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황금 개띠 해' 거리로 내쫓기는 유기견들

산속 보호소, 민원에 '철거위기'…삶의 안정 되찾은 유기견 또 어디로 가나

남양주유기견보호소에서 어렵게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유기견들.<사진=고태현 기자>
"갈 곳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애들을 모두 안락사 시키고 죽으라는 것밖에 안됩니다 눈앞이 깜깜합니다"


올 겨울 들어 최강 한파가 몰아친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용정리의 한 유기견 보호소.

내비게이션 조차 길 안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보호소 주변은 우거진 나무로 햇빛도 잘 들지 않아 어둑했다.

보호소 안으로 들어서자 수북이 쌓인 눈이 녹지도 않은 채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고, 인기척을 느낀 개들은 요란하게 짖기 시작했다.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는 골든리트리버 옆 창살 사이로 도사견이 사납게 짖고 있다.<사진=고태현 기자>
대형견이 있는 시설로 자리를 옮기자 화목난로가 눈에 들어왔는데, 연료를 보관하는 창고에는 나무토막 몇 개만 보일뿐 텅 비어 있었다.

시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 누구나 알만한 대형견들이 펜스에 달라붙어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사납게 짖어댔다.

유기견들의 눈빛에서는 경계심이 묻어 나왔고, 애처롭게 쳐다보는 몇몇 유기견은 사람의 손길을 갈망하는 것처럼 느껴져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보호소 관계자는 "장폐색으로 수술을 받은 진돗개 한 마리가 건강이 악화돼 오늘 새벽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연신 반가움을 표시하는 소형 유기견들.<사진=고태현 기자>
소형견이 머무는 시설에서는 대형견과 달리 경계심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수십 마리의 유기견들은 주인에게 버림받은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반가움을 표시하는데 바빴다.

시설 한편에는 한쪽 눈이 검게 변해 시력을 잃거나 푸석한 털 사이로 피부병을 앓는 유기견들이 고개를 숙이고 움츠리고 있었지만 모습은 편안해 보였다.

이처럼 주인에게 버려진 뒤 어렵게 삶의 안정을 되찾은 유기견들이 또다시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해당 보호소가 개발제한구역 내 허가 없이 축조된 불법건축물에 해당한다는 민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관할청인 남양주시는 현장 조사를 통해 보호소가 불법으로 건축된 사실을 확인했고, 3월 말까지 건물을 자진 철거하라는 원상복구 명령을 내렸다.

때문에 보호소 측은 200여 마리에 이르는 유기견을 데리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속만 태우고 있다.

당장 새로운 시설을 마련할 재원도 없을뿐더러 이전을 한다 해도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기간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개발제한구역 내 불법건출물을 원상복구하라는 남양주시의 공문.<사진=고태현 기자>
임정애 보호소장은 "인구 밀집지역에서 개를 키우면 민원이 끊이지 않아 이곳 산속까지 오게 됐다"면서 "사비를 털어 시설을 마련하고 8년간 개들을 보호하며 병원비 등으로 카드를 쓰다 보니 저도 파산신청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법을 어기고는 있지만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모아놓은 돈이 있겠느냐"면서 "이사 비용도 없이 3월 말까지 이전하라는 것은 유기견을 모두 안락사 시키고 죽으라는 것 밖에 안된다"라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살아있는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며 "공익을 위한 일이면 불법건축물이라도 눈감아 주고 인가를 해줘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시간이라도 더 줘야한다"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남양주시는 안타까운 사정을 공감하면서도 보호소 측에 내린 행정명령은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원이 제기된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 행정절차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감사에 적발돼 징계를 받는 등 공무원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의 한 관계자는 "법에 근거해 업무를 처리하는 공무원으로써 이미 나간 행정명령을 번복할 수는 없다"면서 "보호소 측의 사정은 안타깝지만 원상복구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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