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가 지난 24일 친구 부부 12쌍, 총 24명과 함께 단체관광을 왔을 때만 해도 아름답고 따뜻한 발리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여행이 끝나는 28일 오전 공항 폐쇄 소식을 접하고 현지 공항에 설치된 외교부 안내데스크에서 안내를 받아 29일 무려 15시간동안이나 버스를 타고 300km정도 떨어진 수라바야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인근에서 약 하룻동안 항공편을 기다리며 불안에 떨었던 김 씨는 "많이 답답했죠. 제가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인데, 회사에도 연락만 해놓고 아무런 방법이 없으니까"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와 함께 발리 여행을 온 고한욱(61)씨 역시 "예상치 않게 육로와 해상을 통해 (수라바야 공항에) 와서 구경 아닌 구경도 잘 했고요, '고된 힐링'을 했습니다"라며 웃어보였다.
한때 발리 화산 폭발 전망도 있었던지라 불안감에 지친 표정은 역력했지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데 안도했다.
부모님과 여행을 왔던 최정환(10)군은 "너무 긴장이 돼서 막 엄마아빠한테 '화산 터지면 어떻게 해요?'라고 묻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화산이 터지기 전에 비행기가 와서 좋아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발리로 신혼여행을 왔다가 곤란한 상황에 빠진 이민주(24,여)씨는 "한국음식을 빨리 먹고 싶다"며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 씨는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발리 화산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괜찮겠지, 너무 드문 일이니까.."라고 생각하며 여행을 강행했다.
6박 8일동안의 '꿈같은' 신혼여행이 화산분화로 인한 공항폐쇄로 10박 11일의 긴 신혼여행이 됐다. 한국의 부모님으로부터 "화산이 폭발한다더라"는 문자가 쏟아졌고 '괜찮다' '잘 있다'고 설명하느라 오랜 시간을 써야 했다.
남은 연차를 이용해 여행을 떠나온 백원빈(35)씨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했다.
백 씨는 "직장은 수요일까지 휴가고 목요일부터 출근이었는데 이틀을 더 연차를 쓰겠다고 회사에 전화했다"고 말했다.
공항에서 일하는 함께 온 친구는 연차를 더 낼 수 없어 무리하게 스케쥴을 바꿨고, 돌아가면 초과 근무가 기다리고 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승객들은 자신이 생각하던 정부의 모습과 달랐다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백 씨는 "비행기가 결항되거나, 어렵게 표를 구했는데 (다른 공항에) 갈 교통 수단이 없어 못가는 상황이 됐었는데 대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굉장히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시고 어떻게 할지 말해주셔서 마음이 정말 놓였다"고 말했다.
배낭여행을 왔던 박찬우 씨도 "다행히 한국정부 도움 받아서 수라바야 공항까지 이동할 수 있게 됐고 한국행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으니 '아,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구나, 정부로부터 보호받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전세기는 오후 8시 50분쯤 도착했다. 승객들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 앞 벤치에 앉아 대기하는 모습이었다.
서울에서 전세기를 타고 온 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 관계자가 승객들 사이를 돌며 "고생많으셨습니다. 이제 전세기가 왔으니 조금 이따가 출발하시면 됩니다"라며 인사하자, 승객들도 "너무 감사합니다"라며 화답했다.
비행기에 올라탄 승객들은 한숨을 내쉬며 제공된 기내식을 먹고 밀린 잠을 청했다. 아이를 데리고 있던 승객들은 피곤에 보채는 아이들을 안고 복도를 서성였다.
현재 발리 현지에 남아있는 우리 국민들은 약 100~300명 정도로 알려졌지만 일단 발리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이 운행재개돼 차질없이 돌아올 수 있을 것으로 외교부 관계자는 전망했다.
또 발리 주요 공항의 안내데스크와 기파견된 지원팀 등이 공조해 남아있는 여행객들이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즐거움을 위해 떠난 여행길에서 뜻밖의 사고를 만난 266명의 승객들의 인도네시아 여행은 '탈출기'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