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이고, 범죄이고, 폭력이다”
- 페미니즘, 여성 인권의 특정 분야에서 세계관으로 확대되는 중
- 젠더 폭력 방지기본법 제정되어야
- 여권 신장의 해? 진행되고 있을 뿐..
■ 방 송 : FM 98.1 (18:30~19:55)
■ 방송일 : 2017년 12월 26일 (화) 오후
■ 진 행 : 정관용(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혜정 부소장(한국성폭력상담소)
단단(닉네임, 성폭력피해생존자 말하기대회 참가자)
◇ 정관용> 시사자키 연말특집 2017년의 사람들. 오늘 그 다섯 번째 순서인데요. 올 한 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강타한 단어가 바로 페미니즘이라고 합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나도 당했다’, ‘미투 캠페인’이 들풀처럼 번졌죠. 우리나라에서도 직장 내 성폭력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이슈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요.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말하기대회가 벌써 10여 년째 이어져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2017년의 사람들. 두 분을 초대했는데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김혜정 부소장 어서 오십시오.
◆ 김혜정> 안녕하세요.
◇ 정관용> 또 이번 성폭력피해생존자 말하기대회에 참가하신 단단 씨, 어서 오세요.
◆ 단단> 안녕하세요.
◇ 정관용> 단단 씨는 가명이죠?
◆ 단단> 네.
◇ 정관용> 단단하게 살자, 이거죠?
◆ 단단> 네.
◇ 정관용> 전 세계적으로 올해의 단어로 ‘페미니즘’. 동의하세요? 두 분?
◆ 김혜정> 올해 정말 강타한 단어인 것 같고요. 굉장히 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의 연설 영상이라든지 UN에서 캠페인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난 것 같은데요.
이제까지와 좀 다른 점은 이제까지는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같은 여성인권에서의 특정 분야들에 대한 정책이라든지 제도 그리고 거기에 대한 피해자들의 고발 이런 것 위주였다면 페미니즘은 어떻게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 자체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좀 통합적으로 이 사회가 왜 이렇게 차별과 혐오라든지 이런 위계를 계속 재생산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시각, 그다음에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이런 철학이 필요하다라고 하는 것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모인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고발을 넘어서 이제 대안 모색에까지.
◆ 김혜정> 세계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고 느끼세요?
◆ 김혜정> 그런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필요해진 것 같아요.
◇ 정관용> 두 분한테 올 한 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좀 강렬했던, 유의미했던 여성 관련 이슈는 뭐가 기억나시는지?
◆ 단단> 저는 낙태죄 폐지 청원운동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게 23만 명이 넘어섰다는 걸 보면서 사실 여성 스스로가 낙태가 죄가 아니라고 스스로 인식을 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별적인 여성들이 동참했다라는 것이 좀 의미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김혜정 부소장은?
◆ 김혜정> 저는 이번에 한샘사건에서 직장 내의 성희롱, 성폭력이라고 하는 건 굉장히 많이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발생부터 연속적으로 어떤 2차적인, 3차적인 또 다른 사건들로 이어지는 민낯을 좀 보여준 것 같은데요.
또 의미 있게도 며칠 전에 12월 22일에는 대법원에서 4년 6개월 동안 끌어왔던 소송이 있거든요. 어떤 피해자가 대기업에서 르노삼성자동차였는데요, 거기에서 이제 조력인이 어떤 피해자를 위해서 진술해 준 것, 이런 걸 가지고 회사가 징계를 했는데 이것이 사실상 피해자에 대한 압력으로 행사될 수 있다, 그래서 불이익 조치 위반이다라고 하는 민사소송 최종 판결이 대법원에서 있었어요.
그래서 피해자를 고발한 사건도 있었고 올해 그다음에 대법원에서 회사의 사용자의 책임을 물은 판결도 있어서 의미 있는 그런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직장에서 고발도 과거보다는 훨씬 더 많이 터져 나오고.
◆ 김혜정> 그렇죠.
◇ 정관용> 법원에서도 그걸 인정해 주고.
◆ 김혜정> 네, 그렇습니다. 터져 나온 것만 하면 안 되고요. 터져 나왔을 때 회사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가 있어야 그 이후의 안전성이 보장되는 것인데 그것에 대해서 법원에서도 이제 그 세부적인 문제를 지적을 했다는 것이 큰 의미인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오늘 제가 시작하면서 미국이나 유럽의 ‘미투 캠페인’을 소개했는데 우리나라는 그것과는 조금 양상이 다르죠? 어떻게 보세요?
◆ 김혜정> 네, 우리나라에서는 해시태그 운동으로 트위터에서 주로 자기가 소속돼 있는 공간, 예를 들면 인디 음악이라든지 오타쿠 계 그다음에 문단 내 성폭력, 직장 내 성폭력, 스포츠계 그다음에 종교계, 교회 내 이런 식으로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났는데요.
이것은 미투 캠페인이랑 좀 다른 점은 유명 연예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정말 내가 어떤 성폭력을 무슨 감독에게 어떤 제작자에게 당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 것들이 연예계의 기사에 지금 당장 나와도 좋은 환경인가라고 했을 때.
◇ 정관용> 올해 한 2건 정도는 불거졌죠, 그래도.
◆ 김혜정> 그랬지만 유명 배우는 또 아니었거든요.
◇ 정관용> 어쨌든.
◆ 김혜정> 나오기는 나왔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한국의 제작 현실에 비해서는 굉장히 오래간만에 나온 건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런데 그마저도 피해자에 대한 공격들이 계속 있는 환경이에요.
그래서 미국이랑은 조금 다른 양상으로, 우리는 좀 작지만 자기 공간 안에서 많이 일어났고요. 그리고 그것이 소송이라든지 책 출판이라든지 이렇게 현실화되는 흐름도 확실히 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미투캠페인 같은 규모는 아니라고 느껴지지만 꾸준히 피해자들의 말하기는 있어 왔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미국과 유럽은 유명 연예인들 또 정치인들마저 동참해서 사회적 파장이 컸다면 우리는 저변에서 그런 운동들이 지금 확산되고 있다. 그런 얘기를 했군요.
◆ 김혜정> 네, 맞습니다.
◇ 정관용> 유명인들은 아직은 좀 나서기는 뭐한 사회적 분위기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은데. 방금 표현하신 것처럼 말하기, 피해당한 사람들의 말하기라고 하는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고 하는데 성폭력 피해 생존자 말하기대회, 이게 지금 올해 몇 회째입니까?
◆ 김혜정> 올해 2003년부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올해로 13회째를 맞았습니다.
◇ 정관용> 벌써 그렇게 됐어요?
◆ 김혜정> 네. 지금까지 60여 분 정도의 피해 생존자가 내가 어떤 피해를 당했고 또 그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런 사람들에게 세상에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때로는 음악으로 만들었을 때도 있고요. 때로는 영상이나 미술작품으로 만들었을 때도 있었어요.
올해는 한 15분 정도 동안 PPT로 ‘세바시’ 같은 형식으로 메시지를 좀 썼고 15분 동안 사람들에게 100여 명이 모인 공간에서 자기 얼굴을 드러내고 그 무대에서 다섯 분이 말했습니다.
◇ 정관용> 이런 대회가 13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걸 오늘 처음 듣는 분들도 굉장히 많을 것 같은데. 그렇죠? 단단 님께서 그러니까 올해 거기 말하기대회에 가서 프리젠테이션을 하신 거죠?
◆ 단단> 그렇죠.
◇ 정관용> 어떤 얘기를 하셨어요?
◆ 단단> 저는 일단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 말하기대회가 좀 공개된 장소였기 때문에 사실 좀 두려운 부분이 없지 않았었지만 그 상담소에서 진행하는 소규모의 성폭력 피해자 상담, 그러니까 작은 말하기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매달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자리에서 참가를 하면서 사실은 같은 피해를 경험했었던 사람들을 통해서 제가 좀 많이 위안을 받고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여기서 좀 더 한 발짝 나아가야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해서 말하기대회에 참가하게 됐던 거죠.
그리고 말하기대회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저 같은 경우도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끙끙 앓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그런데 그 도움 받는 것조차도 너무 쉽지 않아서 사실은 모든 사람이 피해를 당했을 때 상담소를 찾아올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여건이 안 될 경우를 대비해서 좀 발언을 해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커밍아웃하는 저의 경험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서 좀 더 커밍아웃이라는 문장이 사실은 ‘커밍아웃 오브 더 클로짓’ 그러니까 벽장에서 나오라는 뜻의 줄임말이거든요.
◇ 정관용> 벽장에서 나오다?
◆ 단단> 네, 그래서 많은 사람들한테 좀 용기를 줄 수 있는 발언을 할 수 있기를 바라서 나와서 발언을 하게 된 겁니다.
◇ 정관용> 벽장 속에 혼자만 갇혀서 끙끙 대지 말고 나와라, 세상 속에 나와라. 그렇죠.
◆ 단단> 그리고 좀 그걸 정복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어요. 사실 저희가 벽장 안에서 나오는 것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런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문제가 되게 많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 정관용> 어떤 문제요?
◇ 정관용> 그럼요.
◆ 단단>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폭력이라고 말을 하는 순간 오히려 피해자한테 비난이 가거나 그런 것 말하지 말고 살아야 된다라는 압력을 굉장히 많이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커밍아웃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저는 좀 이 사람들한테 힘을 주는 발언으로 ‘커밍아웃 오브 클로짓’이라는 단어에서 저희는 오히려, 그러니까 피해자들이 오히려 벽장에서 내던져진 거라는 규정을 하고 오히려 가해자나 또는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벽장 안에서 우리를 비난하는 행위를 멈춰야 된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비겁한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용기를 내서 우리가 비겁했다라고 인정하고 나와야 된다, 라는 식으로 오히려 그 말을 좀 역전시켜서 차용을 해서 발언을 했었습니다.
◇ 정관용> 김혜정 부소장이 조금 정리해서 소개해 주세요. 이 말하기라는 게 왜 중요한지.
◆ 김혜정> 그동안 사실 많은 피해자들은 말하고 싶어하세요. 내가 겪은 일을 말하고 싶고 그래서 세상이 알아듣고 아, 그런 일이 있었냐라고 바뀌고 바뀌는 걸 보고 싶어하고 또 다른 피해자가 이 내 말을 통해서 그걸 알아채고 또 또 다른 일을 겪지 않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부끄러워하면서 반성하길 바라는 것.
◇ 정관용> 처벌도 받고.
◆ 김혜정> 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뉴스를 보더라도 성폭력 사건이 있다, 특히 내 주변에서 우리 직장에서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피해자를 감싸거나 피해자를 지지하는 말을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거든요.
오히려 저 사람도 좋아서 한 것 같은데라든지 너무 문제제기 심하게 하는 거 아니야라고 가해자 위주의 그런 말하기에 우리는 좀 듣기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요.
◇ 정관용> 여전히 그런가요?
◆ 김혜정> 네, 여전히 그렇죠. 그래서 주변에서 그런 일이 있을 때 피해자를 응원하는 말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고요.
그래서 무엇보다 13년 전부터 안전한 환경을 만들자, 지지하는 사람들이 지지를 표현하자. 그래서 말하는 당사자들이 말할 때 끝까지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습니다.
안전한 환경이 더 많이 생기면 분명히 말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말하지 않겠다를 이길 거다라고 해서 지금 13년 동안에 또 이런 결과들을 이렇게 온라인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한 걸 보니까 말하고 싶다, 그 마음이 이기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정관용> 단단 님께서 성폭력상담소에서 소규모로 시작된 그런 말하기, 이제는 급기야 대중 앞에서까지 말하기. 그런 과정을 통해 본인에 변화가 있다고 느껴지세요?
◆ 단단> 네.
◇ 정관용> 어떤 변화가 느껴지십니까?
◆ 단단> 사실 피해자이기 때문에 사실 제가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없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당연하죠. 가해자가 당당하지 못해야죠.
◆ 단단> 그런데 오히려 그렇지 못한 상황이 대개 펼쳐졌을 때 스스로를 내적으로 다지기 위해서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니까 내가 당당하게 살아야지’라고 다질 수는 있었지만 그게 외적으로도 가능하냐라면 되게 쉽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공개된 장소에서 그러니까 누군가한테는 100명이라는 인원이 많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저한테는 그 사람들한테 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피해를 겪었고 그로 인해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말한다라는 것. 그건 그 사람들이 저는 그 사람들을 다 알아볼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분들은 이제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겠죠. 길에서라도 마주치면.
그러니까 저는 내적으로 저를 다독이려고 당당하게 살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제 외적으로도 그 사람들이 저를 봤기 때문에 더욱더 당당하게 살아야 된다는 어떤 외적인 조건까지 갖추게 된 계기가 된 거죠.
◇ 정관용> 네, 네. 나를 누가 어디서 알아볼지 모르는데 내가 주눅들어 살면 안 돼. 이런 의지가 더 강해지셨다?
◆ 단단> 네.
◇ 정관용> 이름 그대로 더 단단해지신 것 같아요.
◆ 단단> 감사합니다.
◇ 정관용> 뭐랄까요. 길 가다가 강도한테 몽둥이로 맞았다. 그거랑 성폭력을 당했다, 뭐가 다릅니까? 같은 폭력 아닌가요?
◆ 김혜정> 이게 참 신기한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말하기 하신 분도 심리상담 받으시면서 성자가 붙으면 피해자에게 비난이 간다, 그것이 사회적인 현상이다라고 하는 것을 현실을 그냥 인정하고 포기하자는 건 아닌데요.
그 이상한, 비틀린 거기서부터 많은 피해자나 가해자들이 그 골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것이 바뀌는 게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왜 피해자, 지금도 성폭력은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껴야지 성폭력으로 인정되는 그런 문구들이 여전히 존재하거든요. 그래서 왜 피해자에게 수치심이라는 몫이 다가와야 될까라고 하는 것은 바뀌어야 될 문제인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 말하기대회가 아니라 성폭력 피해 생존자 말하기대회라고 이름을 붙였잖아요. 이렇게 붙인 이유는 뭡니까?
◆ 단단> 성폭력 피해 같은 경우는 사실 보통 피해라고 얘기를 하면 1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성폭력은 보통 권력 관계에 의해서 생기기 때문에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상습적이 되는 거죠.
◇ 정관용> 맞아요, 맞아요.
◆ 단단> 그러니까 피해자 입장에서는 사실 일상을 제대로 이렇게 유지해 나가기가 되게 힘든 그러니까 정말 생존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는 경험이기 때문에 생존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정관용> 단순한 ‘피해자’라고 하면 오해될 소지가 있다, 오히려. 그래서 피해 생존자. 그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런 말씀이시군요.
◆ 김혜정> 그런데 용어는 다양하게 쓰이는 것 같은데요. 피해자로 쓰일 경우도 있고 법정에 가면 신고를 하면 다른 이름이 부여되잖아요. 생존이라는 것은 앞으로 또 살아간다. 어떤 의지를 가지고.
◇ 정관용> 살아가야 할 사람.
◆ 김혜정> 살아가야 하고 살아갈 권리가 있고 이런 피해자의 이후의 삶에 초점을 맞춘 용어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 정관용> 올 한 해가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우리나라도 이 성폭력 문제를 사회적 이슈화하고 또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하고 뭐 그런 의미에서의 출발점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동시에 지금 성폭력의 가해 양상은 정말 더 복잡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몰카, 디지털 성범죄, 데이트 폭력, 보복성 성폭력 이런 등등이 자꾸 또 확산되고 복합화되고 있단 말이죠. 이거 내년부터 어떻게 우리가 대처해야 좋다고 보십니까?
◆ 김혜정> 저는 크게는 두 가지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하나는 문재인 정부 공약사항처럼 젠더 폭력 방지기본법이라든지 이렇게 해서 새로 생겨나는 기존의 여성폭력과는 좀 다른 유형의 것에 대해서 피해자를 지원한다든지 구제한다든지 또 처벌할 수 있는 어떤 근거들을 마련하는 것이 실제로 필요하고요.
그리고 사이버성폭력이라든지 아니면 데이트폭력 같은 이런 유형의 여성폭력에 대한 제도, 지금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거든요. 이런 것들을 하는 노력이 하나가 필요하고요. 또 하나는.
◇ 정관용> 법제도적인 노력.
◆ 김혜정> 이렇게 수많은 피해자들이 내 주변에서 말하기 시작한 거예요. 내 주변에 둘러보시면 분명히 있을 거예요. 어디선가 말을 하고 있거나 또 온라인에서 쓰고 있거나 이런 피해자들도 있을 텐데 마찬가지로 새로 생겨난 그런 여성폭력을 해 보고 “어, 이거 재미있는데”라든지 “친구가 했는데 나도 해 볼까” 이러는 가해자들도 내 주변에 분명히 있다는 거거든요.
어디선가 몰카를 사보고 한번 설치해 보고 누군가를 찍어보고.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직장 안에서 스토킹도 해 보고. 또 취해 있는 사람한테 몰래 추행을 한다든가 또 국산 야동이라는 이름으로 검색해서 사실상 불법 유출된 누군가의 성행위 영상인 그런 폭력영상을 국산 야동이라고 본다든지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것에 대해서 그거 불법이다. 이거는 범죄다, 이건 누군가에 대한 폭력이다라고 분명히 말하는, 주변인으로서 말하기도 되게 많아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주변인으로서 자기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고 있는 사람들한테 “하지 마”, 경고하고?
◆ 김혜정> 그게 그 다음 단계에서의 말하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정관용> 그건 특히 뭐 주로 남성들 사이에서 그런 운동이 좀 벌어져야 될 것 같은데요.
◆ 김혜정> 맞아요, 그래서 외국에서는 이미 시작이 됐다고도 하는 소식이 들리네요.
◇ 정관용> 그래요? 앞에 말한 젠더 폭력 방지기본법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있었던 법과는 제일 큰 차이가 어떤 겁니까?
◆ 김혜정> 지금까지는 영역별로 성폭력, 성매매, 가정폭력 이런 법들이 다 따로따로 있었는데요. 여기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이것은 젠더에 기반한, 젠더라는 성 역할, 차이 이런 것이 차별을 만들어내는 그게 폭력이 되는 구조다라는 걸 인정하는 게 용어에 담겨 있는 것이 큰 차이고요.
그리고 국가의 예방 책임, 교육, 홍보의 책임. 그리고 이것에 대한 통계를 좀 내는 것. 지금은 통계가 좀 부실한 통계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것에 대한 통계를 내서 정책의 어떤 나침반이 되게 하는 것.
그다음에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예산도 따로 별도의 어떤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 이런 것들이 하나의 우산이 되어줄 수 있는 이런 것이 기본법의 역할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올 한 해의 단어로 페미니즘 그리고 말하기운동의 확산. 그런데 일각에서 올해를 여권신장의 해라고 부르는데 거기에는 동의할 수 있습니까? 저는 이건 아닌 것 같은데요.
◆ 단단> 저는 그게 완결형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동의할 수 없지만 진행형으로 본다라고 하면 일정 정도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시작은 했나요? 여권신장 쪽으로?
◆ 단단> 이미 말하고 있다라는 것 자체가. 그러니까 사실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저 같은 경우도 말하는 데 되게 오랜 시간이 걸렸었던 건 단순히 성폭력상담소가 안전한 장소를 마련해 주기 때문에만 가능한 게 아니라 사회에서 조금 더 이 문제에 대해서 바라보는 어떤 시선들이 좀 더 저에게 호의적인 시선들이 생겨났다라는 걸 제가 체감하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거든요.
◇ 정관용>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 단단> 네. 완벽하지는 않지만.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렇죠. 여기저기서 말하고 있다. 말한다는 것 자체가 잠재적 가해자들을 더 조심하게 만드는 그런 효과도 분명히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조심하게 만드는이라는 단어 자체가 조금 좀 이상하기는 하네요. 잠재적 가해자들이 가해행위를 못하도록 강요하는, 강제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그런 걸 만들어내는 거니까 그 자체로서도 여권신장의 출발이다 이 말씀이시군요.
◆ 단단> 사실 저도 말하기대회에서 궁극적으로 원했던 건 사실 이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점들이 상당히 많이 있거든요. 실효기간이 지난 것들도.
◇ 정관용> 공소시효가 지난 것.
◆ 단단> 이런 경우를 생각해 봤을 때 궁극에는 사람들이 변해야 되는 거거든요.
◇ 정관용> 맞아요.
◆ 단단>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바라볼 때 가해자의 말을 더 믿기보다 피해자가 뭘 느끼고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고 그 피해 때문에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야 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정말 가해자들이 스스로 자기의 행동에 대한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일들을 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정관용> 그렇죠. 내년부터는 진짜 많은 분들이 동의할 수 있는,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여권신장의 해가 펼쳐지기 바라면서 오늘 두 분 함께 말씀을 나눴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김혜정 부소장 또 성폭력피해자생존자 말하기대회에 참가하신 단단 님, 오늘 고맙습니다.
◆ 김혜정> 고맙습니다.
◆ 단단> 감사합니다.
[CBS 시사자키 홈페이지 바로 가기]
[CBS 시사자키 페이스북 페이지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