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왜 북한을 '북측'이라고 할까?

6·15남북공동선언에 얽힌 사연…"존중 없이는 평화도 없다"

북측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방남한 지난 21일 서울역에서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KTX를 통해 강릉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최근 남북이 다시 화해의 물꼬를 트면서, 관련 소식을 다루는 방송·신문 등 언론 매체가 남과 북을 각각 '남측' '북측'이라고 일컫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지난 2000년 이뤄진 6·15남북공동선언에 얽힌 사연이 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우리가 남과 북을 '남한' '북한'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달리, 북측은 각각 '남조선' '북조선'이라고 지칭한다.


이로 인해 남북이 만나는 공식석상에서는 오래 전부터 상대방을 서로 '귀측'이라고 부르거나, 우리는 북을 '북측' 또는 '북쪽', 북은 우리를 '남측'이나 '남쪽'이라고 가리켜 왔다.

이는 올해로 65년째 둘로 갈린 채 반목과 갈등이 쌓여 온 한반도에서, 남북이 서로를 존중할 목적으로 탄생시킨 화법인 셈이다.

언론에서는 지난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당시 남측 기자협회와 PD연합회가 남과 북을 공식 지칭할 때 '남측' '북측'을 쓰기로 합의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통일부 산하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김진향 이사장은, 지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통일외교안보정책실 등에서 대북정책을 수립하며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접했다.

김진향 이사장은 21일 CBS노컷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서, 그해 9월 남측 언론사 사장단이 북측을 방문했다"며 "제 기억으로는 그때 방문을 계기로 기자협회와 PD연합회에서 '남측' '북측'이라는 공식 호칭을 쓰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북측 관련 뉴스가 워낙 많이 쏟아지다보니 어느 언론사는 '북한', 또 다른 언론사는 '북측'이라고 쓰는 등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일었다"며 "남북 합의문 등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남측' '북측'이라는 표현을 써 왔는데, 2000년 당시 언론사 사장단이 북측을 다녀온 것을 계기로 언론도 '남측' '북측'이라고 통일해 쓰기 시작했다"고 부연했다.

◇ "남측·북측이라는 표현, 남북이 상호 존중으로 가는 첫 출발점"

북한·통일 문제를 연구해 온 학자이기도 한 김 이사장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들어 이러한 관례를 깨고 남측을 한국, 북측을 북한으로 지칭하는 것부터 시작해 북측 지도자에 대한 직책을 생략하고 이름만 부르는 식으로 변해 갔다"며 "남북 관계가 안 좋아지면서 언론 역시 자체 합의를 잊었는지, 지난 정권의 이러한 기조를 따라간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으로 가는 분위기에서, 남북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갖고 테이블에 앉는 순간 서로 상대방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이때 남과 북을 동시에 지칭해야 할 시점에서 서로가 '남측' '북측'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자세로서 대화의 첫 출발"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일부 종편 프로그램을 보면 오로지 '북한'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는 언론에서 '남측' '북측'이라고 지칭하기로 한 역사 자체를 모르는 데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북측이 남측에 내려왔을 때, 그들이 '남조선' '북조선'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어색하지 않나. 그들 역시 '남한' '북한'에 대해 똑같은 느낌을 받는다"며 "그렇게 상호 충돌하기 때문에 합의에 따라 '남한' '북한' '남조선' '북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남측' '북측'이라고 지칭해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특히 "존중 없이는 평화도 없다. 진정 남북 화해·협력·평화를 바란다면, 진정 헌법적 가치인 평화 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남북 상호 존중은 기본이 돼야 한다"며 "그 첫 출발에는 언론이 남과 북을 각각 '남측' '북측'으로 부르기로 한 합의를 지켜 나가는 것도 포함된다. 합의를 충실히 이행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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