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관두면 400만원 배상" 알바 울리는 남양유업 대리점

하루라도 쉬면 배달 가정만큼 배상하라는 '불공정계약'

남양유업의 한 대리점이 우유 배달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는 대학생에게 월급의 열배가 넘는 배상금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을' 입장으로 본사로부터 갑질을 당해왔던 대리점이 '병' 입장인 알바생을 상대로 소위 '을질'을 하는 상황이다.

◇ "후임없이 관두거나 하루라도 쉬면 배상금"

인천의 한 대학에 다니는 A(23) 씨는 지난해 10월 남양유업에서 우유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손을 빌리지 않고 자취방 월세를 내기 위해서였다.

추운 겨울 새벽, 자전거를 타고 빙판길로 오가며 A 씨가 손에 쥐게 된 월급은 32만원. 딱 월세 값이었다.

문제는 큰 기대없이 지원했던 기업에 인턴으로 덜컥 합격하면서 발생했다.

당장 다음달부터 출근이어서 수원으로 이사를 가야했던 것.

백방으로 후임자를 찾았지만 한겨울에 우유배달을 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이사해야하는 날이 다가오고 점주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대뜸 "계약서 내용대로 배상금을 물어내라"는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런 상황까지 예상하진 못하고 당시 사인했던 계약서를 다시 확인해보니 '후임자에게 인계하지 못하면 배달 가구당 5만원씩 배상한다'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80가구를 배달했던 A 씨는 당장 400만원을 물어내야 하는 상황.

인천의 한 남양유업 대리점이 배달원에게 사인하도록 한 계약서. '배달원이 하루 이상 배달을 못했을때', '(후임자에게) 인계를 하지 않았을때' 배달 가구x5만원의 배상금을 물도록 돼 있다.
◇ "본사 갑질로 고생한 대리점이 어떻게…"

불공정한 계약 내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배달을 하루라도 거르면 한 가구당 5만원씩 배상해야 한다는 독소조항도 있었다.

해당 문구 때문에 A 씨는 감기몸살을 심하게 앓은 날에도 배달을 나서야 했다고 전했다.


또 '어떠한 경우든 배달원이 대리점에게 손해를 끼쳤을 경우 배달원은 민·형사상 모든 책임을 진다'는 문구도 있어 사고 발생시 알바생이 뒤집어 쓸 위험이 상존하기도 했다.

A 씨는 "갑질로 한때 고생한 남양유업 대리점에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다 똑같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들었다"라며 "결국 어렵사리 구한 후임자에게 업무를 인계했지만 죄송한 마음뿐이다"라고 한숨쉬며 말했다.

이에대해 최한솔 노무사는 "계약서 자체가 불공정한 내용으로 돼 있다"라며 "이런 계약이면 힘 없는 알바생은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 대리점 관계자는 "알바생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해서 배상 조항을 넣은 것"이라며 "판촉이나 영업비용 등을 따지면 한 가구당 10만원 가까이 투입되는 상황이어서 우리 입장에선 일종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사진=자료사진)
하지만 남양유업 본사로부터 온갖 갑질을 당한 대리점이 한바탕 홍역을 앓았음에도 뒤에선 알바에게 갑질을 되물림 한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관계자는 "과거 본사 영업사원들이 이러한 계약방식을 대리점주에게 교육하곤 해 아직까지 일부 대리점에 갑질 계약서 관행이 남아있는 것 같다"라며 "이번 기회에 큰 반성과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우유배달원은 노동자 아냐" 보호받지 못하는 알바생

이러한 현실에도 A 씨를 비롯한 일부 우유 배달원들은 근로기준법에 보호받지 못한다.

근로계약이 아니라 위탁판매계약을 맺기 때문에 형식상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 것.

이에 따라 4대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산재처리도 안 된다.

손해배상 금지의 원칙 등을 규명하고 있는 노동법을 회피하기 위해 일종의 '꼼수'를 사용한 것.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형식적으로는 마치 대등한 사업자끼리 계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종속적인 관계다보니 불공정한 계약이 만들어지는 상황"이라며 "우유 배달원들에게도 노동법에 적용이 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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