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 공식 홈페이지에 짧은 동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남자 단식 세계 랭킹 4위의 알렉산더 즈베레프(독일)이 라켓을 바닥에 집어던져 부러뜨리는 영상이다. 홈페이지는 즈베레프가 스스로에게 분노를 느낀 이유는 바로 정현(삼성증권 후원)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정현은 20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남자단식 3회전에서 알렉산더 즈베레프를 세트스코어 3-2(5-7, 7-6<7-3>, 2-6, 6-3, 6-0)으로 꺾고 생애 첫 메이저 대회 16강 진출 쾌거를 이뤘다.
3세트까 끝났을 때까지만 해도 즈베레프의 승리 가능성이 더 높아보였다. 하지만 정현이 하얀 티셔츠를 벗고 파란 옷으로 갈아입은 순간부터 경기 양상이 달라졌다. 옷만 바뀐 게 아니었다.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정현은 차분하게 즈베레프와 맞섰다. 4세트 들어 즈베레프가 서비스 게임을 놓친 이후부터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는데 왜 조명을 켜지 않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날만 어두운 게 아니었다. 즈베레프의 경기력은 점점 더 빛을 잃어갔다.
정현의 5세트는 완벽했다. 6-0으로 끝냈다. 즈베레프는 5세트 통틀어 5점밖에 따내지 못했다. 5점 중 자신이 직접 득점을 결정지은 '위너'는 2개뿐이었다. 즈베레프가 5세트에서 자신의 실수로 정현에게 헌납한 점수는 무려 14점. 반면, 정현이 실수로 인해 내준 점수는 단 1점뿐이었다.
즈베레프는 자신의 서비스 게임이었던 첫 게임에 이어 세번째 게임마저 정현에게 내주자 더이상 화를 참지 못했다. 라켓을 바닥에 집어던졌고 다시 발로 밟아 완전히 부러뜨렸다.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이후 정현의 승리를 의심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 부쩍 성장한 정현의 기량과 차분하면서도 담대한 플레이에 세계 랭킹 4위의 멘탈은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