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의 고등학생 양 모(17·여) 양은 저녁 학원 수업 전까지 이곳에서 대기하며 학원 숙제를 한다.
# "애가 학원에서 나올 때까지 여기서 책 보면서 기다려요. 이제 학원 끝나면 둘이 근처에서 간단하게 저녁 사먹고 집에 들어가려고요."
중학생 아들을 둔 안 모(43·여) 씨는 아들의 영어학원 수업이 끝날 때까지 소설책을 읽으면서 이곳에서 대기한다.
#“목동에서 왔어요. 아이가 대치동 주말반 수업 듣는데, 길게는 수업을 내리 5시간씩 들어요. 집에 들렀다 오면 이곳을 4번 왔다 갔다 하는 건데 그게 피곤해요. 그래서 여기 앉아서 핸드폰 게임도 하고 책도 보고… 앉아있으면 제가 수험생 된 기분이죠." -고등학교 2학년 딸 어머니 김 모(45) 씨-
대치4동 주민센터 4층의 ‘즐거운 도서관’ 열람실은 학원 강의가 끝나고 다음 수업때까지 뜨는 1~2시간까지 아껴가며 공부하기 바쁜 학생들과, 그들을 차로 실어 나르는 부모들에게 ‘단비’ 같은 공간이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접근성. 대치동 학원가 한복판인 은마아파트입구 사거리에서 걸으면 5분 남짓한 위치다. 한티역, 대치역과도 가깝다.
열람실 좌석 수는 총 72석. 많지 않은 좌석을 알뜰하게 운영하기 위해선 그에 맞는 이용수칙이 필요하다.
숫자가 적힌 종이 열람표를 ‘외출’, ‘퇴실’ 박스에 꽂아 관리한다. 일종의 ‘재래식 키오스크’인 셈이다. 외출 후 1시간 내 입실하지 않으면 자리는 자동으로 다음 사람에게 양보된다. 만석 시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적고 복도 벤치에 앉아 대기한다.
지난 오후 5시에 ‘즐거운 도서관’을 방문했다. 복도엔 4명의 학생들이 쪼르르 앉아있었다. 권 모(18·여)양은 “오늘은 학교가 일찍 끝나서 평소보다 안 기다렸어요. 자리 맡으면 집에 뛰어가 옷 갈아입고 얼른 밥 먹고 다시 올 거에요.”라고 말했다.
3분쯤 지났을까. 열람실을 관리하고 있는 사서 A씨가 가 대기자 명단을 들고 나와 이름을 불렀다. “○○○님, ○○○님 계신가요?”
대기 끝에 열람표를 받았다. 데스크에선 A씨가 수화기 너머로 "자리 있느냐?"라고 묻는 주민을 상대하고 있었다. 전화 예약은 불가능해 부모가 대신 명단에 아이 이름을 적고 기다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고요한 열람실에는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학원 유인물을 펼쳐놓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가장 많았다. 독서하는 아주머니, 자격증·공무원 수험서를 푸는 학생들도 보였다.
◇ 주말에는 지방 학생·부모들도 열람실 애용
주말이면 제주, 부산, 춘천 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학생과 부모들도 열람실을 찾는다. 전라도 광주에서 온 최 모(47·남)씨는 “아들이 주말 면접 특강을 여기서 듣는데 나도 따라왔다. 수업 중간 3시간이 비는데, 아이 혼자 거리를 배회하게 두는 게 싫어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곳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열람실 관계자는 “주말이면 열람실 옆 어린이실에서 다른 지역 엄마들이 한두 시간씩 앉았다 가시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한때 이곳은 토요일 새벽, 개실 시간이면 대기자 명단에 60명이 한꺼번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붐볐다. 아침 9시에 여는 도서관과 별개로 열람실은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장 운영된다.
그런데 4~5년 새 학원가 주변에 개인 독서실과 스터디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학원들이 건물 안에 자체적으로 자습실을 운영하는 등 자습 공간 수요가 많이 분산됐다.
그럼에도 요즘같이 수능 뒤 지방에서까지 면접이나 논술 강의 등을 듣기위해 수험생들이 몰릴 때면 늦어도 아침 9시 전에 자리가 다 동이 나는 등 대치동 한복한 구립도서관은 여전히 학원 수강생과 그 부모들의 ‘핫플레이스’로 상종가를 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