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의 화살은 급격하게 방향이 바뀌었다. 린드블럼의 SNS 폭로에 롯데로 향했던 비난은 구단의 해명과 린드블럼의 두산과 거액 계약에 선수에게로 활시위를 돌렸다. 결국 돈 때문에 린드블럼이 롯데를 버리고 두산으로 향한 것이 아니냐는 것.
이런 가운데 롯데가 린드블럼과 맺은 계약 조항을 어기고 보류 선수 명단에 넣어 압박을 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계약서는 물론 롯데와 린드블럼 측이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도 드러났다. 여론은 다시 롯데가 신의를 저버렸다는 쪽으로 급변했다.
폭로에 폭로,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는 난전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는 다시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재계약 과정에서 보류 선수 명단을 놓고 구단이 일부 실수한 게 있지만 KBO 리그 규정을 어기거나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구단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은 심하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한 쪽의 주장이나 해명, 반박이 아니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 가려내기가 매우 어렵게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감정 싸움이다. 사태의 편린이 아니라 전체의 흐름을 살펴봐야 이해될 사안이다. 이 복잡한 싸움의 전체 스토리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
사태의 본질을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롯데와 린드블럼의 관계를 연인에 비유해보겠다. 복잡한 계약과 규정을 벗어나면 오히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별에 예민한 시대라 편의상 남과 여를 특정하지 않는다.
▲마음 떠난 린드블럼, 포기 못한 롯데
A(롯데)는 B(린드블럼)를 사랑했다. B도 A가 맘에는 들었지만 다른 사람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계약 커플이 되기로 했다. 5개월 정도만 사귀고 헤어질 수 있는 조건. 애가 닳았던 A는 B의 요구를 허락했다. 다만 계약 기간 이후에도 쌍방 합의 하에 더 사귈 수도 있었다.
계약 기간이 끝나갈 즈음. 그런데 A는 쉽게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 B에 대한 애정이 너무 깊어 더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약 기간을 연장하자고 어르고 달래고, 때론 강하게도 나섰다. 연장에 대한 가계약서(보류 선수 명단 등재)까지 작성했다.
이에 B가 가계약서에 항의하자 A는 사과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계약 기간 마지막 날 결별 도장을 찍어줬다. 그리고 B는 더 좋은 조건의 이성인 C(두산)를 만났다. 다른 이성도 접근해왔지만 B의 선택은 C였다. C도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연인(더스틴 니퍼트)과 계약 커플 기간이 끝났다. 다만 C는 조건없이 연인을 보내줬다. 이를 알고 B가 A에게 따지기도 한 것이다.
그러자 B가 A와 맺었던 계약서 내용과 그동안 주고받았던 사적인 문자들까지 공개했다. A가 가계약서를 쓰는 등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고, B가 이를 따지자 A가 사과한 내용의 문자도 있었다. 또 다시 주위 평판은 급변했다.
A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계약서의 공증인(KBO)에게 문의해 가계약서를 써도 되며 B가 원하면 결별 도장은 마지막 날에만 찍어주면 된다는 확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치 약속을 저버린 것처럼 매도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가슴을 치고 있다. "나는 B를 너무 사랑해서 마지막까지 붙들고 싶은 마음뿐이었고 그래서 가계약서로 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B가 그걸 모르고 내가 주위에 소문을 냈다느니 비난을 하는데 결코 둘 사이의 관계를 입밖에 낸 적이 없다"는 A다.
결국 A가 B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 너무 커서 벌어진 한편의 치정극인 셈이다. B는 이미 A를 떠날 마음이 확고했다. 그렇지 않으면 계약 커플에 5개월의 기한을 두자고도 하지 않았을 터. 그 마음을 알면서도 A는 어떻게 해서든 B를 붙들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야구계 "선수-구단 사이의 제 3자 책임도"
남녀 사이에는 사소한 일에도 오해가 생기기 마련이다. 둘의 이별을 감지한 주위 사람들이 "너네 헤어지는 거니?"라고 자꾸 묻자 A가 얼버무렸지만 이게 확대 재생산이 돼 소문이 커진 모양새다. 이에 B가 폭로했고, A가 방어했으며, B가 또 문자까지 공개하며 전혀 깔끔하지 못한 이별이 돼 버렸다.
둘을 잘 아는 주위 사람들(야구계)은 애초 A와 B의 만남을 주선한 '결혼정보업체' D(에이전트)의 책임도 있다고 말한다. 이미 계약 기간 막판 A와 B가 떨어져 있는 사이 둘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D가 살짝 말을 잘못 전해서 오해가 커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B에게 "A가 너의 험담을 하고 다닌다더라" 등이다. D의 입장에서는 B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이익이다. C에게 B를 먼저 소개한 것도 D였다.
B는 A를 떠났다. 그리고 C를 만났다. 그렇다고 B가 A와 아예 모른 척하고 지낼 상황은 아니다. A와 C도 동종업계 종사자다. A와 B의 갈등에 좋은 배필을 만났다고 생각했던 C도 난감한 상태다. 헤어지려면 곱게 헤어지는 게 좋다. 남녀 사이에서 이별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면 둘 모두 좋을 게 없다. 진흙탕 싸움은 짧게 끝내야 한다.
일단 A는 이런 상황에서 다시 B가 계약 기간 주고받은 사적인 문자들을 더 공개한다면 법적 대응에 나설 수도 있다. 개인정보보호법(KBO 외인 계약서 11조 비밀 누설 금지 조항) 위반을 문제삼는다는 것. 헤어진 연인이 법정에서 다시 만나는 것만큼 좋잖은 해후도 없다.
이후 보류 선수 명단 등재 여부와 관련된 소동은 어쩌면 작은 부분이다. 시즌 뒤 보류권 해제 약속은 향후 KBO 구단들과 외인 선수들 사이의 계약에 선례를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구단들이 에이전트를 앞세운 외인 선수들에 끌려가는 상황에서 갑을 관계가 더 명확해질 수 있다.
더욱이 내년부터는 에이전트 제도가 공식적으로 시행된다. 에이전트들은 선수가 더 높은 몸값을 받아야 수수료도 높아진다. 대체로 이적을 해야 몸값도 높아지기 마련. 때문에 특급 선수들의 이적은 더 활발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에이전트와 선수들이 더 많은 돈을 받으려고 하는 것도 프로의 세계에서는 자연스럽다.
파국 직전까지 향한 롯데의 린드블럼의 '치정극'. 선수층이 얇은 한국 야구 현실에서 특급 선수의 힘이 더 커지고, 구단들이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