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민주열사 비명소리 귓가에' 남영동 대공분실

영화 ‘1987’ 의 흥행으로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이 이슈로 떠올랐다. 경찰청은 2005년부터 이곳을 경찰청 인권센터로 전환하고 박종철 기념관을 설치·운영해 오고 있다.

영화 ‘1987’ 의 흥행으로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이 이슈로 떠올랐다. 경찰청은 2005년부터 이곳을 경찰청 인권센터로 전환하고 박종철 기념관을 설치·운영해 오고 있다.
박종철 열사 31주기를 이틀 앞둔 13일 오후 한 가족이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하고 있다.

검은 벽돌로 둘러싸여 있어서 무거운 인상을 주는 남영동 대공분실 그리고 509호 취조실. 박종철 열사는 약 10시간의 물고문을 받고 1987년 1월 14일 오전 11시 20분 숨을 거뒀다.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취조실. 박종철 열사는 약 10시간의 물고문을 받고 1987년 1월 14일 오전 11시 20분 이곳에서 숨을 거뒀다.

13살, 9살 두 아들과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은 김모씨가 박종철 열사가 숨진 509호 취조실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 취조실이 위치한 5층. 취조실 출입문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엇갈리게 배치돼 있어 어쩌다 문이 열려도 반대쪽 방을 들여다볼 수 없게 설계돼 있다.

취조실이 위치한 5층에서 바라본 남영역. 지하철역 뒤로는 박종철 열사의 고향인 부산으로 향하는 KTX열차가 달리고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은 한 가족이 한 줄기 빛을 따라 취조실로 들어가 당시 상황을 떠올리고 있다.

1987년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김모씨는 13살, 9살 두 아들과 이곳을 찾아 생생한 현장학습을 이어갔다. 김씨는 “올해 6학년이 되는 큰 아들은 ‘택시운전사’ 같은 시대반영 영화나 역사교과서를 통해서만 민주화운동을 배웠다. 책, 화면에 나오는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 고 말했다.
인권센터 4층 박종철 기념전시실에서는 박종철 열사의 유품 뿐 아니라 80년대의 신문자료와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인권센터 4층 박종철 기념전시실에서는 박종철 열사의 유품 뿐 아니라 80년대의 신문자료와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인권센터 4층은 박종철 열사 20주기인 2007년 박종철 기념전시실이 있다. 전시실에는 박종철 열사의 유품 뿐 아니라 80년대의 신문자료와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을 찾은 한 어린이가 5.18 당시 아버지의 영정을 끌어안고 있는 또래의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인권센터 4층은 박종철 열사 20주기인 2007년 박종철 기념전시실이 있다. 전시실에는 박종철 열사의 유품 뿐 아니라 80년대의 신문자료와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다.

대공분실 5층에는 다른 층에 비해 훨씬 좁은 창문이 있다. 이 창문들은 ‘고문실’이라는 용도를 은폐하고 투신자살을 방지하고 밖을 내다볼 수 없도록 해 공포감을 주도록 돼 있다. 철조망 안 건물 안에서는 민주화 인사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5층 취조실 출입문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엇갈리게 배치돼 있어 어쩌다 문이 열려도 반대쪽 방을 들여다볼 수 없게 설계돼 있다. 다른 층에 비해 훨씬 좁은 창문이 있다. 이 창문들은 ‘고문실’이라는 용도를 은폐하고 투신자살을 방지하고 밖을 내다볼 수 없도록 해 공포감을 주도록 돼 있다. 철조망 안 건물 안에서는 민주화 인사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지하철 1호선 남영역에서도 눈에 띄는 오른쪽 7층짜리 검은색 벽돌 건물이 남영동 대공분실이다.행정구역상 갈월동에 위치해 있지만 바로 옆에 남영역이 있어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리게 됐다.

박종철 열사 31번째 기일을 하루 앞둔 13일 이철성 경찰청장과 민갑룡 경찰청 차장 등 경찰 지휘부는 이곳 옛 남영동 대공분실 현장을 찾아 박종철 열사를 추모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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