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정우는 올 겨울 극장가에서 가장 핵심적인 배우다. 흥행을 겨루는 판타지 블록버스터 '신과함께-죄와 벌'과 아픈 현대사를 그린 '1987'에서 주연으로 활약한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대작 두 편을 선보여야 하는 속마음은 떨리면서도 밝은 기대로 가득차 있었다.
하정우와의 인터뷰는 언제나 그렇듯이 자유로웠다. 직관적이고, 어쩌면 본능에 가까운 연기처럼 하정우는 당시 자신의 감정에 가장 가까운 언어로 이야기를 전한다. 아쉬운 점은 아쉬운 점대로, 충돌했던 기억은 그 기억대로. 같은 말을 해도 재치있고, 유쾌하지만 왜곡이 없다.
'1987'의 최환 검사와 '신과함께'의 강림 차사처럼 그에게도 명확한 '원칙'이 있었다. 거짓으로는 어떤 이득도 취하지 않아야 한다는, 진실성을 토대로 한 원칙이었다. 한없이 가벼운 듯한 그의 말에 곧은 힘이 있는 건 이런 태도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음은 타고난 말재간꾼인 하정우와의 일문일답.
▶ 영화 '신과함께'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
- 1부만 봐서는 저승삼차사의 리더 강림이라는 캐릭터를 잘 알기 어려운 것 같다. 좀 더 떡밥이 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1부는 자홍과 수홍의 드라마를 강하게 만들고
그걸 발판 삼아 2부가 흘러가는 거다. 그래서 아마 2부를 보면 '아, 그런 것이었구나' 할거다.
▶ '1987'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안 부장 검사인 최환 역을 맡았는데 굉장히 유머러스하면서도 편한 모습이 돋보이더라.
- 실존 인물과 성격은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관객들을 편하게 영화 속으로 유도하고 재미를 주기 위해서 관점을 재구성했다고 한다. 박처장과 통화하면서 그의 평안도 사투리를 듣고 '김일성이네' 하는 대사들은 내가 애드리브로 제안을 했던 것이다. 내 캐릭터의 퇴장과 동시에 영화의 밀도가 높아지더라. 실제 최환 검사님이 시사회에 오셔서 좋아하셨다. 날 귀여워해주셨다.
최 검사는 소신이 있는 사람이다. 그 소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무고와 타협하지 않고, 원칙대로 사는 사람이다. 어쩌면 저승삼차사의 리더인 강림도 그렇다. 엄청나게 상처가 많은 인물이지만 강하게 나를 믿고 따라오면 된다고 말할 정도로 원칙을 밀어 붙일 수 있는 사람이다.
▶ 실제로 하정우 본인도 원칙적인 사람인지 궁금하다. 삶에 가진 원칙이 있다면 무엇일까.
- 점점 그러기 위해 노력한다. 내 자신한테는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허물어지는 것 같다. 원칙? 내가 거짓말을 해서 이익을 취하는 그 모든 것이 정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법망은 피할 수 있지만 하늘의 법망은 피할 수 없다고 믿는다. 어떤 식으로든 심판받게 되어 있다. 그런 죄를 짓고 1년은 버틸 수 있겠지만 그 이후의 시간은 버틸 수 없다.
▶ 제작 과정에서 둘 중 어느 영화의 결과물을 더 걱정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 나는 '신과함께'보다 '1987'을 더 걱정했었다. 인물들이 순차적으로 등퇴장이 이뤄져서 정신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힘이 있어서 그런지 인물들이 밖으로 튀어 나오지 않더라. 그래서 굉장히 만족했다. '신과함께'는 VFX(시각적인 특수효과)의 향연이었다. 눈 앞에서 최첨단 장비들을 경험했다. 보니까 전 세계 CG 회사가 정말 많더라. 물결만 담당하는 회사가 있고, 모래 날리는 것만 하는 회사가 있다.
- 물론 '신과함께'의 걱정을 하루 이틀 한 건 아니다. 어떤 영화나 매번 작품을 개봉할 때 드는 부담감, 괜한 걱정이 있다. 나는 '신과함께'가 누군가에게는 과잉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감정적으로 배고픈 사람에게는 통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CG로 보여지는 것들은 확실히 채워지리라는 확신이 있었고. 중간 공정을 보면서 놀랍게 지켜보고 있었다.
▶ 배우라는 꿈을 언제부터 꾸기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배우이기 때문에 꿈을 구체화할 기회가 더 많았을 것 같은데.
- 일단은 이렇게 배우로서 활동을 많이 할 줄은 몰랐다. 배우가 될 줄은 알았다. 유치원 때부터 막연하게 세계 최고의 배우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집에 놀러오는 사람들이 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이었거든. 나도 아버지처럼 유명해지겠구나 싶었는데 나이를 먹고 대학에 들어가니 그런 사람이 될 것 같은 느낌이 점점 없어졌다. 진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 연기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됐던 사건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
- 날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면 투자가 안되니까 영화가 계속 엎어졌다. 영화계 사람들이나 나한테 '라이징 스타가 될 것 같다'고 하지 업계에서는 '쟤는 뭔가' 싶었던 거다. 그렇게 연속 두 작품이 엎어지면서 드라마를 찍어야 되는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히트' 오디션을 보러 가서 합격을 했다. '히트'가 잘 되고 나니 드라마 대본들이 엄청나게 들어왔다. 내 성정상 민망해서 죽을 것 같은 대본들이 많았다. 그 때 '밤의 열기 속으로' 시나리오가 나한테까지 왔다. '추격자' 원래 이름이 이거였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없는 거다. 거기에다가 김윤석 형이 한다고 하더라. 주변에서는 다 말렸다. 이제야 말랑 말랑하게 광고 좀 하고 그러는데 살인마를 한다고 하니까. 그래도 나는 이걸 해야 된다고 밀고 나갔다. 결국 회사에서도 그냥 네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뒀다. 그렇게 해서 찍었던 게 '추격자'다. 그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고, 패기만 있었다.
▶ 시사회에서 다시 태어나도 '하정우'인 본인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이전과는 어떻게 다른 삶을 살고 싶은가.
- 다시 하정우로 태어난다면 쓸데없는 교육들에 저항하면서 살았을 것 같다. 학교도 천천히 나가고, 괜히 선생님한테 겁먹지 않을 것 같다.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낼 것 같고, 아마 더 놀았을 거다. 장난감을 덜 사고 용돈으로 주식을 투자하지 않았을까. 밖에서 더 많이 뛰어놀고 방학숙제를 더 안할 것이다. 승부욕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은데 그런 자존심은 필요 없다. 필요 없는 공부는 과감히 접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