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기를 다룬 작품들이 그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연극도 아니고, 영화나 뮤지컬과 같은 대중적 작품으로 몰아서 나오는 상황 자체는 묘하기 그지없고, 한편으로는 흥미롭다.
◇ 영화 '1987'(감독 장준환)
영화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시작으로 이한열 열사의 죽음까지, 그 몇 개월의 시간 동안 개개인이 각자의 위치에서 선택한 소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거대한 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파문을 그린다.
영화의 매력은 과장되지 않은 연출에 있다. 한 인물이나 특정 사건을 의도적으로 부각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린다.
이 과정을 통해 그 당시 살았던 개개인 모두가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일군 주인공이었음을 상기시킨다.
◇ 뮤지컬 '광화문 연가'(연출 이지나, 작 고선웅)
‘붉은 노을’ ‘가로수 그늘 아래’ 등 故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로 이루어진 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제목만 봤을 때 이 시기를 배경으로 했다는 게 선뜻 연상되지 않는다.
뮤지컬은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명우가 ‘월하’라는 신을 통해 과거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가 큰 뼈대이다. 그 여행에서 명우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첫사랑 ‘수아’를 만난다. ‘첫사랑’은 ‘미련’이라는 감정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공연에서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고선웅 작가가 쓴 대본을 보면 학생들이 시위하는 이 시기는 ‘박종철 군 치사사건 규명을 위한 87년 2월 데모’라고 적혀 있다.
또 이 작품에 ‘시위’가 나오는 이유는 공간적 배경인 ‘광화문’과도 관련이 있다. 광화문은 80년대에도, 그리고 최근 촛불까지 민중이 모여들었던 ‘광장’으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뮤지컬 '모래시계'(연출 조광화, 작 박해림·오세혁)
작품은 혼란과 격변의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서 안타깝게 얽혀버린 세 주인공 태수·우석·혜린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엇갈린 운명과 선택을 이야기한다.
대다수의 삶이 그러했지만, 민중은 돌풍처럼 격변하던 그 시대를 배경으로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휩쓸린다.
뮤지컬 ‘모래시계’는 위 두 작품보다 조금 더 앞선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가 배경이다. 이미 드라마를 통해 ‘모래시계’를 접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 광주항쟁, 삼청교육대 90년대 초반 슬롯머신 비리사건까지가 은연중에 그려진다.
24부작 드라마를 2시간 분량의 뮤지컬로 압축해야 하기에, 드라마만큼 시대상을 담지는 않았다. 광주항쟁이나 삼청교육대 장면은 짧은 영상이나 넘버 중에 살짝 스쳐지나간다.
극중에서 이 사건이 일어나는 구체적인 시기가 언급되지 않지만 대략 70년대 후반으로, 이는 1978년 2월 동일방직 사건이나 1979년 8월 YH무역 농성 사건을 자연스레 연상시킨다.
이때 나오는 넘버가 바로 ‘뜨거운 양철지붕’이다.
“우리는 양철지붕의 고양이 / 한낮에 달궈진 양철지붕 / 사느라 뜨거운 양철지붕 / 살자니 뜨거워 춤을 춘다 / 즐거워 춤추는 무도회가 아냐 / 사느라 죽어라 춤을 춘다 / 행복에 춤추는 무도회가 아냐 / 사느라 죽어라 춤추는 팔자 / 살자니 아 뜨거 춤추는 신세 / 사느라 죽어라 춤추는 내 팔자 / 살자니 아 뜨거 춤추는 내 신세”
수많은 배우들이 함께 노래 부르며 스크럼을 짜는 등의 군무를 추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꼽아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