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지진으로 2만8천건 이상의 주택피해가 확인된 가운데, 안전점검 결과를 두고 일부 주민들의 반발이 본격화되고 있다.
피해지원 규정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앞으로 민-관은 물론, 민-민 갈등까지 우려된다.
27일 오후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있는 한미장관맨션. 지진으로 건물이 3~4도 정도 기울어져 '피사의 아파트'로 불리는 대성아파트와는 불과 30m 거리다.
지어진지 26년 된 5층 건물은 외벽 곳곳이 떨어져 나가 있는 등 한눈에 보기에도 큰 피해를 입었다.
아파트 내부로 들어가자 계단 곳곳에 금이 간 곳이 확인됐고, 지진으로 집이 뒤틀리며 현관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 집도 발견됐다.
일부 집은 벽에 3~4cm 크기의 구멍이 뚫렸고, 북쪽 한개 건물은 대성아파트처럼 약간 기울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 이후 주민 240세대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흥해실내체육관을 비롯한 대피소에서 생활하며 당국의 대책을 기다렸다.
하지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포항시가 1차 육안검사를 통해 한미장관맨션에 '사용가능' 판정을 내린 것이다.
건물 외벽와 내벽에 큰 금이 갔지만 안전성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주민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주 대상에서 제외되면 수리비를 비롯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을 거의 받을 수 없어서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등에 따르면 피해를 본 건물은 전파가 900만원, 반파 450만원, 소파 100만원만 받을 수 있다. 한미장관맨션은 반파로 분류돼 있는 상태다.
반면 '철거대상' 판정을 받은 환호동 대동빌라와 대성아파트 E동 주민 등은 정부가 앞으로 2년 간 살집을 마련해준 것은 물론, 이사비용까지 지원했다.
다른 이재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이유다.
한미장관맨션 주민 김모(63)씨는 "지진으로 집 내부 집기가 쏟아지면서 다 부서시고 벽에 큰 금이 갔는데도 포항시는 안전에 문제가 없다며 다시 들어가 살라고 한다"며 "지진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이 포항시의 섣부른 판단에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에 주민들은 안전점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포항시 등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조속한 대책 수립을 요구했다.
또 안정적인 주거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법률이 규정하는 지진 피해보상금 등의 수령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주민 임시대표 김홍재씨는 "사람이 도저히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파손된 부분을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지만 포항시는 안전하다고 말한다"며 "관계기관은 지하구조물 진단과 기울기 측정 등 주민이 수용할 수 있는 건물안전진단을 실시하고 주거이전대책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비슷한 논란은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원룸 건물 등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당초에는 필로티 기둥이 휘어진 원룸 등 모두 7개 원룸이 폐쇄될 예정이었지만, 2차 조사에서 크리스탈 원룸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 '재건이 가능하다'는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원룸 세입자들은 불안감에 전세금이나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으로, 건물주는 수리비용에다 전세금 반환이라는 2중고를 겪고 있다.
이에 대해 포항시 관계자는 "전문가들이 보수적인 기준에 따라 1차 검사를 벌인 결과 안전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돼 사용가능 판정을 내렸다"며 "주민들이 결과에 수긍하지 못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는 만큼 포항시 자체적으로 용역을 줘서라도 정밀 검사를 벌여 주민들이 안심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