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5억원에 한국토지주택공사로부터 개성공단 내 사업부지를 낙찰 받을 때만 하더라도, A씨는 10년에 걸친 고난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통일부 등으로부터 각종 승인과 허가를 받고, 설계비 용역부터 감정평가에 또 다시 1억원 넘는 돈을 들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5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법률도 아닌 장관 행정처분을 통해 북한에 대한 투자를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A씨는 하루 아침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땅을 소유한 처지가 됐다.
A씨는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을 침해 받았다며 정부를 상대로 손실보상 소송을 냈지만 2015년 최종심에서까지 보상 근거를 찾지 못했다. A씨의 손실이, 공공 필요에 의한 특별한 희생으로 보기 어렵고 또 관련 보상에 대한 근거 법률이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이후 삶이 고꾸라지듯 망가졌지만, A씨는 문재인 정부에 희망을 걸었다. 지난 해 말 개성공단 폐쇄를 비롯해 5.24 조치까지 정부의 결정이 '초법적'이었다는 통일부 혁신위원회 판단이 나왔을 때는 강한 희망에 몸이 떨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A씨는 "수 억을 빚지고 있는 상황인데, 천 만원 넘는 돈이 어디 있냐"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잘못했다고 얘기하면서, 그 때문에 소송을 한 국민에게 소송 비용까지 물으라는 것은 앞뒤가 너무 다르지 않냐"고 말했다. 기대이익이나 실제 손실분에 대한 보상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지만, 소송비용 청구는 지나치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 A씨에게 날라온 납입고지서는 지난 해 11월에 발송된 것으로, '5.24조치는 잘못됐다'고 인정한 통일부 혁신위가 활발히 활동하던 때다. 정부는 고지서 발송 바로 다음 달인 12월, A씨의 피해를 야기한 정부 조치가 '초법적'이라는 결론까지 냈다. A씨가 정부의 후속조치를 기대한 이유다.
그럼에도 통일부는 혁신위 의견이 5.24조치를 '위법'이 아닌 '초법'이라고 본다는 점, 앞선 대법원 판결에서 통일부의 보상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소송 비용을 계속 청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우리가 채권을 계속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야당 등에도 계속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절차대로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 비상대책위 신학용 회장은 "정부를 믿고 투자를 했던 기업들 입장에선 공단 폐쇄 등 기업활동을 못하게 막은 것만으로도 피해가 큰데, 거기에 소송에서 졌으니 소송비용까지 물어내라고 하는 상황은 정부가 후속조치에 아직 미흡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여러 사례 중 하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