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겸 사장 퇴진과 방송 정상화를 요구했던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김연국, 이하 MBC본부)의 파업이 지난달 15일 잠정 중단됐다. 이틀 전 김 사장이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이완기, 이하 방문진)에서 해임됐기 때문이다.
73일이 걸렸다. 가장 먼저 예능이 정상방송되기 시작했고 각 부문별로 조직을 추스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방송에서 보기 힘들었던 아나운서들의 '복귀' 소식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흐름 중 하나였다.
박 아나운서는 신동호 아나운서국장이 맡았던 MBC '시사토크 이슈를 말한다'의 새 진행자로 돌아와 3일 오전 7시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첫 녹화를 마친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박 아나운서를 만나 복귀 소감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오늘 녹화 어땠나.
라디오는 변창립 선배님(* 11월 20일부터 '시선집중'의 새 진행자가 됐다)이 먼저 하셨는데 TV로는 첫 복귀라서 부담이 있었다. 이전 진행자가 신동호 아나운서라는 부담도 있고. 막상 하니까, 또 방송 잘하시는 김미화 씨여서 되게 편안했다.
▶ '이슈를 말한다'는 오는 3일부터 시즌2로 재정비해 방송을 시작한다. 어떤 부분이 바뀌었나.
그동안은 한 이슈에 대해 찬반 혹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앉혀 했던 걸로 안다. 이제는 '사람'에 집중해 꼭 어떤 이슈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블랙리스트'에 있었던 분들이 나올 예정이다. (기자 : 다음주도 그런가?) 조정래 선생님이 나오신다.
(블랙리스트 명단만으로 방송을) 1년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웃음) 제작진 얘기로는 원래 없애려고 했는데 아쉬운 마음도 있고 프로그램이 오명 쓰고 끝나는 것 같다며, 새롭게 마무리를 잘 해 보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부담됐지만 의도가 좋아서 함께하게 됐다. 저도 블랙리스트니까 (웃음) 오랜만에 MBC에 얼굴 비추는 사람들을 만나보자는 취지였다.
▶ 그럼 앞으로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던 분들이 나오나.
아직 뭐가 정해진 건 없지만 당분간은 그렇게 할 것 같다. (다른 분들도) 섭외 중인데 나와줄지는 모르겠다. 사실 '블랙리스트'로 언급되며 (고정된 이미지로) 규정되기를 원하는 연예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예전 이야기를 들춰내는 걸 좋아하는 분도 그리 많지 않을 거고.
▶ 오늘 첫 녹화에서 김미화 씨는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셨나.
전반적인 얘기를 다 했다. 예전 'KBS 블랙리스트 사태'부터 MBC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하차하고 나서 어떤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오늘은 밴드를 하시는 남편분이 오셔서 직접 연주도 해 주셨다. 분위기가 재즈카페 같았다. 무척 좋았다.
▶ 방송사에서 벌어진 블랙리스트 사태를 그 방송사에서 한다는 것 자체가 '반성'의 의미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제가 클로징에도 이런 얘기를 했다. "'MBC가 예전의 다시 만나면 좋은 친구로 돌아가기 위해서 시청자들이 사랑해주는 방송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의 한 축으로 '시사토크 이슈를 말한다'가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자아비판, 반성이기도 하다.
오늘 동료들이 케익 갖고 (녹화장에) 왔었다. (웃음)
▶오랜만에 방송에 나온다는 거에 대해 걱정은 없었나.
전 그냥 어떻게 되겠지, 했다. (웃음) 먹고 사는 건데 이거 못하면 그만둬야죠. (웃음)
▶ 그간 부당전보됐던 아나운서들이 파업 중단 이후 아나운서국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공식적으로는 라디오국 소속이다.
(아나운서국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저는 그간 라디오편성사업부에서 라디오 운행 등 편성 업무를 해 왔다.
▶ 파업 중단 후 아나운서국 분위기는 어떤가.
특히 후배들이 의욕이 되게 많아진 것 같다. 과거는 일방통행 식이라고 할까, 위에서 시키는 일 무조건 해야 되고 비합리적인 일도 많았는데 지금은 협의를 통해서 하고 있으니까. 그 친구들이 파업했을 때 그런 얘기했다. 아나운서 조직이 참 좋다고 해 들어왔는데 자기들은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고. 앞으로는 좋은 모습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더라.
▶ 이번 파업은 몇 번째인가.
잘 모르겠다. 정확하진 않지만 파업한 거 다 합하면 1년쯤은 되지 않을까. (웃음)
▶ 올해 파업도 70일을 넘긴 긴 파업이었다.
이번 파업은 그래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다른 때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 조금 더 사람들이 힘을 발휘했던 것 같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고. 전면적으로 다 (파업을) 했던 게 그나마 70일 정도에서 끝낸 요인이라고 본다.
(김 사장이 해임되던 날) 저녁에 파티를 했다. 그때 김정근, 최현정, 오상진 등 그만둔 친구들이 왔다. 좋으면서 씁쓸했다. 함께 기뻐해야 될 친구들인데 MBC에 같이 있지 못하니까.
▶ 신임 사장이 오고 경영진이 꾸려져야 조직 안정화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 사장 후보 정책 설명회가 있었는데.
딱 그 시간에 녹화했다. (웃음) 우리 상황에 대해 공유하고 (추구하는) 방향이 대부분 비슷해서 어떤 분이 되어도 괜찮다고 본다.
▶ 신임 사장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모두들 똑같을 것 같다. 일단 내부정리, 대외적으로는 다시 MBC 위상 세우기, 이것 아닐까. 내부정리가 정말 어려울 것 같다. 워낙 앞선 경영진이 해 놓은 게 많아서 그걸 다 수습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몇 년 걸릴 거라고 본다. 새 사장이 온다고 내년부터 적폐 싹 없어지고 완벽하게 새 시스템이 갖춰질 거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긴 시간을 들여야 부작용도 작을 수 있다.
▶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저희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있고 한편에서는 '너희들 다 월급 받으면서 조용히 산 것 아니냐. 왜 피해자 코스프레하느냐'라고 한다. 그런 말에도 딱히 변명할 수 없는 입장이니까 그 부분을 해소시키고 등 돌린 시청자들 끌어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당연히 해야 할 우리의 숙제다. '저는 피해자니 이렇게 봐 달라'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부터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보고 다시 진실된 마음으로 호소하면 시청자들이 받아주지 않을까. 예전의 MBC를 바라보던 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