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쌔빠지게 일하는데…" 치안보다 '승진'에 목매는 경찰

(사진=자료사진)
일선 경찰 일부가 겨울잠에 빠졌다. 어김없이 찾아온 겨울 승진 시험 시즌 탓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대구의 한 경찰서에 근무 중인 경찰의 책상에 승진 수험서가 버젓이 펼쳐져 있었다.

일과 시간이지만 다가올 승진 시험 준비에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같은 날 전북의 한 경찰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근무 시간에 몰래 수험서를 들여다보는 경찰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일보다 승진 시험에 매진하는 '겨울잠 경찰'의 모습은 매년 1월 예정된 승진 시험 즈음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 개인 안녕에만 골몰…휴가 몰아쓰기로 업무 공백 우려

그렇지 않아도 지휘관 인사를 앞두고 복지부동하는 시기에 승진시험까지 겹치다 보니 일선 경찰 입장에서는 업무가 제대로 될 리 없다.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본분을 등한시하고 오로지 개인의 안녕에만 골몰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북의 한 경찰은 "경계할 경(警), 살필 찰(察). 항상 경계하고 살펴야 하는 게 경찰이다.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잡아내야 하는데 매일 자리에 앉아 (공부해서) 승진하는 게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다"고 꼬집었다.

공무원인 경찰이 업무 시간을 개인적으로 유용한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일부 경찰들은 이 같은 비판을 피하고자 아예 휴가를 쓰고 승진 시험에 매진하기도 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찰은 "5일 휴가를 쓰면 앞, 뒤 주말까지 포함해 최대 9일 쉴 수 있게 된다.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여럿 있는 것도 아니라 업무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은 동료들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업무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또 다른 경찰은 "누구는 쌔빠지게 일하는데 누구는 공부하고 그러면 화나지 않겠냐"며 "속에 천불이 나도 뭐라고 말은 못 한다. 같은 동료니까 참는 것 외에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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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직이 인기? 경찰 내부 갈등 우려도

일부 경찰들이 승진 시험에 목매는 상황은 또 다른 '이상 현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방범순찰대, 지원팀 등 이른바 '한직(閑職)'으로 여기는 부서로 인사 발령이 나기를 바라는 경찰관이 늘고 있는 추세다.

과거에는 한직으로 발령이 나면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인식이 팽배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자원해서 한직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업무 부담이 덜한 부서에 가서 승진 시험을 준비하겠다는 심산이다.

대구의 한 경찰은 "밤샘 근무가 없는 내근 부서를 선호하는 경찰들이 수두룩하다. 다음 해 승진을 하려는 사람들이 가장 선망하는 곳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경찰 부서끼리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외근이 많고 업무 강도가 높은 형사, 수사팀에서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승진 시험은 준비할 수조차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수십 년째 수사 업무를 담당한 한 경찰은 "그렇다고 형사나 수사 담당 경찰에게 특진 기회가 많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죽어라 고생하고 나면 업무 경험이 없는 시험 승진자가 상급자로 오는 경우가 많아 허탈하다"고 말했다.

한 강력계 형사는 "수년 전 수험서를 샀지만 가지고만 있다. 공부할 여유가 없다. 형사를 계속 하느라 진급도 못해서 가족 볼 낯도 안 선다"고 토로했다.

◇ 지침 외엔 막을 방법 없어…승진 시험 개혁 필요성 대두

경찰청도 수년 전부터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일선 경찰들에게 업무 시간에 승진 시험 준비를 못하게끔 지침을 내리고 있지만 효험을 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해마다 각 지방청으로 지침을 보내 업무 시간 중 승진 시험 준비를 하지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최대한 근무가 해이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승진 시험을 준비하는 경찰 입장에서는 시험이 임박해오면 벼랑 끝에 있는 심정이다보니 지침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매해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승진 시험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박현호 용인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승진 시험 준비로) 업무가 소홀해 경찰의 대국민 서비스에 차질이 발생한다면 심각한 문제"라며 "2% 부족한 현재의 승진 제도를 다양한 평가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청은 현재까지는 승진 시험 제도를 바꿀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과거에 수사경과와 일반경과를 분리해 시험을 보는 제도가 있었지만 성적차이가 많이 나서 승진 인원이 미달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수사경과가 (업무가 많아) 승진 시험에 불리한 건 맞지만 그 대신 특진 제도가 있다"고 답했다.

박 교수는 "일정 시험점수를 넘어선 이들은 직무로 최종 승부를 가리도록 하는 등 보다 입체적인 평가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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