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同性, 같은 성별) 배우로 캐스팅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독특하게도 ‘광화문연가’는 다른 성별 배우를 선택했다.
연극에서는 종종 다른 성별의 배우가 더블 혹은 트리플 캐스팅되는 경우가 있지만 뮤지컬은 다르다. 배우의 연기로만 극을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노래 등을 함께 해야 한다.
같은 노래라도 남녀에 따라 편곡을 달리 해야 하므로, 제작사 입장에서는 제작비가 상승하는 요인이라 당연히 부담스럽다.
남녀 더블 캐스팅이라는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지나 연출은 이성 배우를 고집했다. 그는 “대본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성별의 구분이 사라졌다”면서, “정성화와 차지연이 딱 떠올랐다”고 밝혔다.
실제로 극 중 등장하는 월화는 성별이 특정되지 않는 중성적인 캐릭터다. 중국의 고대전설에 등장하는 월하노인에서 차용했다.
월하노인은 한국의 삼신할미처럼 짝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신적 존재이다.
대본을 쓴 고선웅 작가는 ‘월하’를 극에 등장시키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첫사랑과 미련과 그리고 깨달음을 동화처럼 꾸몄다.
중년의 명우는 첫사랑이었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못해 미련만 남았던 수아를 기억 여행 속에서 다시 만난다. 그러면서 설렘과 실망을 반복하면서 자신이 잊고 있던 진짜 사랑을 깨닫는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 ‘월하’를 맡은 정성화와 차지연은 무대에서 색다른 매력을 각각 뽐내고, 관객은 여타 뮤지컬보다 더 색다르면서도 차별화된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일단 극 중 월하는 진지하면서도 장난기가 가득하다.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지니’처럼 혼란스러운 명우 옆에서 정신없이 떠들어 대며 노래 부른다.
심지어 명우가 기억하기 싫은 흑역사를 언급하며 자존심을 툭툭 건드린다. 보는 이는 익살스럽겠지만 당하는 이는 얄밉기 그지없다.
차지연에게는 코믹한 캐릭터가 어색하지 않을까 했는데, 예상 밖으로 웃기다. 그동안 보여준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오히려 신선하다.
정성화가 ‘기대 만큼’이라면, 차지연은 ‘기대 이상’으로 웃긴다.
근엄하면서도 신비로운 모습에서는 차지연이 더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차지연 특유의 목소리가 월하의 신비로움과 잘 어울린다. 정성화는 근엄한 연기도 나쁘지 않지만, 목소리 톤이 낮아지면서 대사가 조금씩 뭉개져 들렸다.
가창력은 두 사람 모두 수준급이라는 데 부인할 수가 없다. 다만 듀엣으로 부르는 넘버는 남녀 하모니가 더 안정적이고 아름답게 들린다는 점에서 차지연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커트콜 뒤 단체로 앙코르곡을 부를 때는 차지연보다 정성화의 흥이 압권이다. 정성화이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차지연은 앙코르 곡 하이라이트에서 명우를 맡은 배우에게 노래를 양보하곤 했다. 키(key)가 맞지 않는 이유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두 배우의 같은 역할 다른 연기와 노래를 모두 접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두 배우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지만, 성별이 다른 캐릭터로 인해 공연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재미있다.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2018년 1월 1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