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가 교육계 지각변동 일으키는 이유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사진=황진환 기자)
교육부가 오는 2022년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내년부터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를 운영한다.

고교학점제는 고등학생들이 대학생처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교실을 옮겨다니며 수업을 듣고 일정학점을 채우면 학년에 상관없이 졸업할 수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현재 생각하는 '고교학점제'는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는 수준이다. 졸업학점제는 도입여부를 차후에 검토하기로 했다.

고교학점제가 겉보기에는 교과목의 변화 정도로 인식될 수 있지만 찬찬히 들여다 보면 자사고,외고 체제 개편과 내신 절대평가, 대입제도 개선 및 교사 양성제도 등 교육계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제도다.

우선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현재처럼 고교 교육이 대학입시에 얽매여 있는 상황부터 개선해야 한다.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더라도 고교 교육이 입시에 종속돼 있으면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나 취향 보다는 대입 비중이 큰 과목 위주로 선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이 지난 6월 전국 초·중·고 교사 2,077명을 대상으로 한 모바일 여론조사에서 교사들은 학점제 도입에 부정적인 가장 큰 이유로 '대입에 유리한 과목으로 쏠릴 가능성'을 꼽았다.

이에 따라 고교학점제의 기본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고교 교육이 대학 입시로 파행화되는 상황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교학점제가 올바르게 시행되기 위해서는 내신 평가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고교학점제가 학생들로 하여금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는데 그치기 보다는 토론형,참여형으로 수업을 실시해 '4차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창의적 인재육성'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대평가 방식으로는 이같은 토론,참여형 수업보다는 문제풀이식 수업을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상대평가가 유지될 경우 학생들이 상대평가에 유리한 다인수 과목을 선호하게 되고, 13인 이하 소인수 과목은 상대평가를 할 수 없어 해당 과목 자체를 개설할 수 없게 된다.

이같은 근본적,실무적 이유로 고교학점제는 내신 절대평가와 쌍을 이룬다.

이와 함께 현재 과목별 평가 방식도 교사별 평가 방식으로 바뀔 수 밖에 없다. 현재는 교사가 아닌 '시험'에 의해 학생들을 일괄 평가하는 방식인데 같은 과목이라도 가르친 학생만 교사가 평가하는 교사별 평가가 이루어진다.

다양한 선택과목이 개설되고 교실을 옮겨가며 수업을 하기 때문에 교사와 교실이 확충돼야 한다. 이는 교원양성과정이나 교육인프라 투자와 연계될 수 밖에 없다.

농산어촌 학교의 경우 교사나 교실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교육부는 인터넷 강의 등으로 보완한다는 방침이지만 고교학점제 실시에 앞서 지역간 편차를 완화하는 일은 무엇보다 시급해 보인다.

(사진=자료사진=이한형 기자)
또한 고교학점제를 안정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자사고와 특목고-일반고의 고교서열화 체제를 우선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고교학점제를 위해 내신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 있는 자사고와 특목고가 내신평가에서 매우 유리해진다. 이는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전환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충돌을 빚을 수 밖에 없다.

결국 고교학점제가 온전히 시행되기 위해서는 고교서열화를 타파하는 고교체제부터 개편돼야 한다.

고교체제 개편과 내신 절대평가 등이 이뤄진 상황에서 고교학점제가 시행된다면 이는 다시 대입 제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선택과목 수강추이만 보더라도 학생이 어느 분야에 얼마만큼의 관심을 가지고 학업을 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처럼 학종에 대비하기 위해 별도의 준비를 할 필요없이 고교수업만으로도 가능하다. 학교수업만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니 사교육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또한 합격의 근거가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학종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교육부가 고교학점제를 고교체제 개편과 대입제도 개선의 중간다리로 보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같은 예측은 가장 이상적인 경우다. 고교체제 개편과 내신 절대평가, 대입제도 개편, 교원양성방식 개편 등은 모두 하나하나가 폭발성이 큰 사안들이다. 단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여러 이해집단간의 충돌이 예상되는데 이런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다면 풀기 난해한 고차방정식이 될 수 밖에 없다.

교총이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교원단체들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는 이유이다.

교육부도 2022년 도입을 목표로 하되 내신 절대평가 등 민감한 문제는 중장기적 논의를 거쳐 도입한다며 조심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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