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그 아이가 제 넥타이, 우리 아이 선물과 함께 긴 편지를 보내 왔더군요. '아저씨, 제가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벌고 있으니 이제는 보내지 마세요'라는 내용이었죠.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을 참 많이 했죠. '도움을 주기보다는 내가 위로 받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강원석은 최근 CBS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계속 한다면 그 아이에게 큰 부담을 주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사연인즉슨 이랬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민간의료봉사단체 '열린의사회'를 매달 후원하면서, 관련 봉사활동을 위해 몽골에도 두 차례 다녀오는 등 동행을 이어오고 있다.
"봉사라는 것이 자기 돈을 쓰면서도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는 시인은 열린의사회를 통해 한 소녀가장을 만나게 됐다. 병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홀어머니와 동생을 보살펴 온 학생이었다.
"그 아이가 중학교 3학년 때인가 알게 됐는데, 제 딸도 함께한 자리에서 처음 만나 식사를 했어요. 그 아이보다 제 딸이 네 살 어린데,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좋은 인연을 이어가게끔 해 주고 싶었죠. 그 이후로 그 학생에게 매월 20만 원씩을 후원했습니다."
학생은 대학에 가서 심리치료를 공부하고 싶어 했다. "불우하게 자란 만큼, 자기보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고 시인은 전했다.
"실제로도 관련 학과에 들어갔어요. 후원한지 3년쯤 지난 때였죠. 대학 졸업할 때까지 돕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그 아이가 긴 편지를 보내 왔어요. '저 이제 아르바이트도 하고 학교 생활도 잘하고 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아저씨 넥타이를 샀다'고요…."
앞에서 설명했듯이 강원석의 후원은 그렇게 멈췄다. 그리고 '꼭 참석하겠다'고 마음 먹고 있던 그 학생의 대학 졸업식이 다가왔다.
"안타깝게도 제가 졸업식에 갈 수 없는 상황이 생겼어요.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면 출근 때 입을 정장 한 벌 사주려고 생각했기에 돈을 보냈습니다. '부담 갖지 말고, 여성 정장이 얼마인지 잘 모르니 적으면 보태고 많으면 다른 데 쓰라'고 했죠. 지금 그 아이는 한 아동복지단체에 다니면서 굉장히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있어요. 자주 연락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우리네 삶은 언제나 바람에 직면해 있다"
'바람이라는 시어는 어떠한 의미인가'라는 물음을 시인에게 건네자, "유난히 좋아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생도 그렇고 모든 것이 바람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불어가는지 모르는 것이 인생과도 닮았잖아요. 바람은 어떤 때는 땀을 식혀주는 좋은 바람도 되지만, 어떤 때는 추위와 아픔을 줍니다. 우리 삶이라는 것이 언제나 바람에 직면해 있는 셈이죠. 아프고 힘든 바람이 불더라도 굳건하게 서 있으면 자신과 주변을 지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공직자로 산 그는, 은퇴 이후 시인의 삶을 택하면서 전국에 있는 공공기관·기업 등 단체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시집이 팔리는 것 외에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오더군요. 시를 통해 잃어버린 꿈도 찾고 직장생활의 활력도 찾고 가정의 행복도 추구하는, 누구나 들었을 때 마음이 훈훈해지는 강의를 하려 애쓰고 있죠. 어떤 때는 몇 명이 모인 단체를 상대로 무료 강의도 합니다. 돈 벌 생각보다는, 시가 어렵지 않고 우리네 삶에 행복이 된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니까요."
이러한 시인의 활동을 SNS 등으로 접해 온 열린의사회 측은 그에게 홍보대사를 제안했고, 강원석 역시 보람 있는 일이라고 여겨 받아들였다.
"사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봉사하기는 더 어렵다는 생각을 해요. 결국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분들이 봉사를 하잖아요. 열린의사회에는 젊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홍보대사 위촉식이 있던 날,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헌시 '저녁 하늘에 바람은 그림을 그리고'를 낭독했죠."
'산머리 위로 서풍을 둘러업고/ 석양을 거슬러 날개를 펴는 구름의 비상// 해가 지는 하늘에/ 바람이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린다// 문득 하던 일 내려놓고/ 그림 앞에 서있는 푸른 나// 언제 하늘이 저처럼 고왔었나/ 한참을 넋 놓아 보고 있으면// 쇠기러기 떼 지어 날아올라/ 비질하여 노을을 쓸어 담고// 들녘에 눕는 산 그림자/ 나를 밀어 저녁으로 데려가네// 그림 같은 하루는 저물어도 빛났어라/ 내일은 또 어떤 날을 보게 될까// 오늘처럼 다시 그림이 된다면/ 청춘은 가난해도 행복하여라'
시인은 "'오늘처럼 다시 그림이 된다면/ 청춘은 가난해도 행복하여라'라는 구절 등을 통해, 그들의 작은 행위가 우리 사회에 아주 큰 기쁨을 주고 있다는 의미를 시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 "나는 오늘도 밤을 새워 시를 쓰겠다"
"작가들이 글쓰기만으로는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예전처럼 독서가 권장되는 분위기도 아니에요. 손쉽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다른 매체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으니까요. 많이 읽히지 않으니 책을 팔아 생활하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제 경우 공직자 출신이어서 적게나마 연금이 나오니, '적게 벌고 적게 쓴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며 "열심히 문학을 하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본다. 이제 2년 됐는데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싶다"고 역설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시인은, 지난 30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서 사인회를 열었다. 직접 독자들을 만나면서 '내가 이 시를 어떻게 쓰게 됐는지'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자는 생각에서였다.
"강연과 사인회 등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시가 어렵지 않고 위로가 되고 생활에 활력이 된다'는 독자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시가 어렵지 않고 우리 생활에 유익한 문학이라는 것을 꾸준히 알리고 싶어요. 독자들이 시인과도 가깝게 만나면서 문학을 더욱 친근하게 여기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강원석의 시 가운데 '아가와 별'은 노래가 된 작품이다. 그의 표현을 오롯이 빌리면 "시로 태어나 노래가 된" 경우다.
'유리 창밖 하늘가에/ 꼬마별이 모여들면// 엄마의 자장가 소리는/ 잔잔히 방안을 흐르고// 옹알거리며 누운/ 아가의 눈망울에도/ 별이 반짝입니다// 별빛이 눈부셨나/ 아가는 잠들지 못하고// 엄마는 졸리운 듯/ 노래 속에 하품이 섞이고// 토닥거리는 손짓에/ 살며시 사랑이 녹아 들면/ 아가는 별빛 타고/ 스르르 꿈속으로 떠납니다'
그는 "새 시집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사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제 시가 너무 좋아서 곡을 붙이고 싶은데 가능하겠냐는 내용이었다"며 "전화를 건 사람은 이화여대 작곡과 학생이었다. 그렇게 제 시가 가곡으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강원석은 "저의 시는 생활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보편적 시어들, 보편적이고 편안하고 어렵지 않은 시어들"이라며 "하지만 감동을 주는 문장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저 시인은 쉽고 편안하면서도 아름답고 품격 있는 시를 쓴다'는 평을 얻고 싶다"며 "저로 인해 시가 사람들에게 한층 더 다가갈 수 있다면 나는 오늘도 밤을 새워 시를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