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장준환 감독의 눈물과 2017 김태리의 '촛불'

6월 항쟁부터 촛불 광장까지…영화 '1987'이 접속시킨 30년

장준환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그 시대를 겪어본 적도, 느껴본 적도 없다. 그러나 충분히 희망을 되찾기 위해 나아가는 한 사람의 시민이 될 수 있었다. 영화 '1987'이 단순히 뜨거웠던 운동권 시절을 추억하는 영화가 아닌 이유다.

'1987'의 예고편은 언제나 1987이라는 숫자에서 2017로 전환, 개봉일을 알리며 끝난다.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장준환 감독에게 매캐한 최루탄 연기를 마시며 대통령
직선제를 부르짖었던 그 해와,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이 타올랐던 지난 겨울은 같은 의미를 가진다.

장 감독은 13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온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왔던 그 뜨거움과 최루탄에 맞서 구호를 외치던 뜨거움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물론 당시에는 물리적 폭력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들도 물리적으로 대항한 부분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두 사건 모두, 우리 국민이 얼마나 위대하고, 힘이 있는 국민인지 그런 부분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지치고 힘들고 절망스러울 때 국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서로에게 힘을 주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1987년과 2017년이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설명했다.

이날 시사회 이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장준환 감독은 고(故)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를 생각할 때마다 목이 메여 눈물을 비쳤다. 기자간담회 시작부터 슬픔이 가득 차오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장준환 감독은 질문을 받아 "옆에서 자꾸 우니까 나도 울었는데 이게 창피한 건 아닌 것 같다. 편집하면서도 많이 울었다. 두 열사의 마지막 순간을 보면서 굉장히 슬펐다. 당시 박종철 열사가 21살, 이한열 열사가 20살…"이라고 답하다가 북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장준환 감독이 '1987'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15년 1월이었다. 시나리오 초고를 읽은 그는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에 휩싸였다. 좀 더 행복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부조리함에 치열하게 싸우지 못했던 과거의 부채감이 그를 움직였다.


장 감독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작가님과 오랜 시간 함께 각색 작업을 했다. 초고를 김윤석에게 그냥 한 번 전달을 한 적이 있다. 왜 이 영화를 하려고 하냐면서 말리더라. 몸조심 하라고 농담하면서 그랬었다"며 "그 때만해도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 많이 의심하며 작업을 해야 했던 때다. 그래서 이 순간이
정말 기적같이 느껴진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87' 속 수많은 시민 캐릭터들은 드라마틱한 과장 없이도 각자의 자리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들 중 누구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결코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은 세상에 알려질 수 없었던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장준환 감독은 "이건 나만의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배우들을 내가 설득했다기보다는 모두 스스로 참여해준 거다. 나라는 감독을 믿고 그런 게 아니라 이 이야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 재미가 있고 힘이 있기 때문에 다 같이 믿고 하게 된 거다. 비록 짧게 등장하더라도 각각의 캐릭터가 인상깊게 조각되도록, 누구 하나 잊혀지지 않도록 다 주인공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영화 '1987'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6월 항쟁 세대가 아닌 젊은 배우들 역시 장준환 감독의 마음과 같았다. 정확히 30년 후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 집회를 겪은 그들에게 '제도적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1987년 6월 항쟁은 그리 먼 일이 아니었다.

진실을 쫓는 동아일보 윤기자 역의 배우 이희준은 "시나리오를 본 다음 바로 1987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됐고, 방에서 막 울었다. 당시 한창 촛불집회가 있을 때였는데 바로 집회부터 나갔다. 그 자리에 내가 없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너무 이 영화를 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20대인 김태리 역시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그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허구의 인물로 갓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 연희 역을 맡아 극 후반을 밀도있게 이끌어간다. 김태리는 처음 장준환 감독과 만났을 때 '광화문 광장의 촛불집회나 시대를 대하는 생각'을 물어봤던 순간을 떠올렸다.

김태리는 "감독님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많이 정리가 됐다. 당시 나는 시간이 되는 한 매주 광장을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던 상태였다. 내가 이걸 나간다고, 100만 명 중에 한 명에 섞인다고 세상이 변화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시대를 바라보는 입장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었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1987' 촬영은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었다.

김태리는 "마지막 촬영에서 버스 위에 올라가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봤을 때,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숨어 있던 작은 희망이 확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정말 그 광장에 모여서 뭔가 이뤄낼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가진 국민들이라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뜨거웠던 순간을 전했다.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1987'은 오는 2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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