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궁극적인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도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남북관계 개선과 모처럼 불어온 평창동계올림픽 데탕트에 힘을 실어주면서 2년1개월간 중단됐던 남북대화의 장(場)이 마련되고 있다.
남북간 '해빙무드'가 조성된 뒤 처음 가진 지난 4일 한미 정상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있어서 문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크게 넓혔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중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 제안을 전격 받아들이면서 "문 대통령의 남북대화 노력을 100%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남북 대화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알려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 조야와 국내 보수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된 김정은 위원장의 화전양면 전략(겉으로 화친하고 속으로 전쟁을 준비한다) 논란을 일정정도 잠재웠다.
적어도 한미 정상간에는 남북대화 과정에서 한미동맹 엇박자 우려는 없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확인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로 다음날인 5일 북한이 우리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오는 9일 판문점에서 2년 1개월만에 고위급 회담을 열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도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강조해온 '한반도 운전자론'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됐다.
백악관은 한미 정상통화 직후 "두 정상이 북한에 대한 강한 압박을 계속해 나가고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데 합의했다"(The two leaders agreed to continue the campaign of maximum pressure and not repeat mistakes of the past.)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며 대북 압박의 고삐를 여전히 손에서 놓지 않았지만, 한국 정부에 남북대화 주도권을 맡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 통화에 앞서 자신의 트위터에 "(남북)회담은 좋은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부터 본토를 위협받는 미국 입장에서도 궁극적인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간 대화 복원 흐름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이 정상간 통화에서 "남북대화 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의할 것이며 우리는 남북 대화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과 북한의 대화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양국 외교안보라인을 통해 충분한 의견 수렴이 이뤄졌다는 판단이 깔렸기 때문이다.
다만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을 1차 목표로 삼겠지만, 핵실험과 미사일발사로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에 대해 대화 속도 조절에도 신경을 쓸 것으로 보인다.
자칫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여와 인류 보편적 문제인 이산가족상봉 등의 의제를 넘어서 당장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 등으로 논의가 확산될 경우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주는 것은 물론 독자 제재를 가하고 있는 미국과 불협화음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 정상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데 합의했다"는 백악관 발표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그런 취지에 대해서도 우리가 다 동의한 내용"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남북관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언급한 데 이어, 5일 북한이 판문점을 통해 고위급 회담 수용의사를 밝히면서 회담 의제를 평창동계올림픽뿐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까지 확대한 것은 주목된다.
청와대는 북한의 적극적인 회담 수용 의지를 고려하면 이번 남북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산가족 상봉과 군사충돌 방지 논의 등 한반도 긴장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