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그동안 사드 문제로 경색됐던 한중 관계 전반을 갈등 이전으로 되돌리는 성과를 거뒀다.
중국 정부가 사드 보복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보복으로 비쳐졌던 일련의 조치들을 사실상 철회하고 경제와 무역, 관광 등 실질 분야에서 교류협력을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철저하게 실리를 강조하며 한중 정상간 '핫라인' 가동 등 중요한 성과물들을 챙겼다.
◇ 시진핑·리커창, 사드봉인 '10·31 합의 재확인
한국과 중국은 14일 문 대통령와 시진핑 주석 정상회담, 15일 문 대통령과 리커창 총리 오찬 회동을 거치면서 관계 복원을 공식화했다.
시 주석과 리 총리 모두 사드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갈등 증폭보다는 현 단계에서 추가 논란을 막자는 데 방점을 찍었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사드와 관련해 "한국이 적절히 처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을 뿐, "역사 앞의 책임"까지 언급했던 지난 달 두 번째 정상회담 때보다는 확연히 톤을 낮췄다.
대신 시 주석은 한중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복원시켜나가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리커창 총리 역시 "한국과 중국이 민감한 문제를 잘 처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선에서 사드 문제를 봉합했다.
특히 양국 정상이 '사드를 현 단계에서 봉인한다'는 지난 '10·31 합의'를 이번에 재확인한 것도 관계 회복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최고 지도자의 결정이 일반 정책에 빠르게 반영되는 중국의 정치 특성을 고려하면 그동안 '사드 봉인'에 불만을 품었던 중국 내 군부를 중심으로 한 일부 세력의 목소리도 잠잠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신 사드 경색으로 발목잡혔던 양국 경제협력 논의가 빠르게 시작될 전망이다.
◇ 리커창 사드 보복 철회 공식화…한중 경제채널 재가동
실제로 리 총리는 15일 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양국 경제·무역 부처간 소통 채널을 재가동하고 그동안 중단됐던 다양한 협력사업들을 재개하겠다고 약속했다.
사드 보복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사드문제로 양국관계, 특히 기업간 거래 등이 크게 위축됐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됐다.
리 총리는 특히 "앞으로 한국 기업들이 혜택을 볼 것", "사드 문제로 한국 기업들의 대중 투자환경이 악화되지 않았다"고 언급하며 향후 경제협력 복원 속도가 빠르게 이뤄질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성과가 있었다"며 "또 하나의 큰 산을 넘은 기분"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중국은 내년 2월 개최되는 평창동계올림픽과 4년 뒤 중국이 개최하는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관광교류 활성화에 나서겠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시 주석은 문 대통령의 평창동계올림픽 초청에 "참가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여의치 못할 경우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리 총리는 역시 "평창올림픽 개최 기간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며 교류협력 확대를 예고했다.
◇ 중국 인민들에게 직접 다가간 文 행보
문재인 대통령이 3박4일 중국 방문기간에 가장 많이 쓴 사자성어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본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였다.
문 대통령은 방중 하루 전 이뤄진 중국 CCTV와의 인터뷰에서는 물론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최근 양국간 일시적 어려움이 오히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에 배치된 사드가 중국의 안보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중국 입장에서 이해해 전달한 셈이다.
반대로 한국 역시 날로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사드배치를 피할 수 없었다는 점도 중국이 '역지사지'해 줄 것을 당부하는 효과도 거뒀다.
문 대통령은 중국이 가장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일제에 의한 난징대학살 80주년 추모식날 베이징에 도착해 "한국과 중국은 같은 고통을 겪은 동질감이 있다"며 중국 인민들을 위로했다.
또 노영민 주중대사에게 대통령 공항 도착 행사에 나오지 말고 난징으로 가 중국인들을 위로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 국빈방문 홀대론 일축…취재기자 폭행은 아쉬움
청와대는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이 이번 세 번째 만남을 통해 신뢰와 우의를 돈독히 다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14일 오후 4시30분 공식환영식에서부터 시작된 두 정상의 만남은 확대 정상회담과 소규모 정상회담, 국빈만찬, 한중 문화교류의 밤 행사 등을 거쳐 밤 9시30분이 넘어서야 끝났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두 정상이 5시간 넘게 옷을 갈아입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소통했다"며 "국빈만찬에서도 두 정상이 다양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김정숙 여사와 펑리위안 여사도 한 자리에 계속 같이 있는 등 내조외교도 성공적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청와대는 두 정상이 양자와 다자외교 계기는 물론 전화통화와 서신교환 등 다양한 소통 수단을 활용해 정상간 '핫라인'을 가동하기로 합의한 것을 큰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청와대는 방중 기간 한국에서 느닷없이 제기된 '홀대론'에 대해서는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3박4일 방중 기간에 시 주석과의 만찬, 리 총리와의 오찬을 제외하고 문 대통령이 모두 '혼밥'(중국 고위 관계자 없이 우리 측 참모하고만 밥을 먹었다는 의미)을 한 것은 결국 중국으로부터 홀대를 당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에 사실이 아니라고 맞섰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왜 그런 프레임의 얘기가 나오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며 "가장 중요한 사드갈등 봉합과 경제협력 확대 등의 성과의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또 "과거 전직 대통령들도 방중 기간 중국 정상과 식사를 한 차례만 한 적도 많다"며 홀대론을 일축했다.
이와 함께 방중 첫날 문 대통령 내외가 중국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 영접나온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의 격(格)이 논란이 된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쿵쉬안유가 우다웨이 부부장의 직무대리 성격이어서 격이 낮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번 방중 기간에 중국측의 의전과 전반적 예우는 홀대론과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상회담을 앞두고 리커창 총리와의 오찬회동을 시도했다는 점, 다른 중국 고위관계자들과의 추가 접촉이 가능했다는 점 등에서 '홀대론'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 취재진이 중국 경호원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중국 정부의 특수한 언론관과 공안(경찰)의 비인권적 행태를 감안하더라도 한국 대통령을 근접 취재하던 기자들이 무차별 폭행당한 것은 한국에 대한 중국의 일반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