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희 양 실종' 경찰은 왜 부모를 의심하나

'생판 남' 손에 맡겨놓고 3주간 모르쇠·최면 수사도 거부…"어디서부터 믿어야하나"

전주시 한 빌라 입구에 실종 전단이 붙어있는 모습. (사진=김민성 기자)
"그동안은 고준희(5) 양이 스스로 집을 나와 실종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지만, 지금은 강력범죄에 의해 실종됐을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전북 전주에서 사라진 준희 양 실종사건을 수사중인 김영근 전주덕진경찰서 수사과장은 26일 전북지방경찰청에서 수사설명회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22일 준희 양 친부인 고모(36) 씨와 고 씨의 내연녀 이모(35) 씨, 이 씨의 어머니 김모(61) 씨. 김 씨의 친척 등이 거주 중인 자택 4곳과 차량을 압수수색해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또, 지난달 18일 4시간가량 준희 양을 집안에 홀로 둔 채 방치한 혐의(아동복지법상 방임)로 김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수사의 칼끝이 이들 '가족 3인방'을 정조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 뒤늦은 신고…'남남'에게 자녀 맡기고도 3주간 '모르쇠'

친부 고 씨와 내연녀 이 씨는 지난 8일 오후 아중지구대를 찾아 "딸을 잃어버렸다"고 신고했다.

이들은 신고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지난 11월 18일에 다툰 뒤 별거하면서부터 서로가 준희 양을 데리고 있겠거니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고 씨는 준희 양의 양어머니도 아닌 '내연녀' 이 씨와, 딸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인 김 씨 손에 준희 양을 맡긴 채 3주가량 무관심했던 셈이다.


경찰에 따르면 고 씨와 준희 양 사이의 연결고리는 매달 70만 원의 생활비와 한 달에 한두 번꼴인 만남이 전부였다.

경찰이 지난 22일 압수한 고 씨 휴대전화에는 준희 양의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다.

'새 외할머니'로 알려진 김 씨(61)가 넉달 가량 준희 양을 길렀다는 전주시내 한 빌라. (사진=김민성 기자)
◇ 불분명한 실종 시점, 도대체 언제 사라진건가

고 씨는 "지난 11월 16일 차를 타고 전주 우아동 김 씨의 빌라를 찾았을 때 딸(준희 양)을 본 게 마지막이다"고 했다.

경찰은 그러나 고 씨가 법최면검사를 거부하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점을 고려해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결국 경찰은 객관적인 물증을 토대로 준희 양의 행적이 지난 3월 30일 끊긴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준희 양의 의료기록은 창상(創傷. 칼 등 날붙이에 의한 외부 압력 때문에 피부조직의 연속성이 파괴되는 상처)을 입어 친부와 함께 병원을 찾은 지난 3월 19일이 마지막이다.

또, 준희 양은 완주 봉동 한 어린이집에 지난 3월 30일까지 출석한 이후 더 이상 외부 기관에서 교육받지 않고 집에서 지낸 것으로 확인됐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당시 고 씨의 내연녀 이 씨가 전화를 걸어 '딸(준희 양)의 상태가 나빠져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고 씨 내연녀의 어머니인 김 씨가 준희 양을 맡아 기른 시점에 대한 진술도 엇갈리고 있다.

김 씨는 지난 5월 초 고 씨가 준희 양을 데려다 줬다고 주장하는 반면 친부 고 씨는 양육을 맡긴 시점을 4월 말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수사팀 내부에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모르겠다'는 등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전주덕진소방서 구조대원들이 아중저수지 주변을 수색하는 모습. (사진=김민성 기자)
◇ '無 단서'로 시작하는 강제수사, 실효성은?

경찰은 수사설명회에서 "강력범죄 혐의점을 뒷받침할 만한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친부 고 씨와 내연녀 이 씨가 준희 양을 방임한 정황이 있다고 보고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입건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앞서 입건한 김 씨를 비롯한 '가족 3인방'의 신병 확보에 대해서도 "검찰과 협의해서 처리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경찰은 지난 22일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휴대전화, DNA, 혈흔 등의 감정 결과를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다.

경찰 관계자는 "친부 고 씨 아파트 복도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얼룩 1점과 압수수색 과정에서 채취한 DNA 2점 등 감정 결과를 이번 주 내로 받아볼 수 있을 것"이라며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이 준희 양 실종을 인지한 지 어느덧 18일째.

강제 수사로 기조를 바꾼 경찰이 뒤늦게나마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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