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부산연탄은행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얼마 전 하늘로 떠난 아들을 대신해 기부를 하고 싶다"는 50대 남성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전화의 주인공은 대구에서 택시업을 하고 있는 정용욱(54)씨.
그는 지난해 12월 4일 평생 애지중지하며 키워 온 아들을 잃었다.
정씨의 아들 정성훈(23)씨는 숨지기 한달 전 해양 전문가를 꿈꾸며 한 대형 컨테이너선의 3등 항해사로 취업했다.
한국해양대를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아들은 늘 정씨의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취업 한달 만에 2번째로 승선한 배를 타고 중국으로 떠난 아들이 하역 작업 중 불의의 추락 사고를 당해 영영 볼 수 없게 됐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가슴에 묻은 정씨는 유품을 정리하던 중 아들의 통장에서 부산연탄은행으로 2만원이 빠져 나간 것을 확인했다.
아들이 숨지기 이틀 전 연탄은행에 매월 2만원의 기부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것.
정씨는 연탄은행에 전화를 걸어 "우리 성훈이가 매월 2만 원씩 연탄은행에 후원하기로 한 것을 알게 됐다"며 "매월 2만원이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성훈이 보상금에서 5백만원을 보낸다"고 말했다.
아들이 살아있다면 20년 넘게 후원할 수 있는 금액인 셈이다.
전화를 받은 부산연탄은행 강정칠 목사는 비슷한 연령대의 아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성훈이의 보상금을 차마 받을 수 없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강 목사는 정씨와 통화를 이어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그러자 정씨는 오히려 "목사님, 울지 마세요"라고 위로하며, "제발 우리 성훈이를 위해서 이 돈을 꼭 받아달라"고 간청했다.
정씨는 또 나머지 사망 보상금을 아들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대학 야구동호회를 비롯해 다른 단체에도 나눠 기부할 예정이다.
부산연탄은행은 정씨가 건넨 후원금을 저소득층 아이들의 교복 지원과 어르신들의 따듯한 밥상을 제공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강정칠 목사는 "그동안 부산연탄은행을 운영해오면서 이렇게 마음 아픈 후원금은 없었다"며 "아들을 천국에 보내며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전해온 이 후원금을 헛되지 않게 사용하는 동시에 앞으로 부산연탄은행을 어떻게 세워 갈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받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