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맞고 엎어져도 동료들은 그러려니…"
-모회사 직원에게 맞고도 병원진단서도 제출 못해
-"세대 이은 '군대문화' 속 비정규직 양산이 폭력 잉태"
-맞고도 숨죽인 가장들…"가족 생계 걱정에 더욱 침묵"
■ 생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FM 98.1)
■ SNS 참여 : 페이스북[www.facebook.com/981news]
◇ 김현정> 김현정의 뉴스쇼 금요일의 코너, 뉴스 속을 훅 파고듭니다. 훅뉴스 시간, 김정훈 기자 나와 있습니다. 오늘 훅뉴스, 지난 월요일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을 보도해줬는데, 그 사건의 후속편쯤 된다고요?
◆ 김정훈> 선배들한테 가혹행위를 당하는 남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죠.
◇ 김현정> 유명 오토바이 업체 할리데이비슨의 한국 지점에서 후배 정비사가 선배한테 가혹행위를 당한다는 그런 내용이었잖아요.
◆ 김정훈> 선배 정비사들이 작업복에 불을 지르는가 하면 손목을 자르겠다는 위협까지 했는데 그 증언을 다시 들어보실까요?
"체모가 타고 심할 경우엔 불이 붙기도 하는데… 그게 그냥 팔이나 이런 데에 뿌려서 하는 게 아니라 성기나 엉덩이…손목을 자르려고 한번 했거든요. 브레이크 디스크 혹시 아세요? 거기다 손목을 넣으라고 해서 신제품이라고 하면서… 집혀서 제가 피가 났었거든요."
◇ 김현정> 굉장히 내용이 충격적이었어요. 파장도 컸고요.
◆ 김정훈> 그 소식을 전해드리면서 또다른 피해 사례 제보도 부탁드렸거든요.
◇ 김현정> 제보가 많이 들어왔나요?
◆ 김정훈> 네. 저희한테 들어온 제보들, 그리고 추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맞고도 숨죽인 직장 남성들'의 사연을 오늘 '훅!뉴스' 시간에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김현정> 사내 갑질, 사내 가혹행위 중에서 여성들 피해 사례는 그동안 꽤 보도가 됐었는데 가려졌던 남성 직장인들의 피해 사례를 오늘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것이군요?
◆ 김정훈> 취재해보니 이러한 폭력 문화는 심각해 보였습니다. 그러한 문화가 있는 대표적인 사업장 중 한 곳이 아마 방송사일 텐데요, 먼저 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 한분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시죠.
[녹취: 방송사 내 폭행 피해자]
"촬영하고 쉬는 시간에 카메라를 닦거나 이럴 때 자기 툭 건드렸다고 주먹으로 때리고, 얼굴을... 일 못해서 욕 먹고 그런 것보다도 제가 싫었던 건지, 밥 먹을 때 먼산 쳐다보면서 밥 먹는다고 욕하고. 그런 걸로 욕하고 부모 욕도 하고..."
◇ 김현정> 아니, 밥 먹을 때 먼산 쳐다본다는게 폭행의 이유가 됩니까? 어깨나 등을 툭 치는 것도 아니고,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요? 부모님 욕도 하고?
◆ 김정훈> 한 지상파 TV 방송국에서 촬영 분야 스텝으로 일했던 비정규직 직원입니다. 견디다 못해 회사를 그만뒀고요, 현재는 방송에 대한 꿈을 접었다고 하네요. 이 피해자의 퇴사 이후에도 그 사업장 안에서는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는데, 현직 비정규직 직원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시죠.
[녹취: 방송사 내 또다른 폭행 피해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있죠. 싸대기를 때린다든가. 일하다 보면 서로 피곤하고 밤샘을 많이 하고, 짜증나니까 때린다거나. 일하는 게 마음에 안들 수도 있고 실수도 할 수 있는데, 말을 한다기보다 툭툭 치는 거죠. 상식밖의 언행들도 부지기수고, 물건을 저한테 던진다거나 그런 적도 있고."
◇ 김현정> 방송사에 워낙 비정규직 직원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갑을 관계 속에서 폭행이 벌어진다는 얘기인가요?
◆ 김정훈> 그런데 폭행이 신분상의 갑을 관계에서만 이뤄지는 건 아닌 듯합니다. 대한적십자사에서 있었던 일인데, 피해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시죠.
[녹취: 적십자사 내 폭행 피해자]
"회의 끝나고 다른 사람들 다 있는 데서 기지개를 펴려 하는데 그 상태에서 가슴을 손바닥으로 확 치더라고요. 아무 이유 없이. 그래서 제가 숨이 막혀서 엎어졌거든요, 앞으로. 그랬더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이 새끼 비실비실하냐, 약이나 줘라... 동료들도 보고 그냥 그러려니 해요. 문화가 있어요. 그쪽 패거리가 거의 군대문화 수준으로 해 가지고..."
◆ 김정훈> 이분의 경우 정규직원이었는데, 선배한테 그야말로 아무 이유 없이 맞았다는 것이죠? 결국 고소를 했고요 가해자는 지난해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 김현정> 폭력적인 문화가 존재해왔다는 거네요?
◆ 김정훈> 꼭 군대가 아니어도 선임자가 후임자를 엄하게 다루는 그런 사업장들이 있는 것이죠. 그러한 유형의 대표적 사례는 아무래도 경찰이나 검찰일 텐데, 역시나 사건이 없을 리 없습니다. 지난해 5월엔 경기도 광주경찰서의 김모 경사가 '전 직속상관으로부터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요, 비슷한 시기 자살한 서울남부지검 김모 검사 역시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의혹이 일었습니다. 당시, 숨진 검사 누나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동생은, 부장이 남부지검에 온 지 3~4일만에 쌍욕을 들었다고 해요. 그 후로 쌍욕은 물론이고 결재서류를 찢어서 던진다든지 밤늦게 술자리에 불러내서 모욕감을 준다든지 하는 등의 괴롭힘이 4개월 동안 계속됐다고 들었습니다."
◇ 김현정> 직장 내 폭력이라는 게, 억압적인 문화가 어느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 김정훈> 그렇죠. 실제로 취엄포털 업체 인크루트가 지난해 성인 889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응답자의 71%가 학교나 직장에 군대식 문화가 남아있다고 답했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직장 남성들의 폭력 문제는 왜 그동안 크게 주목을 못 받았을까요?
◆ 김정훈> 피해를 겪고도 쉬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저희도 취재하면서 애를 먹었던 것이, 피해자들 상당수는 자신의 사례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걸 꺼려하더라고요. 남자라는 이유로 웬만한 폭력은 견뎌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고, 문제를 제기해서 오히려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김현정>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상급자이니까...
◆ 김정훈> 네. 분명한 갑을 관계라면 더 하겠죠. 올해 초에는 한전 직원이 한전 자회사 직원을 폭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있던 일로 기분이 상한 한전 직원에게 자회사 직원이 찾아갔는데, 맞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사안에 대해 회사가 조사에 나서니까 오히려 피해자인 직원이 병원진료 확인서 제출마저 거부했습니다. 이 사안을 국회 차원에서 조사했던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의 말입니다.
[녹취: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
"피해 당한 사람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대응 방법이 미온적이었죠. 보복이 두려워서 얘기를 못하고. 을의 입장에서는 이게 알려지게 되면 모회사 쪽에서, 갑질을 할 수 있는 회사 쪽으로부터 피해를 당할까봐 불안한 게 있죠. 또 모회사가 자회사에 대한 불이익을 끼칠까봐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 김현정> 내가 당했는데도 말 못하고 쉬쉬하는 이런 상황들...
◆ 김정훈> 결국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니, 사안이 제대로 조사가 되겠습니까? 결국 가해자는 견책이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받는 데 그쳤습니다.
◇ 김현정> 직장 내 폭력 문화, 사실 오래된 문화 아닙니까? 그동안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져왔다고 하는데도 왜 개선이 안될까요?
◆ 김정훈> 우선, 과거 폭력이 용인됐던 군대 문화가 직장 내에 스며든 것을 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석진 노무사의 말입니다.
[녹취: 이석진 노무사]
"남자들은 군대를 갔다 오잖아요. 상사한테 나도 맞았으니까, 나도 욕을 먹었으니까 당연히 내 후배한테도... 아직 우리나라가 군대문화, 하라면 해라 이런 식의 문화가 아니면(안된다는 생각 같습니다). 기업도 조직인데 기업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상사의 지시에 따르든지 그런 게 필요하다는..."
◆ 김정훈> 이런 군대문화에 기업이 얼마나 친숙하냐면요, 대한항공 삼성물산 포스코 코레일 등 유수의 기업들까지 현재도 매년 병영체험이라는 걸 할 정도이거든요. 참여자들의 불만이 있어도 기업들은 애사심을 높이는 데 이만한 프로그램이 없다고 보는 것 같은데, 한 기업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시죠.
"군대식 문화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화합을 이해하게 하려고... 애사심, 리더십을 높이려는 것이죠."
◆ 김정훈> 군대식 문화를 적용하려는 게 아니라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신입사원이나 임직원들은 며칠간 병영 내에서 단체생활을 하며 상명하복 질서를 익히게 되잖아요. 군대 문화가 조직 운용에 도움이 된다는 기업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 김현정> 그런 군대 문화가 기업 속으로 젖어들다 보면 자칫 상사의, 선배의 폭력이 용인되는 분위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그런 우려군요.
◆ 김정훈> 네. 그렇게 왜곡된 군대 문화가 직장 내 폭력을 만들어 내는 한 원인이라면, 최근 들어 새로운 원인도 부각되고 있는 사실을 취재 과정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고용구조의 다변화입니다.
◇ 김현정> 정규직 외에 비정규직, 파견, 프리랜서, 하청, 용역... 고용하는 형태가 굉장히 다양해졌잖아요.
◆ 김정훈> 네. 그렇다 보니 과거엔 한솥밥 먹던 선후배 관계가, 이제는 명령하고 이를 거부할 수 없는 주종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다시 말해, 정규직 상급자가 비정규직 하급자를 마음껏 부리게 되면서 폭력도 생겨났다는 것이죠. 앞서 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방송사 비정규 직원의 말을 다시 들어보시죠.
[녹취: 방송사 폭행 피해자]
"예전에는 그런 일이 없다고 들었어요. 노동법 개정되면서 비정규직 늘어나면서 그렇게 됐죠. 사실 비정규직이 그렇게 여러개로 분화돼서 고용하는 곳은 방송사밖에 없고..."
◇ 김현정> 정리가 되네요. 예전부터 내려오는 군대문화가 직장 내 깔려있는 상태에서 요즘들어 고용이 다변화되니까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내 폭력들이 벌어진다는 얘기네요.
◆ 김정훈> 그렇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특히 직장 남성의 경우 그들 나름대로 폭력의 피해를 덮어놓으려 하는 경향마저 있어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의 김민아 노무사입니다.
[녹취: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김민아 노무사]
"드러내놓고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도 있고요. 특히 한 가정의 가장이라고 하면 이 직장에서 쫓겨나면 그 다음 생계는 어찌할 것인가라는 고민 때문에 이야기할 수 없고, 또 남성분들이 맞거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얘기하고 이런 문화가 아니잖아요."
◇ 김현정> 들으면서, '직장 내 폭력은 여성들이 피해자이지 남성이 무슨 피해자일까'라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잘못됐나 깨닫게 됐어요. 직장내 남성도 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구나, 다만 그게 숨겨져 있었던 것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 김정훈> 더이상 '그럴 수 있지'라는 식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닌 상황입니다.
◇ 김현정> 김 기자. 그나저나 이 주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게, 할리데이비슨의 피해자 아닙니까. 이모씨는 어떻게 됐습니까? 우리 방송이 나간 이후 어떤 변화가 있나요?
◆ 김정훈> 여전히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이고요, 다만 뉴스가 나간 뒤 전해진 응원으로 큰 힘을 얻었다고 하네요. 가해자들은 법적 처벌을 기다리는 중이고요. 회사 내부엔 대책회의도 있었다고 하는데,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별다른 조치가 아직까지는 취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 김현정> 직장내 폭력, 특히 남성 직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서 다뤄봤습니다. 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제보를 바탕으로 취재가 된 것이거든요. 이후에도 여러분의 제보 계속 받겠습니다. 후속 내용 있으면 김정훈 기자, 또 취재해주십시오. 훅뉴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