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나이 80세' 10대 소년들의 국경을 초월한 우정

소아조로증세 원기와 미구엘, 제주서 만나

4일 오전 제주한라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홍원기(12)군과 미구엘(12, 콜롬비아) (사진=문준영 기자)
시간을 달리는 소년들이 있다.

일반인들보다 8배 이상 빨리 늙어가는 조로증을 가진 홍원기(12)군.

국내에서 유일하게 프로게리아 신드롬(Progeria syndrome)을 보이고 있는 원기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콜롬비아 친구 미구엘 살라스(12)를 제주에서 만났다.

원기와 미구엘은 4일 오전 제주한라병원 진단검사학과 김우진 과장을 만나 진료를 받았다.


'장과 노쇠현상과의 관련성'을 연구하고 있는 김 과장은 지난 2014년 미국 연수에서 미국 프로게리아재단을 방문했던 원기와 미구엘을 검사했던 인연이 있다.

원기와 미구엘도 이때 서로 친구가 돼 4년 째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두 손을 맞잡은 원기와 미구엘 (사진=문준영 기자)
이번 제주 방문은 미구엘이 최근 급격한 통증과 질병 악화를 호소하며 원기의 아버지 홍성원 목사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임상실험 때 받은 약을 먹던 미구엘의 몸이 급격히 나빠졌고, 미구엘이 살고 있는 콜롬비아 시골에 전문 병원도 없어 어머니 마그다드씨가 홍 목사에게 급하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 사정을 안 하나금융그룹과 하나투어, 쉐어앤케어, 제주성안교회 등의 후원으로 둘의 만남이 성사됐고, 김 과장이 있는 제주한라병원을 방문하게 됐다.

김 과장은 "지난해 7월 원기와 미구엘의 제주 방문 당시 혈액검사를 했는데 미구엘에게 당뇨 소견이 있었다. 한 번 더 초청해서 원기도 소아과 진료를 받고, 미구엘도 소아과와 당뇨 소견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보기 위해 검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진료를 한 위호성 소아청소년과 과장은 "제일 걱정되는 게 혈관 문제다. 뇌혈관이나 심장질환이 걱정된다. 현재 혈압 등은 정상이지만, 추후 여러가지 경동맥 초음파나 심장초음파 검사 등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왼쪽부터 홍성원 목사, 원기, 미구엘, 미구엘 어머니 마그다드씨 (사진=문준영 기자)
프로게리아 신드롬은 어린아이에게서 나타나는 조로증으로, 전 세계적으로 300여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최대 수명은 20세, 평균 수명은 13~15세로 알려져 있다.

홍 목사는 "소아조로증 환자들의 보통 평균 수명이 15세 정도다. 아직 건강할 때 미구엘을 보자고 해서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미국 재단에서 받은 약이 굉장히 독하고 부작용이 심해 원기는 5일 정도 먹다 중단했고, 미구엘은 6년 동안 복용하며 몸 상태가 악화됐다"며 "현재 약을 중단한 상황이고,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꾸준히 공부하고 재단 측에 항의 서한 등을 보낼
예정"이라고 전했다.

홍 목사는 현재 소아조로증 아시아재단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홍 목사는 "미구엘이 콜롬비아에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고 그래서 자꾸 숨어지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환영해줘서 한국에 오고싶다고 말했다"며 미구엘의 한국 사랑을 전했다.

미구엘 어머니 마그다드씨는 "원기의 아버지가 재단을 만들어서 도움을 주려하는 데 너무 감사하고, 한라병원 측에도 굉장히 감사하다"고 답했다.

원기는 "미구엘과 같이 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좋다. 같이 게임을 하러 가고 싶다"고 제주에 온 소감을 밝혔다.

원기는 놀이공원에 가면 키 제한에 걸려 기구를 탈 수 없기 때문에 "새해에는 키가 120㎝까지 자라고 싶다”고 새해 소원을 말하기도 했다.

옆에 있던 미구엘은 "눈을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원기와 함께 제주에서 눈싸움을 하고 싶다"고 웃어보였다.

홍 목사는 원기와 미구엘을 데리고 제주도내 관광지를 돌아볼 예정이다.

마이크를 잡은 미구엘 (사진=문준영 기자)
이날 만난 원기와 미구엘은 육체적 고통도,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도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어 보였다.

세상 그 누구보다 빠른 시간을 달리는 소년들.

하지만 지금 원기와 미구엘이 보내는 제주에서의 시간은, 세상 그 어느 시간보다 값진 시간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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