는 정현. 지금도 충분히 한국 테니스의 위상을 높였지만 일단 24일 샌드그렌을 넘어야 더 큰 꿈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정현은 호주오픈 8강 진출을 이룬 뒤 자신의 SNS에 "아직 안 끝난 거 아시죠? 미스터 충(정현의 영어 성인 Chung) 계속 갑니다!"고 남겼다. 한국 테니스의 전설은 현재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