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에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 가운데 하나는 구세군의 빨강 자선냄비이다.
올해도 12월부터 전국 4백여 주요 길거리에 어김없이 등장했고 빨강 점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흔드는 종소리도 주위에 울려퍼지고 있다.
하지만 자선냄비를 찾는 손길은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
지난 25일 기준으로 길거리 모금액은 32억원으로 잠정집계됐다.
이는 지난해보다 10~15% 정도 준 것이라고 한다.
구세군 자선냄비만이 아니다.
이는 지난해 이맘 때보다 8도가 낮고, 2015년보다는 13도가 낮은 것이다.
지난해 이맘 때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촛불 광풍이 세게 휘몰아칠 때여서 모금 실적이 저조한 편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요인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양 기관 모두 지난해보다도 실적이 더 좋지 않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올해 모금 목표액을 채우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온정의 손길이 줄어든 데는 기부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 상당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기부포비아'(기부에 공포를 느끼는 현상)‘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다
여기에는 연이어 발생한 '새희망씨앗' 사건과 '어금니아빠 이영학' 사건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불우아동돕기 기부금 128억원을 유용하거나 딸의 희귀병 치료를 도와달라고 호소해 모은 후원금 13억원을 챙겨 엉뚱한 곳에 탕진한 사건들이다.
이들 사건을 접하면서 많은 사람이 어려운 이웃을 향한 마음의 문과 함께 지갑을 닫고 있다고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최근의 사회 분위기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구세군의 한 관계자는 "요즘 우리 사회는 정치권이나 사회, 심지어는 SNS(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도 이념적으로 첨예하게 맞서면서 적대적으로 편가르기를 하고 있고 많은 사람이 거기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며 "이런 풍토 속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향한 나눔 문화의 확산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어려운 이웃과 나누려면 그 이웃을 품을 수 있는 사랑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하는데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뉘어 서로 총질하는 가운데에서는 그런 사랑이 들어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도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얼굴없는 천사들'의 행진은 그래도 우리 사회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천사는 17년 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성탄절 전후로 이곳에 거액의 돈다발을 몰래 놓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이렇게 기부한 돈이 모두 5억 5천여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대구에서는 일명 '키다리 아저씨'가 올해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아가 거액 수표가 든 봉투를 건네고 사라졌다.
이 키다리 아저씨는 지난 6년 동안 7차례에 걸쳐 무려 8억 4천여만원을 기부했다.
이 외에도 전남 해남과 전북 완주, 정읍에서도 수년째 얼굴없는 천사들이 나타나 각각 라면 수백박스와 백미, 성금 등을 기탁했다.
성경에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 있지만 보통사람들이 지키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수년째 자신을 감추고 선행을 하고 있는 이들을 '얼굴없는 천사'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세밑을 훈훈하게 해주는 이들 천사의 행진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또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늘고 그래서 이 세상이 더 살만한 곳이라는 믿음을 갖게하는 온기로 충만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