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아닌 사랑?…"아이는 '그루밍' 당했다"

[연예기획사 대표 청소녀 성폭력 사건 다시보기 ②]

(사진=자료사진)
무죄 선고로 끝난 연예기획사 대표의 청소녀 성폭력 사건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의문이 있다. 16세 중학생 피해자가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27세 차이 나는 기혼 남성에 의해 지속적으로 성폭력에 노출됐느냐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의 핵심에는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특성인 '그루밍'(Grooming)이 존재한다. '길들이다'는 의미를 가진 이 단어는 잠재적 학대자들이 아동들이 성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인하는 전략을 뜻한다.

'그루밍'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가해자는 가해자가 취약점을 가진 피해자를 고르고, 피해자의 신뢰를 얻기 시작한다. 가해자는 선물이나 추가적 애정 등을 주면서 피해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이후 특별한 관계형성을 통해 점점 피해자를 고립시킨다.

가해자는 아동의 순수한 호기심과 자극적 감각을 성적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이용하고, 아동은 스스로를 성적 존재로 받아들이고 가해자와의 관계를 성적이며 특별한 관계로 정의하게 된다. 성학대가 시작된 후에는 비밀 유지와 비난을 이용해 아동의 참여와 침묵을 유지시킨다.


청소년 성문화센터 탁틴내일의 이현숙 대표는 6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청소녀 성폭력 사건을 대표적인 '그루밍' 성폭력 사건으로 정의했다.

그는 "잠재적인 가해자는 아동이나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 학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학대가 쉽게 이뤄지도록 하며 후에 학대가 폭로되는 것을 막는다. 아동들은 이 방식으로 가해자에게 길들여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연예기획사 대표는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접근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고려해 병원비까지 대신 내준다고 하면 아이 입장에서는 신뢰가 더 커질 것"이라며 "이는 피해자의 취약점을 노려 접근한 전형적인 그루밍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연예기획사 대표와 피해자 관계의 단계를 순차적으로 따지면 이 '그루밍'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현숙 대표는 "가해자는 다리도 다 낫지 않은 피해자를 차 안에서 성폭행했다. 피해자는 아픈 어머니에게 피해 사실을 알릴 수도 없었고, 친구들에게 도움 받을 수도 없었다"면서 "성적 접촉이라는 비밀이 생기면서 점점 고립된 상황에서 임신까지 하게 됐다. 부모에게 임신 사실을 숨겨야 하는 두려움과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대표의 제안을 거절하거나 통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그루밍'의 통제 기술이 사용되고 있는 부분을 지적했다.

결국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무죄 판결을 확정하면서 피해자에게 아동 성범죄 과정의 초기 단계를 구성하는 '그루밍'이 이뤄진 것은 반영하지 않았다.

이현숙 대표는 "연예기획사 대표의 행동은 '그루밍'에 의한 성폭력이 분명함에도 판결에서는 이런 특성이 고려되지 않았다. 이 판결은 대법원 판례로 남아 피해 아동 청소년의 권리 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그루밍'에 의한 성폭력이 심각한 이유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스스로 학대당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때로는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그루밍'이 가진 심각성을 밝혔다.

사법부가 아동 청소년 성범죄 사건에서 '그루밍'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아동 청소년 성적 권리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아동 청소년의 취약함을 이용한 '그루밍'으로 성적 착취가 일어날 수 있다면 이 과정들이 외형적으로는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그루밍'에 의한 성적 접촉은 모두 폭력으로 보아야 한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런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성적 권리를 침해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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