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불필요한 신체정보나 학력 등을 가려 채용하는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 방침을 공공기관 채용에 적용하는 한편, 민간기업에도 권고하고 나선 상황이지만 중소기업들의 변화는 더디기만하다.
◇ "대표님이 책 보고 살피신다"…사주(四柱) 요구
한 에너지 관련 중소기업은 최근 인사팀 경력직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사주를 보려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주(四柱)란 사람이 태어난 음력 생년월일과 시간을 계산해 길흉화복을 점치는 동양 점성술의 일종이다.
해당 기업은 지난 11월 초 민간 채용 중계 업체를 통해 경력직에 응시한 지원자들에게 이메일로 '음력 생년월일과 생시(生時)'를 요구했다. "회사의 대표님이 책을 가지고 음력생년월일을 살핀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 10월에는 국내 주요 커피브랜드 중 하나인 이디야 커피(주)가 지원서에 키와 체중 등 민감한 개인의 신체 정보를 물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올 하반기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B 씨는 "중소기업에 지원서를 놓다 보면 이런 경우가 빈번해 대기업과의 차이를 느꼈다"며 "신체 사이즈부터 부모님의 직업, 학력을 묻는 등 사례가 다양할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6월부터 한달여 동안 518개 기업들을 대상으로 입사지원서를 분석한 '기업채용관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키나 몸무게, 혈액형 등 불필요한 정보를 묻는 기업이 사원수 1000명미만의 중소기업에서 특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원수 별로 보면 사원수 300인 미만의 기업들 362 곳 중 약 10%, 300명 이상 1000명 미만 기업 108곳 중 15%정도가 본적, 키와 몸무게, 혈핵형 등 불필요한 정보를 묻고 있었다. 반면 사원수 1000명이상의 중견기업에선 48곳 중 6% 정도만 이같은 정보를 물어, 중소기업의 절반에 그쳤다.
◇ "불합리한 관행 개선 여력 부족"…정부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에서 이런 행태가 계속되는 이유에 대해 전문인력 등 여력부족을 지적한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채용방식을 연구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하다보니, 경영자나 실무자의 주관적인 방식이 관습으로 지속되고 있단 분석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주를 보고, 신체조건을 묻는 행태는 명백한 차별행위"라며 "중소기업의 경우 경영자의 자의적인 판단이 강하게 작용해 불합리한 행태가 지속된다"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신 교수는 새로 생기는 중소기업부의 역할 강화 등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중소기업부의 역할이 중소기업들에 대한 단순한 재정적 지원이 아닌, 채용과정을 포함한 효율적인 경영체계를 연구 지원해 중소기업들이 적용할 수 있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강수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또한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로 객관적 연구의 부족을 꼽았다. 강 교수는 "블라인드 채용의 좋은 사례들을 연구해 중소기업들에게 제공된다면 자연히 기업들 사이에서 확산될 것"이라며 "공공부문에서 좋은 사례를 보여 주고 연구해 제공하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고용부는 지난 7월 ‘평등한 기회·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밝히면서 공공부문 뿐 아니라 민간부문에도 선례를 연구해 대한상의회와 공동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기로 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블라인드 채용에 집중한 민간부문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우수 기업 사례 공모전 등 연구 지원 방안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