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억의 밤'에서 거진 1인 3역을 소화해낸 김무열은 하나도 피로하지 않아 보였다. 칭찬보다 비판을 좋아한다는 그는, 먼저 기자들에게 아쉬운 부분을 물어볼 정도로 소통에 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현장에서 배우들과 장항준 감독이 어떻게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었는지 그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체감했다.
"의견을 냈는데 너무 좋아서 반영이 됐다가 현장에 가서 해보니까 생각보다 작위적이라 뺀 것도 있어요. 진짜 의견이 엄청 많았어요. 저는 그렇게 여러 가지 의견을 주고 받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김무열은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장항준 감독과 현장에서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때때로 장항준 감독이 벌이는 인기투표가 치밀한 심리극이 펼쳐지는 현장에서 활력소가 됐다는 후문이다.
"감독님이 저한테 막 야누스적인 매력이 있다고 하는데 얼굴로 칭찬받은 게 이번이 처음이라 좀 얼떨떨해요. 현장에서 감독님은 전환이 진짜 빠른 사람이에요. 진지하게 일하다가도 쉴 때 막 혼자 인기투표 하시거든요. 누구한테 (강)하늘이랑 저랑 붙여놓고 세상에 둘 밖에 안 남으면 누굴 선택할 거냐, 뭐 이런 거죠. 그걸 진짜 다 통계를 내서 우리 각자 본인들한테 알려주세요. 촬영 다 끝나면 바로 또 식사 메뉴가지고 투표하고. 진짜 재밌는 분이에요."
"막 눈물이 나고 그러는데 일단 '컷'을 안하면 연기를 계속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뒤돌아 병실을 나왔는데 감정 조절이 안되니까 계속 눈물이 나고 슬픈 거예요. 그렇게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있는데 그 밖에까지는 통제가 안되니까 문을 딱 열고 나가니 '영화 배우시죠? 저 싸인 하나만 해주세요' 이러시더라고요. 눈물 닦고 콧물 훌쩍대면서 싸인 해드렸죠."
형을 의심하게 되는 동생 유석 역의 강하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 군대에 갔지만 실제 김무열과 누구보다 깊은 인연을 가진 동생이기 때문이다. 형제 호흡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두 사람은 서로를 '너무' 잘 아는 관계다.
"하늘이가 대학로 프로무대에 데뷔한 게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때였거든요. 아마 열아홉에 오디션을 봐서 스무살에 공연이 올라간 걸로 기억해요. 근데 하늘이는
그 때부터 애늙은이 같았어요. 80년대 노래 주로 듣고, 통기타 치고, 옷도 일자 면바지만 입고, 너무 착하고…. 그 때 조정석 형도 같이 했었는데 막 가식의 껍데기를 벗겨내야 된다고 장난식으로 그랬었어요."
오랜만에 강하늘과 한 작품에서 만나 호흡을 맞춘 소감을 물으니 서로 여유롭게 애드리브가 가능할 정도로 잘 맞았단다. 사실 예전에는 친한 형으로써 강하늘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아무래도 밖에서 스트레스 받는 것에 대해서 혼자 앓을까봐 걱정을 했었는데 오랜만에 만나도 사람이 그대로더라고요. 그냥 원래 이런 성격이구나 했죠. 어릴 때 만나고 처음이니까 아무래도 저를 불편해 할까봐 신경을 많이 쓰고 배려했는데 서로 눈치가 빨라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니까 잘 맞더라고요. 우리 둘이 친한 상황을 찍을 때가 편하고 너무 좋았어요. 그 때는 거의 현장에서 대사들이 60~70% 정도 애드리브였거든요."
"망가진 차니까 계속 앞에서는 연기가 올라오고, 바퀴는 휠밖에 안 남아서 소리가 엄청 났어요. 처음에는 이걸 운전하는게 말이 되냐고 생각했는데 해보니까 괜찮았어요. 하늘이는 그날 밤새 뛰면서 소리가 너무 큰데 뒤에서 차가 쫓아오니까 너무 무섭다고 그랬죠."
자신이 직접 강하늘의 미담을 공개하기도 했다. 전북 익산에서 차량 통제를 할 때, 강하늘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촬영이 진행됐다고.
"익산에서 왕복 8차선을 통제하고 촬영을 했는데 사실 저희 영화가 그렇게 제작비가 큰 영화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막 경찰 분들이 와서 통제해주시고 그랬어요. 어떻게 그렇게 대대적으로 통제 협조를 얻었냐고 물어봤더니 하늘이가 익산 경찰서에서 무단횡단 캠페인을 해서 또 그게 어떻게 이야기가 잘 됐나 보더라고요. 저희가 익산에서만 3일 밤을 샜는데, 경찰 분들이 해주시니까 정말 수월했죠. 우리 스태프들이 하면 또 욕 먹고 그러기도 해서, 하여간 공권력이 이래서 좋구나 싶었어요."
최근 김무열의 관심사는 바로 자신이 사는 '세상'이다.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길 두려워하지 않는 솔직한 성격이 언젠가 연기에도 반영될 지 기대를 자아내는 지점이다.
"아무래도 어쩔 수 없이 저라는 사람이 하는 연기니까 계속 시간을 가지고, 인생을 조금 더 챙기고 그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겠다. 적어도 내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요."
"보통 국내에서는 200억 정도만 되는 영화면 엄청난 블록버스터인데 할리우드에서 그 정도면 독립영화 규모의 예산이거든요. 어쨌든 할리우드 자본이 계속 국내에 들어오고 있는 상황인데 100~200억 규모 가지고 그 이상되는 수준의 영화를 만드는 흐름 자체가 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초단편 영화제에 참여한 건 물론 약속 때문도 있지만 원래 단편 소설을 주로 읽거든요. 초단편 영화도 정말 짧은 시간 안에 메시지를 주는 그 느낌이 좋더라고요. 요즘 소비 트렌드랑 잘 맞는 것 같아요. 외국 초단편 영화들은 이미 그 수준이 엄청 높았어요."
마지막으로 '기억의 밤' 관객들에게 영화의 관전포인트를 꼽아 달라고 요청했다. 김무열의 정답은 간단했다. '스릴러의 재미에 충실한 영화'. 홀로 홍보 활동을 하는 대신 군 복무 중인 강하늘에게도 농담 섞인 한 마디를 전했다.
"사건이 풀려나가는 지적 유희를 그대로 즐기실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저는 두 남자의 운명이 내게 어떤 교훈을 주나 계속 고민하고 있거든요. 스릴러 장르는 결국 재미더라고요. 거기에 충실한 영화인 것 같고, 그 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뭘 생각해야 할지는 관객들 각자의 몫인 것 같아요. 그리고 하늘아, 아무리 힘들어도 너보다는 편하니까 힘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