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北京) 시의 한 빈곤층 임대아파트 화재에서 비롯된 베이징시의 전면적이고 강압적인 빈곤층 퇴출 작업에 정치적 발언을 삼가는 중국 지식인과 중산층들마저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중국 정부를 긴장시키고 있다.
▣ 베이징시 빈민가 화재 참사 발발하자, 대대적 빈민가 정리
문제의 발단은 지난달 18일 베이징 남부에 있는 다싱(大興)구 신젠(新建)촌에서 발생한 한 임대 아파트 화재에서부터 시작됐다.
다싱구는 베이징시 외곽 남쪽에 걸쳐 있는 지역으로 예전부터 농민공(農民工)으로 불리는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거주지가 모여 있는 대표적인 중국의 '달동네'다.
방세를 싸게 하기 위해 창문 하나 없는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게 불법으로 쌓아올린 임대 아파트, 이른바 '췬쭈팡'(群租房)들이 밀집해 있어 언제나 화재 위험에 노출된 동네였다.
이런 열악한 임대아파트에 발생한 화재로 불이 순식간에 번지면서 19명이 탈출조차 하지 못한 채 비참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하지만 화재는 살아남은 빈민들에게는 앞으로 닥칠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베이징시 당국이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된 다싱구 지역의 안전 강화를 빌미로 화재가 난 불법 증축 건물에 대한 철거와 입주민들의 퇴거작업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디돤런커우(低端人口) 정리 작업'이라고 이름 붙여진 철거작업은 중장비가 동원돼 베이징에서만 135개 지점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베이징시는 화재 참사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했지만 겨울 혹한기를 앞두고 베이징 각지에서 10만명에 달하는 빈민들이 순식간에 갈 곳 없는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이들은 시 정부가 불과 3~4일의 말미만 주고 철거에 들어가면서 당장 거주지를 구하지 못한 막막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갈 곳이 없어 이주를 거부하는 빈민들에게는 한겨울에 갑자기 전기나 물을 끊고 심지어 사람이 살고 있는 집까지 중장비를 동원해 부수기 시작하는 등 폭압적인 방식이 동원됐다.
▣ 참혹한 농민공 현실과 정부의 기만적 행태에 中 지식인·중산층 분노
도시 빈민들의 억울하고 비참한 상황이 알려지자 정부 시책에 비판을 삼가는 중국 지식인들과 중산층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정부 시책을 비판하며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시민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재난을 당한 도시 빈민들을 돕기 위한 구호활동이 시작됐지만 베이징시 정부와 공안 당국이 이들 마저 등록되지 않은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구호활동을 전면금지하자 비판은 분노로 바뀌고 있다.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의 지식인 100여 명이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 등에 강제철거를 중단하라는 공개 항의서한을 보내는 등 전국 곳곳에서 반발 여론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예상외의 중국 내 비판 여론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측근인 차이치(蔡奇) 베이징시 당서기는 27일 간부회의를 열고 철거민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이징시가 표면적인 유화책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강경 대응 방침을 정해 공분을 사고 있다고 홍콩 매체 명보(明報)가 5일 보도했다.
명보는 차이치(蔡奇) 베이징시 당 서기가 최근 간부회의에서 "기층 민중을 대하는 데는 진짜 총칼을 빼 들고 총검으로 피를 보듯 강경하게 대응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 발언을 소개했다.
비판 여론이 번지려 하자 지난 3일 구두 수선공을 만나노고를 치하하는 등 친서민 행보를 보인 것과 전혀 상반된 발언이어서 중국인들의 분노는 더욱 증폭되고 있다.
▣ 환경보호 위한 연료교체로 천연가스 확보 어려워지자 빈민층 연료 없이 겨울나기
중국의 빈민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또 하나의 사례는 최근 동절기를 맞아 부각되고 있는 이른바 '가스대란'이다.
중국 정부는 매년 난방철이면 중국 북부를 엄습하는 스모그를 차단하기 위해 올해부터 석탄 난방을 가스나 전기 난방으로 바꾸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허베이(河北) 성 지역 300만여 가구에 가스 난방시설 등을 설치하고, 석탄 난방기구의 판매나 사용을 금지했다.
문제는 급격한 연료 교체와 석탄 사용 금지가 심각한 액화천연가스(LNG) 부족 사태를 불러 오면서 허베이(河北) 성을 비롯해 산시(陝西), 허난(河南), 산둥(山東), 산시(山西), 네이멍구(內蒙古) 등 중국 북부 지역은 가정용 난방 LNG 공급이 수시로 중단되는 사태를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정부가 석탄 난방기구를 일방적으로 철거하기만 하고 가스나 전기 난방시설을 설치조차 않아 난방 시설 없이 겨울나기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석탄 난로를 철거한 허베이성 바오딩(保定)시 취양(曲陽)현의 여러 초등학교들이 가스 난방시설을 아직 설치하지 않아 학생들이 햇볕이 비치는 운동장에 책상을 갖다놓고 공부하는 모습까지 공개돼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중국 북부의 혹독한 추위에 운동장에서 수업을 받다 보니 이 지역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동상환자가 속출하면서 부모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가스대란' 사태 역시 급격한 천연가스 교체로 인한 환경개선의 효과는 비교적 소득 수준이 높은 계층이 누리는 반면 이에 따르는 부작용과 연료 부족의 고통은 고스란히 서민이나 빈민에게 가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중국인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 시진핑 2020년까지 샤오캉(小康) 사회 건설 약속했지만…급속도로 번지는 빈곤의 그늘
베이징시의 빈민층 정리 작업과 가스대란을 바라보는 중국 정부의 자세에는 위기감이 엿보이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0월 18일 19차 당대회 업무보고에서 2020년 샤오캉(小康: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를 건설하고, 2035년 사회주의 현대화 실현, 2050년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완성을 이루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제시했다.
하지만 최근 빚어진 빈민과 관련된 두 가지 사건은 2020년까지 불과 2년 정도 남은 현 시점에서 중국 내부의 빈부격차와 계층간 갈등이 오히려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3단계 발전론을 내놓은 시 주석 입장에서는 샤오캉 사회 건설이라는 첫 단계부터 삐걱대기 시작한 셈이다.
이른바 '신시대 시진핑 사상'의 핵심인 3단계 발전론이 흔들리게 된다는 것은 곧 시 주석이 확보한 막대한 권력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현재 중국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각종 모순들이 공산당 지배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시 주석이 중국이 직면한 모순들을 '디돤런커우 정리 작업' 방식으로 해결하려 든다면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