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민, '마녀의 법정' 택한 이유 "안 하면 바보라 생각"

[노컷 인터뷰] '마녀의 법정' 여진욱 역 배우 윤현민 ①

KBS2 '마녀의 법정'에서 여진욱 역을 맡은 배우 윤현민 (사진=제이에스픽쳐스 제공)
'여아부'. 지난달 28일 종영한 KBS2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에 등장했던 검찰 내 조직이다. 여성·아동 대상 범죄 전담부서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도저히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없는 사건들이 등장했다. 물론, 그런 일은 극중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빈번히 일어난다.

야망과 승진에 매달리는 속물 검사 마이듬(정려원 분)을 앞세운 '마녀의 법정'에서 윤현민은 그의 파트너이자 연인이 되는 초임 검사 여진욱 역을 맡았다. 사심이 없어 누구보다 냉정하고 공정하게 사건을 대하는, '온화한 얼굴'의 검사였다.

전작 OCN 주말드라마 '터널' 종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작품에 들어간 윤현민은, 바쁘게 달려왔다. 세트장이 먼 곳에 있어서 차라리 이동시간을 줄이자는 마음에서 차를 집 삼아 살았다. 세트장 앞에 차 세우고 자는 게 일상이었다고.

지난 4일, 조곤조곤한 말씨와 섬세함에 자연히 여진욱을 떠올리게 되는, 배우 윤현민을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거절하면 바보겠구나" 싶은 대본에 '마녀의 법정' 합류

윤현민은 드라마가 끝나고도 잘 쉬질 못했다고 했다. 촬영 때문에 미뤘던 일을 처리하다 보니, 종영 인터뷰를 앞둔 전주 토요일, 일요일 이틀만 쉬며 숨을 돌렸다. 하지만 얼굴은 밝았다. 편성 당시만 해도 '약체'로 꼽혔던 '마녀의 법정'은 상승세를 타며 최고시청률로 종영하는 유종의 미를 거뒀기 때문이다.

윤현민은 전작 '터널'에서도 마지막회가 최고시청률인 기분 좋은 기록을 썼다. 6.490%, 케이블 방영작인 것을 감안해도 높은 수치였다. 그는 "참 운이 좋았다"며 "'터널'과 '마녀의 법정' 둘 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제가 잘했다기보다 운이 따라준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라고 말했다.

그래도 작품이 연달아 잘 된 건, 아무래도 배우의 '안목'이 작용한 게 아니었을까. 윤현민은 사실 전 역할이 날카로운 이미지여서 로맨틱코미디에 갈증을 느꼈다. 그런 장르 위주로 대본을 보고 있었는데 우연히 '마녀의 법정'을 발견했다.

지난달 28일 종영한 KBS2 '마녀의 법정' (사진=아이윌미디어 제공)
작가도, 감독도 "현민 씨가 이 작품을 할 줄 몰랐다"고 했지만 그의 생각은 명쾌했다. "대본이 좋아서 하게 됐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인 표현을 옮기면 "안할 이유가 전혀 없는", "거절하면 바보가 될" 대본이었다.

단막극까지 10편 넘는 드라마를 찍은 윤현민은 자신의 '경험상' 요즘 잘 되는 드라마는 빠르면 2부, 늦으면 4부 안에 승부가 난다고 봤다. 그는 "2부까지만 읽어도 캐릭터 둘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거기다 정반대로 보여서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대본 덕분에 작품에 들어온 윤현민은 본인의 선택이 맞았다는 걸 확인했다. 정도윤 작가는 단 한 번도 대본 나오는 날짜를 어기지 않았다. 미니시리즈를 할 때 마지막회는 거의 쪽대본을 받았는데, '마녀의 법정'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연기자로서 너무 감사했다"고 재차 고마움을 표했다.

정 작가는 대본에 궁금증이 생겨 걸었던 윤현민의 전화도 잘 받아주었다. 집필 과정이 만만치 않고, 어쩌면 몹시 예민할 수 있을 텐데도 배우를 위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고. 윤현민은 이 일화를 전하며 또 다시 "작가님께 감사하다는 마음이 많다"고 부연했다.

◇ 마이듬으로 완벽 벽신한 정려원 향한 '무한신뢰'

'마녀의 법정'은 출세지향적인 여성, 보다 따뜻한 성격의 남성이 주인공으로 나와 신선하다는 평을 들었다. 마이듬은 그동안 흔한 '남주'(인공)가 했던 것 이상으로 사이다를 날리는 '센' 캐릭터였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빈틈도 있는.

마이듬에 비하면 잔잔했던 여진욱을 연기해야 해서 어려운 건 없었는지 묻자 "이듬이가 너무 통통 튀고 초반에 확 몰아치다 보니, 제가 초반에 차분하게만 가면 혹시 묻힐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내 "다행히 이듬이가 너무 잘해줘서 진욱이라는 캐릭터도 잘 살았던 것 같다. 괜한 걱정이었다"면서 "(극중 성이) 여씨여서 현장에서 조명감독, 카메라감독님이 '우리 드라마의 여배우'라고 하셨다"며 웃었다. 이어, "저랑 구 계장(윤경호 분) 말곤 다 여자들이어서 남자배우가 드문 현장이었다. 그래서 저랑 구 계장님이 많이 예쁨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정려원과는 어느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았는지 묻자 윤현민은 나직하지만 또박또박 말했다. "저는 누나가 아니었으면 안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누나가 아니었으면 저도 (캐릭터가) 죽었을 것이란 생각도 들고요"라고.

(사진='마녀의 법정' 캡처)
"첫 리딩 전에 저랑 이듬이 누나는 캐스팅이 돼 있어서 자주 봤다. 감독님이랑도 자주 연출부 사무실에 가서 같이 대본 읽고 서로 의견도 계속 나누고 첫 촬영 때 우리가 서먹한 게 없었다는 것은 정말 잘한 행동이었던 것 같다. 어, 이듬이라는 캐릭터가 정려원 아니면 누가 떠오르지? 전혀 안 떠오르더라. 케미적으로 너무 좋았다. 진짜 너무 잘 맞고. 너무 편한 사람이었다."

"일단 제가 려원누나를 평가하는 건 절대 아닌데 려원누나의 필모를 봤을 때 굉장히 라이브한 게 좋았다. 굉장히 자연스러운 날것의 연기를 하시는 분이다. 후배 입장에서 그렇게 되고 싶었고. 이번 작품을 하면서도 매 씬에서 가짜로 안 하려고 많이 노력하셨다, 누나가. 저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 해서 더 얘기가 잘 됐던 것 같다."

처음에는 마이듬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여진욱은 결국 마이듬과 연인이 된다. 그러나 윤현민은 진지한 법정물이니만큼 멜로가 넘치면 안 된다고 봤다. 혹시라도 흐름에 방해가 될까봐. 하지만 '여진욱스러운' 면에서 세밀한 부분은 챙겼다.


휴대폰에 저장돼 있는 마이듬의 이름이 이니셜을 딴 'my듬'이었던 건 윤현민의 아이디어였다. '나의 이듬'이라는 표현만으로도 두 사람의 캐릭터가 드러나면서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고.

윤현민은 "이듬이랑 취중 키스씬 때 핸드폰을 주의 깊게 보시면 my듬으로 돼 있다. 정말 조그맣게. 제가 소품팀한테 그렇게 저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살짝은 보이더라"라며 웃었다.

◇ '여진욱의 회차'였던 5부, 중압감 이겨내고 감 찾다

결코 가볍지 않은 사건을 다룬 만큼, 연기에 임하는 윤현민의 마음도 진지했다. 가상의 사건이 아니라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배우들도 연기하면서 가해자를 욕하고 화도 냈다고. 그는 "진정성 있는 마음들이 각자 배우들에게 다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온갖 사건사고를 접한 와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뭐였을까. 윤현민은 5부를 들었다. 처음부터 여진욱의 회차라는 건 알았다. 왜 의사를 때려치고 검사가 됐는지 자기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이어서, '5부 준비하세요' 하는 귀띔을 들었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도 대본 읽으니 진짜 먹먹했다. 눈물을 참을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더 부담이 됐다. 3부부터 시청률이 치고 나갔기 때문에 5부는 안착시켜야 하는 때였다. 그런 중압감도 있었다. 더군다나 사건이 너무 셌다. 감독님이랑, 카메라감독님이랑 얘기를 많이 나눴다. 감정 디렉션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감독님이 와락 눈물을 흘리시더라. 그래서 5분만 쉬었다 한 적도 있다. 이런 모습들이 이 드라마의 모습이었떤 것 같다. 모든 사건에 진짜로 다 화나고. 5부 때 감독님조차도 눈물 흘리며 먹먹해하시는 걸 보고 '아, 이게 우리 드라마구나' 하고 감을 찾았다."

'마녀의 법정' 5회에서는 여진욱이 왜 의사를 그만두고 검사로 전향했는지 그 사연이 나왔다. (사진=제이에스픽쳐스 제공)
캐릭터의 특성상 통쾌한 장면은 대부분 마이듬의 몫이었다. 윤현민은 "저도 이듬이의 행동 덕분에 통쾌하고 소름돋고 그랬다. 이게 좀 더 긴 드라마였다면 진욱이도 이듬이 스타일을 반영하지 않을까. 배우기도 하고"라고 말했다. 혹시 드라마 연장을 바랐는지 물으니 "13부, 14부 때 되게 걱정했다. 방송사에서 연장 얘기 나올까봐"라고 웃으며 "그때 진짜 녹초였다"고 덧붙였다.

드라마에 잔뜩 몰입해 있다 나오는 게 어렵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그냥 끝나고 나서 그립더라"라고 답했다. '식구들'이 그리워 그는 단톡방에 괜히 실없는 소릴 했다. "다들 뭐하십니까"라고. 그러면 극중 부장검사였던 김여진은 "여검, 자네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나"라고 말했다.

드라마 세트장은 벌써 철거됐다. 그 얘기를 듣고 윤현민은 진짜 마음이 안 좋았다고 밝혔다. 드라마 세트장에 있는 소품을 가져오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조금 달랬다. '검사 여진욱'이라고 써 있는 소품은 현재 그의 집에 있다. 정려원은 검사실 문을 떼 달라고 했다는 후문이다.

◇ 지켜보는 것만으로 공부가 됐던 현장

'마녀의 법정' 주요 배우들은 신기하게도 처음부터 연기자의 길을 걸어온 쪽은 아니었다. 정려원은 걸그룹 샤크라로 데뷔했고 윤현민은 프로 야구선수였으며 전광렬은 악기를 다뤘고 김여진도 독어과를 졸업했다.

윤현민은 "갑수(전광렬 분) 선배님과 (정려원까지) 셋이 밥을 먹는데 '야, 현민아 나도 연기 전공이 아니다? 나도 음악했던 사람이야. 려원이도 그렇잖아. 우리 셋은 공통점이 있어. 허허허' 그러셨다. (김)여진 선배님도 졸업하고 연기자가 될 줄 몰랐다고 하셨다. 넷 다 연기 전공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배우 윤현민 (사진=제이에스픽쳐스 제공)
선배 연기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말을 구하는 편인지 묻자 그는 연기를 제대로 배운 건 처음에 강남역 연기학원을 3개월 다닌 게 전부라고 답했다. 다만 함께 작업하는 선배들의 연기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잘 가고 있는 좋은 선배한테 배워야 좋은 연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려원의 연기, 전광렬의 연기, 김여진의 연기… 모두가 그에게 참고가 됐다. 윤현민은 "다음 작품에서도 좋은 선배님들을 만날 거고, 그때도 어떻게 연기하는지 캐치하려고 할 거다. 평생 그러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사실 타인의 연기에 얻어맞은 기분을 처음 느낀 건 故 김주혁을 봤을 때였다고.

정경호, 김소연, 정유미, 정려원, 안내상, 전광렬 등 같이 선배들이 그에겐 스승이다. 직접 가르침을 받진 않았어도, 그들이 하는 연기를 카메라 뒤에서 보기만 해도 공부가 됐단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이름 석 자만으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전광렬과 연기할 생각에 많이 긴장했다고 고백했다. 윤현민은 전광렬을 너무 재밌고 따뜻하면서도 필요할 땐 되게 무서우신 분으로 기억했다. 현장 분위기가 나태해지면 확 몰아쳐서 다잡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평소에는 수제버거, 도시락, 회 이런 걸 사다주시는 따뜻한 분인데 카메라 슛 들어가면 눈이 180도 바뀌어서 확 무서운 사람이 되신다. 마지막 법정씬도 정말 오래 찍었는데 그 많은 대사를 하루 반 만에 외우시더라. 우리는 다들 '와, 진짜 대단하다' 이러는데 선배님은 카메라 꺼지면 '현민아, 나 졸려~ 얘네 스케줄 왜 이렇게 짜니. 진짜 죽을 것 같아' 하셨다." (웃음)

뚜렷한 캐릭터와 법정물이라는 장르 덕분에 '마녀의 법정'은 시즌제에 어울린다는 반응이 나왔다. 윤현민은 "려원누나랑 저는 긍정적이지만 저희만 좋다고 가능한 일은 아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보고는 있다"고 답했다.

곧 열릴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기대하느냐는 말에는 "너무 쟁쟁한 사람이 많다. 저는 려원누나만 (상을) 탔으면 좋겠다. 저희는 주연배우뿐 아니라 다 초대해서 뜨겁게 박수쳐주자고 했다"며 "려원누나만 탔으면 좋겠다. 만약 못 받으면 제가 뺏어서라도 어떻게든 해 볼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노컷 인터뷰 ② 윤현민, 다시 '연기수업' 책 편 이유 "들뜨면 안되겠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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