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초란 나왔다고 기뻐했는데"…포천시 'AI 악몽' 재연되나

'고병원성 AI 확진' 산란계 농가로는 이번 겨울 들어 처음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의 산란계 농장. (사진=고태현 기자)
4일 오후 43번 국도를 달려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1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산란계 농가까지는 아직 1.6㎞를 더 들어가야 했다.

눈이 녹아 빙판이 된 굽은 산길을 3분 정도 달리자 방역초소가 눈에 들어왔다. 농장 방향에서 한 차량이 초소에 들어서자 방역원은 소독약을 뿌리기 바빴고, 다른 방역원은 차량의 목적지를 확인한 뒤 통과시켰다.

AI가 발생한 산란계 농가에 도착하자 안내문이 걸린 바리케이트가 출입구를 막고 있었고, 방역담당 공무원이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포천시 영북면 산란계 농장 내 공터에 살처분 된 닭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사진=고태현 기자)
출입구 넘어 축사에서는 집게차가 살처분 된 닭들을 트럭에 옮겨 싣고 있었고, 농가 한편 공터에는 닭 수만 마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 농장에서 살처분 닭은 20만 마리에 이른다.


해당 농가에서는 지난 3일 조류인플루엔자 의심 신고가 접수됐고, 정밀조사 결과 고병원성 H5N6형 AI로 확진됐다.

이번 겨울 전라도 지역에서 9건의 확진 사례 모두 오리 농가에서 발생했지만 양계농가에서 발생한 것은 경기도 포천시가 처음이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AI 발생 농장 반경 500m 이내 2개 농가 31만2,500마리를 이날 함께 살처분 했고, 3㎞ 이내 11개 농가 27만1,500마리는 내일까지 예방적 차원에서 살처분을 완료할 방침이다.

◇"어렵게 문 연지 얼마 됐다고"…또다시 찾아온 재앙에 '망연자실'

특히 해당 농장은 2016년 11월 포천에서 최초로 AI가 발생해 닭 23만1,500마리가 살처분 됐던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8월 어렵게 20만 마리의 산란계를 재입식한 농장에서는 12월 말 초란이 생산됐고, 농장주는 마을 주민들에게 직접 계란을 나누어 주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불과 5개월여 만에 다시 찾아온 재앙으로 농장주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까지 한 숨만 내쉬고 있다.

주민 A씨는 "초란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생겨 힘들어 하고 계신다"라며 "인근 농장들도 닭이 들어온 지 이틀밖에 안됐는데 다 묻어야 된다는 소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B씨는 "엊그제 초란이 나왔다고 가져와 이제 닭이 알을 낳기 시작 했구나 하고 기뻐했다"며 "그런데 얼마나 됐다고 이런 일이 또 닥쳐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AI 발생 농가 주변에 부착된 현수막. (사진=고태현 기자)
AI 발생 농가 주변으로는 강포저수지가 위치해 있다. 때문에 겨울만 되면 오리 등 철새들이 몰려든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장덕환 마을이장은 "비둘기, 까마귀, 오리 등 야생조류들이 많은 저수지와 농장과의 거리는 불과 400m 밖에 안된다"라며 "인근 강원도 철원까지 AI가 확산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한편, 방역 당국도 포천 발병 농가와 기존 호남지역 발병 농가와의 역학관계가 없어 철새에 의한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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