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용환 "뜨거운 '현대사'…먹기 좋게 식히려 했다"

[인터뷰] 역사서 '단박에 한국사 - 현대편' 출간…"현대사 장벽 너머로"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역사가 심용환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새 책을 갓 내놓은 저자의 발언이 맞을까 싶었다. 역사가 심용환(41)은 최근 출간한 '단박에 한국사 - 현대편'(위즈덤하우스)을 두고 "집필을 마친 순간 이 책은 잘 안 팔리겠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의 이 비관에는 특별한 배경이 있다.

"사실 우리나라 서점가에서 현대사를 다룬 역사서는 가장 안 팔리는 책 중 하나예요. 책을 내기 전까지는 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다 쓰고 나서 알았죠. '이 책 갖고는 어디 가서 강연도 못한다'는 것을요. 보통 공공기관·기업, 방송 등에서 원하는 강연은 '예민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최대한 독립운동사에서 끝내야지 그 너머로 가기가 힘들죠."

지난 11일 낮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심용환은 "지금 우리는 현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가까운 곳이 아닌, 먼 과거로 눈을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는 진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지, 조선시대 백성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자꾸만 '유구한 역사'를 강조하면서 과거로 갑니다. 성리학이 우리 학문의 핵심도 아니고, 만주가 우리 땅도 아닌데 말이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 땅에 살면서도 대한민국 역사를 불편해 하는 셈이죠."

심용환은 "사람들이 현대사에 쉽게 다가가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뜨겁기 때문"이라며 "이번 책은 사람들이 먹기 좋도록 뜨거운 한국 현대사를 식히려 애쓴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역사학계 연구 결과를 흥미롭게 풀어낼 수 있는 무기는 문학성입니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도발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는 거죠. 그것이 작가, 역사가로서 지닌 제 의지입니다. 어찌 됐든 뜨거운 현대사를 적당히 식혀서 다른 사람들이 맛있게 먹도록 도와야 하는 입장인 거죠. 현대사라는 장벽을 넘지 못하면 세계 근현대사를 보기 힘들어지니까요."

◇ "만들어진 퍼즐 안에서 맞춰 끼워진 조각 '대한민국'"

책 '단박에 한국사 - 현대편' 삽화(사진=위즈덤하우스 제공)
'단박에 한국사 - 현대편'은 모두 19개 챕터로 꾸며졌다. 처음 3개 챕터를 할애할 만큼 제2차 세계대전, 초강대국 미국의 헤게모니 장악, 현실 공산주의 국가 소련·중국의 탄생, 냉전 체제 구축 등을 밀도있게 설명한 점이 인상적이다.

이에 대해 심용환은 "앞선 '단박에 한국사 - 근대편'이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본 한국 근대사였다면, 이번 '현대편'의 포인트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본 한국 현대사"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는 미국처럼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입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좌지우지 당하는 입장이에요. '우리가 어떠한 세계 속에 놓여져 있는가'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 이유죠. 그런데 그간 그렇지 못했어요. 물론 일부 교과과정 계정이 바뀌면서 교과서에 설명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냥 의미 없는 풍경처럼 그려집니다. 시험에 안 나오니까 넘어가기도 하고요."


결국 "만들어진 퍼즐 안에서 우리는 맞춰 끼워진 조각이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그는 이 책에서 '제주4·3' '서울대 내란 음모 사건' '민청학련 사건' '광주5·18' 등 권력자들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을 부각시키는 데 애쓰고 있다. "한국 현대사를 인권의 개념으로 서술하고 싶은 생각이 컸다"는 것이다.

"이 책이 두 달가량 늦게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한국 현대사에서 너무도 많은 인권유린 사건이 벌어져서 다 쓸 수는 없었죠. 차라리 몇 가지 사건을 선명하게 드러내자는 생각으로 제주4·3, 민청학련,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 유학생 간첩단 사건 등을 넣었어요."

그는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떠한 폭력에 의해 어떻게 질식해 갔는지를 자세히 묘사하려 애썼다"며 "이러한 인권 침해 사건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과 병렬로 배치돼 함께 다뤄지기를 바란다"고 역설했다.

◇ "가교 세대라는 소명 갖고 다음 세대 위해 이 책 썼다"

단박에 한국사-현대편ㅣ심용환ㅣ위즈덤하우스
심용환은 "윗세대와 다음 세대를 잇는 가교 세대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이 책을 썼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 책에서 미국 대 소련·중국을 위시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을 '산업화를 지향했던 100년의 시간'으로 보고, 페미니즘·성소수자 논쟁 등을 다루면서 차별점을 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A라는 사조가 유행하다가 B라는 사조가 나오면, 사람들은 A 사조를 까맣게 잊고 B 사조를 두고 박터지게 싸운다. 그러나 A 사조도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한다"며 말을 이었다.

"이는 사회적 품격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전화·인터넷에 신용카드 기능까지 있는 스마트폰을 편하게 사용하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를 각각 존중하거나 섞으면서 함께 사고하지 않아요. 언제까지고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이분법적인 사고관 속에 머물거나, 막연한 다원주의에 기대어 '모두 옳다'는 식으로 갈 수는 없는 법입니다."

심용환은 "결국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공존하지만 경쟁하고, 경쟁하지만 공존하는' 다층성을 품어내는 일"이라며 "사실 그간 한국 현대사 서술은 이념사 중심이었기에 한계가 분명했다"고 지적했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찬란한 구국과 건국을 이야기하고, 진보진영은 민주화 운동, 인권유린 등 저항사·투쟁사 위주였죠. 모두가 한국 현대사의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냉정하고 차분하게 바라보려 하지 않았던 거죠. 이해는 됩니다. 본인들이 박정희의 녹을 먹거나 싸운 참여자였으니까요. 그분들이 현장성을 갖고 있었다면, 현장성을 지니지 않은 후세대는 그 시대를 객관화하거나 새롭게 구성할 권리를 갖는 법이죠."

◇ "우리 DNA는 여전히 정의보다 이득 취하는 데 익숙하다"

역사가 심용환(사진=박종민 기자)
심용환에게 '단박에 한국사 - 현대편'은 더 나은 역사 교육을 고민해 온 열매이기도 하다.

"역사 교육이 정상화되고는 있지만, 근현대사 교육은 여전히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우려점이다. "역사 교육 자체가 암기교육으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학생들의 의식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일선 학교 교사들 역시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국정교과서는 없어졌지만, 박 전 대통령이 그 전에 벌인 한국사 수능 필수화 작업은 그대로 있어요. 이것이 이명박 정권 때부터 국사와 근현대사 교과서가 하나로 합쳐진 것과 맞물리면서, 학교 현장에서 근현대사 교육을 제대로 못하도록 만들고 있어요. 이명박·박근혜 정권 이전에 50을 했다면 지금은 10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심용환은 "이러한 문제를 잘 풀어내는 과정이 필요한데, 잘 돼도 10~20년은 걸릴 것으로 본다"며 "개인적으로 저술·강연 등을 통해 빠르게 응대하면서 역사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잡아가는 동안 버팀목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그가 역사서 '단박에' 시리즈를 10권으로 구상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의지의 연장선상에 있다.

"내년 '조선편'을 끝으로 '단박에 한국사'는 완간됩니다. 이후 '미국편' '중국편' '유럽편' '일본편' 등 '단박에 세계사' 시리즈까지 모두 10권을 낼 생각입니다. 제 40대를 건 10년 프로젝트인 셈이네요. (웃음) 사람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그러면 후배들은 제 한계를 넘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심용환은 "'단박에 한국사 - 근대편'을 본 분들은 '현대편'도 봤으면 한다. 역사는 계속 흐르는 것이니까"라며 "무엇보다 1960년대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1960년대부터 만들어진 박정희식 시스템, 그러니까 리더가 주도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더러운 전쟁에까지 발을 담그고, 주류 질서에 편입해 성공하려는 기회주의적 속성 등이 그때 뿌리내렸죠. 우리의 사회적 DNA는 여전히 정의보다 이득을 취하는 데 익숙해요. 지금 대한민국의 모태인 1960년대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포스트 모던한 사회적 이슈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1960년대 미국사를 보면 대단히 흥미로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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