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올림픽을 북핵문제의 돌파구로 삼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 데탕트' 구상에 일단 파란 불이 켜졌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통해 조성된 평화분위기를 남북관계 개선, 나아가 북핵문제 해법의 전기로 삼겠다는 구상을 여러 차례 밝혀왔지만, 북한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면서 현실성에 의문이 제기됐었다.
지난해 6월 24일 무주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평창올림픽에 북한선수단 참여를 촉구한 것을 비롯해 문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만 8차례에 걸쳐 대북제안을 이어왔지만 북한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왔다.
그런데 무술년(戊戌年) 첫날인 1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의 뜻을 밝히며 문 대통령의 이런 구상이 현실화될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평창올림픽에)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고,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긴장 완화가 필요하다"며 핵 전쟁 연습 중지와 미국의 핵 장비 도입 중지를 요구했다.
자신들이 그동안 요구해 온 한‧미 군사연합훈련의 중단과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중지를 사실상 전제조건으로 내건 것이다.
훈련 중단은 아니지만 문 대통령 역시 올림픽 기간 중 예정된 한‧미 군사훈련 연기를 미국 측에 제안한 바 있고, 문 대통령이 이를 공식적으로 밝힌 지 열흘 만에 북한이 대남 유화메시지로 화답한 만큼 결국 한‧미 훈련 연기를 위한 미국 설득이 평창 데탕트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을 감안한 듯 청와대는 북한의 태도 변화가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공조의 결과라고 강조하며 앞으로도 미국 등과 이런 협력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북한의 신년사 발표 직후 브리핑을 통해 북한의 올림픽 참여 시사에 대한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청와대는 남북이 함께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한편,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로서 남북이 책임 있게 마주앉아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의 해법을 찾아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북한의 의도에 대한 분석은 물론 남북 접촉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하겠다는 의지도 재차 강조했는데, 이는 한‧미 신뢰 관계를 강화하면서 한‧미 훈련 연기 가능성을 높이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입장변화가) 우리 대통령의 (한미훈련 연기) 제안에 대한 응답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다"며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공조 결과로 (북한의 입장변화가) 나왔다고 보는 것이 맞다"며 미국 등 국제사회로 공을 돌렸다.
이 관계자는 또 "'운전자론이 시작됐다'거나 '우리의 노력이 성과를 거뒀다'는 자화자찬식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며 "지금은 북한의 제안에 대해 신중한 환영입장을 표명하고 (북한 메시지의) 전체적인 흐름과 기조를 지금부터 더 신중하게 볼 때"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항상 이런 문제를 미국과 공유할 수밖에 없고 공유하고 있다"며 "통상적으로 이 정도 사안이면 당연히 (한‧미가) 접촉해 서로 공조하고 긴밀한 유대 속에서 입장을 낸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이런 반응은 사실상 평창 데탕트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에게 거듭 신뢰를 심어주고, 대남 유화메시지와 상반되게 미국에는 "본토 전역이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며 적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북한의 '한미 균열' 전략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부가 한‧미 훈련 연기를 이끌어 내고, 이를 지렛대로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면 평창 데탕트를 열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북한의 신년사는 한반도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시그널"이라며 "북한의 올림픽 참석을 계기로 남북대화가 이뤄지고, 이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이 이뤄진다면 결과적으로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