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지원이 김치 등 일부 품목에만 쏠리다 보니 정작 그들이 필요한 욕구는 무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장김치 얼마나 담갔나 살펴보니…무려 530만kg
CBS노컷뉴스가 올해 9월부터 12월 25일까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김장김치 나눔 행사를 전수조사한 결과 모두 1539건의 행사가 열렸다.
이 중 구체적인 김치의 무게를 확인할 수 없는 사례를 제외한 1084건의 행사를 종합해보니 약 530만kg이라는 김치가 만들어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한 1회 권장 제공량 50g을 기준으로 하루 세 끼를 먹는다고 계산하면, 약 40만 명의 사람이 3개월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여기다 무게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경우나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김장김치 나눔 행사를 포함한다면, 이 수치는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회복지현장은 김치를 배분하느라 진땀을 뺀다. 나름대로 지역사회와 연계해 과잉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김치를 받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서울 소재 한 복지관의 A 관장은 "복지관에서 1명당 20kg을 나눠드렸는데, 주민센터에서도 받으셨다 그러고, 구호단체에서도 어려운 분이니까 또 드렸다고 한다"며 "혼자 다 못드시니 결국엔 김치를 버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 장애인복지관의 B 관장은 "김치, 쌀, 연탄 이 세가지가 물론 겨울나기에 필수품이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옷이나 약 같이 다른 것도 고르게 필요한데, 이런 세밀한 지원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심지어 복지관에서 김치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요청해도, 외부 후원기관이 강력하게 김장 나눔 행사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경북의 한 복지관 소속 C 사회복지사는 "외부 기관이 강력하게 김치 행사를 원할 때, 복지관 입장에서도 후원금이 걸려있는 상황이기에 실질적으로 거절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김장김치 행사를 겸해 모금활동을 할 때, 기관에 후원금이 모이기 때문에 이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구조적인 문제가 얽혀있다고 지적했다.
◇김장김치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림' 잘나오니까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최재성 교수는 "김장 담그기가 갖는 문화적 특성과 활동성이 결부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김장 나누기 행사는 추운 겨울을 준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홍보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오기 때문에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민간과 공적 영역이 선호하는 것"이라 분석했다.
현장의 목소리도 비슷하다. B 관장은 "김장, 연탄과 같은 현물로 주면 그림이 되지만, 현금으로 주면 사진도 엉성하고, 제대로 쓰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김장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C 사회복지사도 "진정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겨울철 김치가 주는 고정관념 속에서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장 나눔 행사를 마케팅이나 자신의 이름 알리기에 적극 이용하는 모습도 자주 포착됐다.
한 전자제품 제조업체는 신제품을 출시하고 모델명인 '9500'만큼의 김치 포기를 마련하는 행사를 진행해 홍보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서울의 한 구의원은 김치 담그기 행사장에 와 5분여 동안 기념촬영과 간단한 인사말만 하고 돌아가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결국 지역사회 어려운 이웃들의 욕구에 대한 고민은 배제된 채, 자신들의 이름 알리기에 급급하다보니 자원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이다.
최 교수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른 복지기관과 적극적으로 연계해 이용자들의 정확한 수요를 파악하고, 복지기관들이 외부 후원자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지역사회 만의 독특성을 살리는 동시에 욕구를 고려한 나눔을 유도할 수 있도록 기획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