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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왜 50대 가장은 가슴에 스스로 칼을 꽂았나 계속 |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이라는 거창한 표어가 조한정(59)씨에게는 '죽음'의 다른 말이다.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서 40년 넘게 살아온 조 씨는 지난 해 11월 재개발에 따른 퇴거 강제집행에 불응하는 과정에서 자기 가슴에 칼을 꽂았다. 그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끝내려고 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더라"고 했다. 칼은 심장을 4cm쯤 비껴갔지만 조씨는 4시간 넘는 수술을 받았고,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리게 됐다.
조 씨는 시세의 절반에 불과한 보상금을 받아들고 숨을 거둘 때까지 살 거라 기대했던 집에서 차마 나갈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나가면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아직 취업도 하지 못한 아들들에게 얹혀 짐이 될 바엔 그 자리에서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실제로 주택 대출금에 양도세, 밀린 공과금까지 처리하고 나면 조 씨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1억이 안된다. 대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근의 원룸도 구하기 힘든 돈이다.
◇ '전쟁 공포' 떠올리는 70대 "내 평생의 업적"
혹시나 들이닥칠 용역에 대비하느라 그의 아내는 폐쇄회로(CC)TV 화면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심 씨는 "수면제가 아니면 잠에 들지도 못한다"며 "베트남전에도 참전했지만 하루하루 이렇게 공포스러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 지금 삶은 '전쟁의 공포'인 셈이다.
지난 달 19일 동절기임에도 조합 측이 심 의 집을 부수려고 시도하자, 그는 신너를 들고 강하게 저항했다. 30년 넘게 수제노트를 만들어 판 돈을 쏟아부어 '평생의 업적'으로 세운 집이었다. 문 한짝, 타일 한 이 다 부부의 손을 거쳤다. 심 씨 스스로 "이 정도면 부러울 게 없다"고 느끼고 살았지만 쫓겨나면서 받게 될 돈은 살던 집의 절반 크기도 되지 않는다.
◇ "평범한 가정, 고 1 막내까지 투사가 됐다"
구현회(53)씨는 전형적인 주부의 모습이다. 정년을 몇 년 앞둔 남편과 고 1짜리 막내까지 세 자녀를 두다 보니, 하루 하루를 가족 뒤치다꺼리 하느라 바쁘게 지냈다고 한다. 22년 간 장위동에 거주한 그는 5년 전 대출을 끼고 허름한 주택을 구입했다. 마침 주택 구입 시기 재개발 계획이 철회되는 분위기라 수년을 지낸 지역에서 '평생 살 집'을 꿈꾸며 주택을 가꿨다. 강제 집행에 대비하느라 어수선해졌지만 인테리어 잡지에 나오는 집처럼 곳곳에 손이 간 흔적이 보였다.
구 씨 역시 지난 달 강제집행 당시 신너에 횃불까지 들고, 한 때는 예쁘게 가꿨던 정원 앞에 섰다. 평소엔 조용했던 그가 울분에 차 흥분한 걸 보고, 대학생 딸은 자기가 먼저 시선을 끌어야 겠다는 생각에 용역을 막아섰다. 자해를 한답시고 인근의 수퍼마켓으로 달려가 칼을 사겠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구 씨는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다"며 "오죽 억울하면 평범했던 우리가 이렇게까지 하겠냐"고 말했다.
한창 추운 요즘처럼 9년 전이었던 1월, 철거 과정에서 6명의 희생자가 나왔던 용산참사 이후 약탈적 사업 방식의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사업 등으로 재개발 방식이 전환됐다. 하지만 당장 한겨울에도 강제철거가 진행되는 게 현실이다. 성북구 장위동은 변한 게 없는 재개발 현장의 단면 중 하나, 일반적인 재개발 현장의 장면이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서울지역만 재건축·재개발·뉴타운 등의 이름을 달고 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 진행 중인 곳이 946곳이다. 대부분 지역에서 시공사와 조합이 한 팀이 돼 퇴거에 불응하는 원주민들을 내몰고 있다.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2016년 10월까지 약 4년간 강제퇴거 집행 건수는 7만8078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