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팔을 입었을 적 첫 발을 뗀 총파업은 오늘(12일로) 꼭 100일째를 맞았다. 2012년 진행한 95일 파업을 뛰어넘는 '최장기간 파업'이 됐다. 방송을 주 업무로 하는 이들이 일손을 놓아 파행을 만들고, '무노무임' 원칙에 따라 월급도 받지 못하는 파업. 꽉 찬 석 달 하고도 열흘을 넘긴 100일 파업을 이어가는 이유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 노조원들에게 물었다. "왜 파업하세요?"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하고 일터로서 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곳으로 KBS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같아요, 이번이. 이걸 놓치면 더 이상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2200명이 정말 흔들림 없이, KBS에서 파업했던 것 중 가장 규모도 크고 가장 이탈이 없어요. 가장 강고합니다. 그만큼 절박함이 반영돼 있다는 거죠. KBS가 정권 편향적 방송을 하면서 무너지는 동안 미디어 환경도 변했잖아요. 이렇게 가면 KBS가 과연 필요한 방송인가, 공영방송이 필요한가 하는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KBS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하는 거고요."
_ 강윤기 시사교양PD('명견만리')
"저희가 지난 9년 동안 싸우긴 했지만 번번이 졌거든요. 길환영 전 사장을 몰아낼 당시에는 간부들이 주도해서 몰아낸 다음에 고대영 씨가 온 것이거든요. 조대현 사장을 거치긴 했지만요. 다시는 그런 패배를 겪어보지 말자, 요번에는 정말 제대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을 바꿔보자 하는 의지 때문에 나왔습니다. 그게 100일이 되든 며칠이 되든 간에 이번에는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이고요. 파업 중에 더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다는 건 되게 역설적인 거죠. 예전 RESET KBS(2012년 파업) 때 느낀 바가 있어서 이번에도 주저 없이 파업뉴스팀을 띄워보자고 했는데, 사실 무척 신기한 경험입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열정적으로, 어떤 것을 발굴해서 하는 것, 정말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거든요."
_ 김시원 기자(KBS '파업뉴스팀')
_ 김성일 전 새노조 사무처장(경영)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교양이나 취재 구역이랑 상황이 조금 달라요. 하지만 수신료로 드라마를 만드는 KBS 직원 입장에서 KBS가 그동안 올바르게 정권 비판을 못한 상태로 오래 왔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는 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당장 결방되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 인력들이 굉장히 많이 빠져서 삐걱거리고 있거든요. 더 장기화되면 진짜 문제가 발생할 것 같고 저희도 그렇게 되기 전에 빨리 책임져야 될 사람들이 빨리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고요. 그렇게 해서 KBS에서 드라마를 한다는 게 좀 더 당당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_ 김민경 드라마PD('흑기사')
"이번 파업을 하기 전까지는 정말 몰랐어요. 그냥 회사원이기 전에 공영방송을 다니고 있는 거잖아요. 공영방송의 일원으로 해야 될 일이, 방송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그게 안 될 때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편파적인 방송이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을 방송에서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파만 나가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파업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_ 김지원 아나운서('옥탑방라디오', 주말 '뉴스광장')
"입사한 지 7년 동안 K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은 그 힘과 색을 잃었습니다. 그건 비단 정치권의 장악만이 아니라 거기에 안온하게 젖어든 PD들의 잘못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긴 파업, 겨울바람 맞고 나면 시사교양PD들 각자의 야성과 색깔을 다시 탄생시키는 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파업 승리가 눈앞이지만, 그 승리에 만족하지 않고 언젠가 교양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다시 시민 여러분께 공영방송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계속해 스스로와 싸울 것입니다."
_ 이승문 시사교양PD('땐뽀걸즈')
_ 임용진 새노조 총무국장(기술)
"안녕하세요. KBS 예능국에 이민정 PD입니다. 저는 '살림하는 남자들'이라는 수요일 저녁 9시대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탄탄한 고정 시청층을 가지고 있는 장수 예능프로그램들에 비해 인지도가 이제 막 쌓이기 시작한 입장이라 파업으로 시청자들에게 저희 프로그램이 잊힐까 하루하루가 걱정이고 조바심이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긴, 자식 같은 프로그램을 떼어놓고 나온 모든 예능 피디들의 마음이 저와 같을 겁니다.
파업 초반에는 기자들이나 탐사보도 피디들에 비해 예능구역의 온도는 낮았습니다. '우리는 왜 파업을 하는가?'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던 예능PD들도 있었습니다. 출연자 섭외나 아이템 선정 등에 있어 개입의 폭이 적었기에 피부로 느끼는 문제점이 덜했던 것도 이유일 것입니다.
PD는 프로그램으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드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결국엔 정권을 비호하는 자들의 영광과 방패막이가 되는구나 하는 자괴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이번 파업 중에도 일부 방송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근거로, 고대영 사장과 임원들은 '경영에 문제없다. 예능&드라마는 컨트롤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KBS 파업 역사상 가장 강력하게 예능PD들은 파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1박 2일', '슈퍼맨이 돌아왔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해피투게더', '안녕하세요', '1대 100', '콘서트 7080', '살림하는 남자들' 등이 무기한 결방 중입니다.
100일간 예능PD인 제가 파업을 한 이유는, 공영방송을 자신의 출세의 창구로, 정권의 나팔수로 훼손시킨 그들에게 더 이상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예능프로그램은 더 이상 고대영 사장의 방패막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KBS가 다시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으로 되살아나길 희망합니다. KBS 예능 프로그램들이 다시 우리 사회의 약자를 보듬고 고된 현실에 다정한 웃음을 건넬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_ 이민정 예능PD('살림하는 남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